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사람치고 특권의식으로부터 자유로운 이가 드물다는 것은 새삼스런 일이 아닐 것입니다. 오히려 그 반대가 이상한 일인지 모릅니다. 인간은 원래 그렇게 생겨먹은 존재입니다. 지위가 오를수록, 권력이 쌓일수록, 둘러싼 아첨꾼들이 많을수록, 자기가 세상의 중심이라는 착각이 더 짙어집니다. 문제는 그 착각이 공적 영역에서 작동할 때입니다.지역 정치판을 지켜봐 온 기자의 눈에는 이 풍경이 낯설지 않습니다. 선거철마다 “민심의 심부름꾼이 되겠다”거나 “더 낮은 자세로 일하겠다”고 목청을 높이던 이들이 당선증을 쥐는 순간부터 달라집니다. 민원 창구는 멀어지고, 의전은 두꺼워지고, 말투는 높아집니다. 힘없는 주민이 찾아가도 대기실에서 기다리게 하는 일이 예삽니다. 막상 만나면 돌아오는 답변은 “검토해보겠다”는 공허한 한 마디. 그것이 지역 정치의 민낯인지 모릅니다.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말이 있습니다. 처지를 바꾸어 생각해보라는 뜻입니다. 아주 쉬운 말입니다. 그러나 실천하기가 이렇게 어렵습니다. 정치인들도 이 말을 모르지 않습니다. 연설 단상에 오를 때마다 “약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겠다”고 선언합니다. 그러나 단상을 내려오는 순간, 그 다짐은 대개 단상에 남겨둡니다. ‘아전인수’와 ‘내로남불’이 일상이 된 정치 문화 속에서 역지사지는 그저 수사로만 소비되는 듯 합니다.왜 그럴까요. 권력에 대한 인식의 문제입니다. 권력을 주민복리를 위한 수단으로 보는 정치인과, 권력 자체를 목적으로 보는 정치인은 결이 다릅니다. 후자에게 역지사지란 불필요한 사치입니다. 어떻게든 권력을 유지하고 확장하는 것이 최우선이니, 힘없는 이의 처지를 헤아릴 여유는 없습니다. 그 결과는 주민이 고스란히 짊어지게 합니다. 민원은 쌓이고, 행정은 굳어지고, 약자는 더 외곽으로 밀려납니다.더 큰 문제는 감시와 견제가 허술하다는 점입니다. 특권의식을 지닌 개인이나 집단이 공적 영역에 있다면, 그들이 그 특권으로 부당 이익을 취하지 못하도록 다른 공적 조직이 촘촘히 감시하고 견제해야 합니다. 이 간단한 이치가 우리 지역 정치에서는 터무니없이 약합니다. 지역 정치인의 일탈은 없는가, 지방의회는 집행부를 제대로 견제하는가, 시민사회는 목소리를 낼 여건이 되는가. 이렇게 자문해 보면 답이 좀 씁쓸합니다.역지사지의 정치는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증명됩니다. 강자가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다수가 소수에게, 여당이 야당에게, 행정이 주민에게 먼저 다가설 때 비로소 협치의 씨앗이 싹트는 법입니다. 약자에게만 역지사지를 요구하는 정치는 기울어진 운동장을 기울어진 채로 놔두겠다는 선언과 다르지 않습니다. ‘정의가 힘’이 아니라 ‘힘이 정의’가 된 곳에서 민주주의는 형식만 남을뿐입니다.지역을 대표한다고 자처하는 이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버스 정류장에서 첫차를 기다려본 게 언제인가를. 청년들이 일자리를 찾아 떠나는 이유를 몸으로 느껴본 적이 있는가를. 소상공인이 폐업을 앞두고 잠 못 이루는 밤을 상상해 봤는가를. 책상 위의 보고서가 아니라 골목에서 들리는 목소리가 진짜 민심입니다.특권의식은 인간의 본성이긴 합니다. 그러니 버리라고 강요하는 것도 부질없습니다. 그 대신, 제도적 장치를 정비하고, 스스로 내면을 들여다보는 성찰의 훈련을 쌓아야 합니다. 자신의 신념이 독선으로 굳어지지 않도록 경계하고, 개인의 신념 윤리보다 주민에 대한 책임윤리를 앞에 두어야 합니다. 선한 의도보다 좋은 결과가 먼저라는 것, 정치인의 소명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지역 정치에 ‘순한 정치’를 기대하는 것이 과한 요구일까요. 화려한 치적이나 거창한 비전이 아니어도 됩니다. 주민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힘없는 이의 처지에서 한 번쯤 생각해보고, 그 마음이 정책으로 이어지는 것. 그것이 역지사지의 정치이고, 민주주의의 기본입니다. 그 기본을 이제라도 돌아봐주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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