경남 의령군 유곡면 세간리 817번지에 가면 조선 중기의 의병장 곽재우(1552~1617) 장군의 생가가 있다. 그는 10대에 남명 조식(曺植)의 문하에 들어가 수학 하였는데 그 인연으로 16세에 조식의 외손녀와 혼인을 하게 되었고, 1585년(선조 18) 34세의 나이로 정시 문과에 뽑혔으나 글의 내용이 선조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여 합격이 취소되었다. 이와 같이 원래는 무인이 아니였지만 임진왜란이 일어나 관군이 왜군에게 패하자 자신의 사재(私財)로 의병을 일으켜 일본군에 맞서 싸웠다. 그는 붉은 옷을 입고 싸우는 홍의장군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그의 용맹성에 놀란 왜병들은 곽재우의 이름만 들어도 두려워했다고 한다. 김시민의 진주성 싸움에도 큰 도움을 주었으며, 전장에서 여러 번 승리한 공로로 찰방, 조방장 등을 지낸 뒤 1599년 병마절도사를 역임했다. 1600년(선조 33) 2월 일본과 화친할 것을 건의 했다가 사간원의 탄핵을 받고 전남 영광으로 유배되었다가 2년 만에 풀려났다. 그런 후 다시 선조의 부름으로 1605년 한성부 부윤이 되고 이어 전라도 병마절도사로 나갔다. 1609년(광해군 1) 모든 관직에서 물러났으나 광해군이 또다시 삼도수군통제사에 제수하여 불렀으나 병을 핑계로 사양하고 나아가지 않았다. 그는 김덕령 등의 의병장이 무고로 희생되는 것과 영창대군의 죽음을 보고 벼슬을 여러 번 사퇴하였다. 1617년 66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는데 조정에서 장례용품이 지급되었으며 예조좌랑을 파견하여 장례식을 주관하게 하였다. 훗날 숙종은 그의 공적을 높이 사 1709년(숙종 35년) 증 병조판서 겸 지의금부사에 추증하고 충익이라는 시호를 내렸다.이곳의 산세는 백두대간 남덕유산에서 동남쪽으로 하나의 지맥을 뻗어 내려와 의령군 궁류면의 만지산(607.4m)과 장등산(383m)을 거쳐 유곡면의 고망산(242.1m)을 일으켜 주산이 되었다. 생가는 주산에서 동쪽으로 뻗어 내려와 생가 뒤 금형의 봉우리를 일으켜 배산(背山)이 되었고, 앞으로는 유곡천이 흘러 전형적인 배산임수(背山臨水) 지역이다. 배산과 유곡천 넘어 안산은 그 모양이 둥그스름한 무곡봉이다. 풍수에서는 혈장 주변에 무곡봉이 있으면 걸출한 무인이 태어난다고 하였으니 장군의 일생에 많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주변 산세들은 투구봉, 노적봉, 천마사 등 대부분이 귀인봉이라 생가에 좋은 기운을 보내준다. 수세는 마을 앞 유곡천이 서쪽에서 동쪽으로 흘러와 마을을 둥글게 감싸면서 북쪽으로 흘러 낙동강에 합류한다. 우리나라는 지형적 특성상 북쪽 보다는 남쪽이 동쪽 보다는 서쪽이 낮기 때문에 물의 흐름이 일반적으로 북에서 남으로, 혹은 동에서 서쪽으로 흐른다. 그러나 이곳의 수세는 이와 반대로 서에서 동쪽으로 흘러와 마을을 완전히 감싸주고 북으로 흘러나간다. 풍수에서는 이러한 지역을 역수국(逆水局)이라 하고 그 안쪽을 대 길지로 해석하고, 혈장 주변의 물은 혈처를 환포(環抱) 해주면서 천천히 흘러나가는 것을 최고로 친다. 역수국은 일반적으로 경사도가 완만해 유속이 늦고 마을 앞 유곡천은 구불구불 천천히 흘러나가니 최고의 수세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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