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윤흥길의《완장》속 주인공 임종술은 본래 평범한 인물이었으나, 저수지 감시원이라는 작은 권력을 손에 쥐는 순간 남을 억압하고 군림하려 듭니다. 이 문학적 풍자는 권력의 크기가 아니라 권력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날카롭게 보여줍니다. 권력이 주어졌을 때 누구든 파렴치한 모습으로 변할 수 있다는 인간의 취약한 속성을 꿰뚫은 준엄한 경고입니다.지방정치의 위험성도 정확히 이 지점에 맞닿아 있습니다. 국회의원이나 장관처럼 큰 권력이 아닐지라도, 지역사회 안에서 행사되는 작은 권력은 시민의 삶에 가장 직접적이기에 오히려 더 위압적으로 작동하기 때문입니다.최근 영천에서는 시장 1명, 광역의원 2명, 시의원 12명 등 총 15명의 ‘영천 권력’이 탄생했습니다. 이들은 선거 기간 내내 “시민을 위해 일하겠다”라며 낮은 자세를 강조했지요. 하지만 당선 이후 일부 인사들의 행태는 ‘일꾼’보다 ‘권력자’ 늬앙스를 드리우고 있습니다. 실제로 지난 민선 8기 시절, 일부 영천시의원들의 이른바 ‘완장화’ 현상은 심각한 문제로 지적된 바 있습니다. 지방의회 본연의 역할은 집행부를 감시하고 시민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일부 의원들은 자신을 시민의 대표가 아니라 지역의 ‘관리자’나 ‘감독자’처럼 인식하며 의원 배지를 특권의 증표로 변질시켰습니다. 이로 인해 과도한 개입과 갑질 논란, 주민과의 다툼, 공무원 길들이기 등에 대한 비판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습니다.행사장에서 존재감을 과시하고 공직사회와 지역사회단체 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욕망이 작동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결국 ‘자치 일꾼’이라는 표현은 친화적 언어일 뿐, 내면에는 오만한 권력 의식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강한 의구심이 듭니다. 대개 지방일수록 이러한 현상은 더욱 심각합니다. 좁은 인간관계와 학연·지연 중심의 구조 속에서 지방 권력이 쉽게 사유화되기 때문입니다. 권력은 사람의 언어와 표정, 인간관계를 바꾸고 결국 인간 자체를 바꾸는 힘입니다. 선거 전에는 땅에 박듯 고개를 숙이던 사람이 당선 후 갑자기 목에 힘을 주고 시민을 훈계하려 드는 모습은 권력이라는 마약에 중독되었음을 증명합니다. 권력에 중독된 사람은 자신이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립니다. 주변의 비판을 공격으로 받아들이고, 충언은 불편해하며, 반대 의견은 제거 대상으로 느낍니다. “내가 곧 조직이고 지역이다”라는 착각에 빠지는 것이지요.전화 한 번에 공무원들이 긴장하고 행사장마다 의전이 따라붙으면, 이를 예우가 아닌 자신의 권력으로 받아들입니다. 그 순간부터 ‘봉사자’는 사라지고 ‘권력자’만 남습니다. 처음에는 지역을 위해 일하겠다며 시작된 개입이 어느 순간 공직사회에 대한 압박과 군림으로 이어지고, 비판을 받으면 “의원을 무시한다”라는 피해의식까지 보입니다. 시민이 위임한 권력을 개인의 권위이자 소유물로 착각하는 인지부조화입니다.완장은 팔에 차는 순간보다 머릿속에 차는 순간 더 위험해집니다. 배지가 가슴에 달린 것이 문제가 아니라 권력이 머릿속에 들어앉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번에 선택받은 15명이 주민 위에 군림하고 공직사회를 영향력 아래 두려 하며, 비판 언론을 불편해하고 시민을 적대시한다면 그것은 이미 건강한 영천이 아닙니다. 완장은 개념없는 이들의 손에서 언제나 불합리한 폭력의 기제로 작동해 왔습니다.선출직 임기는 4년으로 유한하지만 권력 중독은 사람을 무한한 착각 속으로 끌고 갑니다. 영천의 선출직 권력들에게 당부합니다. 권력은 취할 때보다 절제할 때 비로소 빛납니다. 자치의 품격은 권력을 크게 행사하느냐가 아니라 겸손하게 사용할 수 있느냐에 의해 결정됩니다. 이 자명한 진리를 머릿속에 잘 간직하고 임하기를 바랍니다. 이제 곧 펼쳐질 4년, 지역민 모두가 힘을 합쳐 영천 정치권력의 구태와 온갖 더러운 것들이 소멸하고 정화되기를 간절히 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