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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보통의 보통글밥] 과락 편지
- 스토리텔링 작가, 시인
- 신협중앙회 원고 자문위원
- 경북대학교 대학원 사회학과
졸업(석사)
경북동부 관리자 기자 / d3388100@hanmail.net입력 : 2022년 09월 08일(목) 17:22
ⓒ 경북동부신문
전 소설가셨던 내 아버지는 뜬 금없는 글 부탁을 질색하셨다. 또 작 가로서 창작물을 나누는 것에 대단 히 신중하여 더러 옹색하다는 느낌 을 줄 때도 있었다. 글 부탁에 질색한 일로는 김천전신전화국(현 KT)에 다 니셨던 어머니의 부탁이 단박에 떠 오른다.

1년에 한 번 혹은 2년에 한 번 씩 한국전신전화국에선 사내 글쓰기 대회를 열었는데, 이때 어머니의 상 사는 아버지의 재주를 빌려 김천전신 전화국의 위상(?)을 높이려 어머니를 은근 압박했었다.

어머니는 평소 아버지 성품을 잘 알면서도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가 불호령을 맞았다. 그러고 나면 우리 집엔 무겁고 탁한 공기가 여러 날 똬 리를 틀고 앉았다. 창작물을 나누는 데 신중하여 옹색한 느낌을 준 일은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아버지는 월간문학 신인상에 당 선된 뒤, 얼마되지 않아 창작집 을 내셨다. 이 소식은 김천 시내가 떠들썩할 정도로 많은 현수막을 통해 그리고 주요 일간 지 기사와 광고를 통해 널리 알려 졌다.

그 때문인지 당시 내 담임이 었던 김혜숙 선생이 나를 불러서는 “아버지 책 한 권을 가져다 달라” 고 했다. 어린 마음이었지만 어렵사 리 아버지께 “아빠, 우리 선생님이 아빠 책 한 권만 가져다 달래요”라 고 전했다가 아니나 다를까 불호령 이 떨어졌다.

다음날 아침, 아버지 는 책 속지에 몇 자를 쓰고 전각으 로 된 인장(낙관)을 찍어 한 권을 내 주었지만, 나는 밤사이 뒤바뀐 아버 지의 마음을 잘 이해할 수는 없었다. 기자를 그만두고 아버지 뒤를 잇는 지금에서야 아버지 심정을 이해하 는 안목이 생겨났지만, 이건 어디까 지나 아버지에 대한 아들의 해석일 뿐이다.

평소 아버지 성품으로 보 아 짐작컨대, 아버지는 아마도 대필 (代筆) 자체를 질색했던 게 아닌가 한다. 대필을 몸을 팔아 건사하는 매춘(賣春)에 견주어 매문(賣文)이 라고도 하는데, 그런 관점이 아버지 뇌리에 작가의 골수로 박혀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그도 그럴 것이 예 전에는 문단 데뷔 전에도 글 심사 를 보는 일이 흔해서(석사가 대학 교수가 되는 것과 같이), 아버지 역 시 그런 자격을 가졌던 바 대필을 질색했던 것은 당연했을 것이다.

나 역시 10년 전 첫 번째 신문사 를 그만두고 언론계 선배로부터 과 년한 자기 딸 책을 대필해 달라는 부 탁을 받은 적이 있는데, 나는 그 일로 그 이를 두 번 다시 보지 않게 됐다. 그런데 나는 전업작가였던 아버지와 달리 기자생활을 하면서 ‘대필=매문’ 공식이 능사도, 전부는 아니라는 생각 의 전환이 있었다.

정말 글을 쓰고 싶 고, 책을 내고 싶은데 재간이 영 없는 사람의 부탁을 매번 거절할 수 있느 냐 하는 인지상정이 시나브로 생겨 난 것이다. 이럴 때는 여러 날 심사숙 고해서 도와줄 일이라고 판단이 서 면, 눈 한 번 질끈 감고 만다.

다만 경 합을 다투는 글은 선의의 피해자가 생길 수 있어 일절 돕지 않고, 글에 대한 대가는 받지 않는다는 원칙을 두었다. 작가로서 매문만큼은 여인의 정조만큼이나 지키고 싶은 것이다. 책 을 나누는 일에 대해서는 아버지와 기 본은 같지만, 나는 아버지와 상당히 다 른 생각을 갖고 있다.

나 역시 아버지 와 마찬가지로 내 작품집을 잘 주지 않는다. 다만 후학에게는 그저 선물 로 주고, 꼭 읽어보고 싶다는 사람과 내 작품의 쓰임이 공공의 이익에 부 합될 때는 아낌없이 내어준다. 또 교 류 작가에게는 작품이 나오면 으레 한 권씩 보내드린다. 그게 글 쓰는 사 람의 최소한의 예의라 보기 때문이 다.

반대로 나는 상대에게 책을 잘 달 라고도 하고, 또 잘 사달라고도 한다. 달라는 대상과 사달라는 대상은 주로 선배들이다. 이 일은 후배가 상대일 수가 없다. 후배에게는 재재로운(찌 찔한) 일이 되기 때문이다.

매력이 떨 어지는 선배가, 인간이 되기 때문이 다. 후배에게 실없이 밥 얻어먹는 채 신없는 선배를 떠올려 보라! 그러나 책을 받는 일을 무시로 즐기지는 않는다. 책을 받았으면 기분이 좋아 글로 부조를 하든, 자 그마한 선물로 답례를 하든 그때 그때 상황에 맞는 처신을 한다.

어 떨 땐 그 처신이 배보다 배꼽이 더 클 때도 있지만, 그건 시상 풍속의 잣대이고 마음을 냈다는 것에 족 한다. 오늘 내가 글 부탁과 작품 나 눔에 대한 아버지와 나의 소견을 드러낸 까닭은 며칠 전 아내의 ‘편 지 쓰기’ 주문 때문이다.

나는 적어도 지난 10년 동안 뜬 금없는 글 부탁을 일언지하에 바 로 거절해 온 터라 내게 삿된 마음 담뿍 담긴 글을 부탁하는 사람은 주변에 거의 없다. 아예 없다 해도 좋다. 그러고 보면 아무 사심 없이 내게 글 부탁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유일하게 나의 아내일 것이다. 아 내의 부탁은 부탁을 넘어 주문이 었다.

동전을 넣으면 뭔가 하나 툭 떨어져야 정상인 그런 주문 말이 다. 둘째 바론이 두 번째 생일(8월 23일)을 앞두고 어린이집에서 생 일 당일 틀어줄 동영상과 읽어줄 편지를 보내달라는 전갈을 받은 것은 닷새 전이었다. 동영상은 아 내가, 편지는 내가 맡기로 했다. 아 니 맡겨졌다. 막상 쓰려니까 무척 어렵게 느껴졌다.

사인 간의 비밀 편지가 아니라 공개목적의 편지인 데다, 아직 말도 제대로 못하는 바 론이가 아빠의 지극 정성한 단어 를 과연 몇 개나 알아먹을까도 싶 고, 시집도 안 간 선생은 또 무슨 생각으로 대독할까 생각하니 결단 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꽤 고심한 끝에 아홉 문장을 적어 아내에게 보내줬다.

심사(?) 결과는 과락. 우리 아기 바론이에게 바론아 안녕! 아빠야. 오늘은 우리 아기 생일이구나.

두 번째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해. 오늘도 신나는 날 되렴. 저녁에는 엄마랑 형아랑 파티를 할거야. 기대하렴. 이따가 만나. /사랑하는 아빠가♥

과락인 까닭은, 아내 가라사대 “요런 데는 감성적



인 거 하나 있어 줘야지. ‘바론이가 엄마아빠에게 와 줘서 너무 고마워’ 같은.” 전날 밤, 침대에 누워서 휴대폰 메모장에 시 조풍의 글을 써서 아내에게 보여줬 다가 비웃음만 사 심기일전하고 썼 는데 역시 과락이었다. 전날 밤엔 이런 글을 즉석에서 지었더랬다.

둥이 둥이 귀염둥이/우리 아지 심바론이/고추 갖고 태어나서/났 네 났네 두 해 났네/아빠따라 즐거 웁게/엄마따라 건강하게/형아따라 신명나게/났네 났네 두 해 났네/경 사로고 경사로세/둥이 둥이 울막 둥이/최강 아지 심바론이/고추 갖 고 태어나서/났네 났네 두 해 났네/ 아빠따라 물며 빨고/엄마따라 먹고 싸고/형아따라 기고 걷고/났네 났 네 두 해 났네/경사로고 경사로세

딴 뜻이 있어서가 아니라 새근새 근 잠든 아가 모습을 보다 절로 나 온 글이었다. ‘현대여성’ 아내는 곧 바로 면박을 주었다. “설마 이걸 주 라고? 으이그, 이건 아니죠.” 글의 생성 전후가 바뀌었지만, 왜 아빠라고 애정을 듬뿍 담아 쓰고 싶 지 않았겠나. ‘우주 최강 베이비’ ‘넌 존재 자체로 최고’ 같은 표현을 넣었 다 뺐다 하며 낙점한 것이 건조하다 싶으면서도 간명깡총한 글이다.

비 록 아내에게 과락을 받았지만, 이 경 우엔 과락이 곧 고점일 것이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를 대놓고 하는 것은 우리끼리만으로도 족하지 않겠는가. 바론이는 엄마아빠의, 그리고 형의 사랑을 충분히 받고 느끼고 있다. 어 찌 아느냐고? 우리 아가 얼굴에 그 리 써 있다. /심보통 2022.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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