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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보통의 보통글밥 ] 녹두가 뿌린 씨앗, 그 씨앗
심 지 훈
(경북 김천, 1979.7.8~)
경북동부 관리자 기자 / d3388100@hanmail.net입력 : 2023년 09월 13일(수) 17:37
ⓒ 경북동부신문
6年 전, 2년 동안 동학을 깊게 들여다본 적이 있다. 일로 시작했지만, 200여 편의 동학 논문을 탐독하면서 여러 의문을 나름대로 자문하고 자답하는 기회를 가져 본 일은 아직도 보람으로 남는다.
우리나라에서 논문 편수 중 부동의 1위가 동학과 관련된 것이라는 점을 아는 국민은 몇 안 될 것이다.(2위가 새마을운동이다.) 
이 사실을 알고 나면, 125년 전의 동학농민혁명(1894)과 159년 전의 동학(1860)의 탄생은 현대에 와서도 오랫동안 숨은 역사로, 미완의 역사로 또 논쟁의 역사로 남아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란 것도 알게 된다.
내가 동학을 공부하고, 내 나름의 독법으로 동학 책 2권을 써내면서 가진 의문 중 하나는, 
‘왜 구한말은 물론 조선시대 내내 백성을 괴롭혔던 탐관오리의 학정과 패악은 끝끝내 시정될 수 없었던 것일까’-였다.
알다시피 동학농민혁명이란 활 시위가 당겨진 건 조병갑의 횡포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의 횡포는 고부관아, 고부민뿐 아니라 전주감영과 조선 조정까지도 모르는 일이 아니었다. 설령 조병갑이 같은 ‘권귀’들이 전국에 흔하디흔했다 해도 그걸 바로잡아야 한다는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낸 선비는 내 눈에는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망국의 한(恨)을 안고 자결한 황현, 해서 이 나라 역사에서 ‘마지막 선비’로 추앙받는 그 황현조차 조병갑과 고부관아의 폐단을 꾸짖기보다는 동학도를 동비(東匪)로 규정, “세상말세”라고 개탄했을 뿐이었다. 
황현뿐 아니었다. 저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동학 교조 최제우의 아버지 최옥(몰락 양반)도 아들 제우에게 ‘사또 하는 일에는 절대 개입하지 말라’고 가르쳤다. 최옥은 ‘과부의 개가를 허용하고 그 자손을 차별하는 정책은 옳지 못하다’고 당시로선 파격적인 주장을 펼치고, 또 행동에 옮긴 인사였다. 
개혁파였던 실학자들도 이상하게 사또 하는 일은 관여하지 않았다. 18세기 실학자 순암 안정복은 동약을 만들면서 16개조를 마련했는데, 마지막 조항으로 ‘관청의 정사에 대해 옳고 그름을 따지지 말 것’이라고 새겨넣었다. 
이는 17세기 후반의 유학자 이유태가 자손을 위해 남긴 정훈과도 같다. “그 나라에 살면서 그 나라의 대부를 비방하지 않는다.”
이처럼 조선시대에는 수령이 어떤 정치를 펴든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것을 극도로 경계했다. 이유를 찾아 보니, 이랬다.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없으면 나서지 말라.’
이를 사족들은 ‘거향관(居鄕觀)’이라고 했다. 마치 가훈처럼 엄히 지켜야 할 토착세력의 자세였던 것이다. 
근데 이 고상한 거향관을 한마디로 하면 ‘개기지 말라’가 된다. 그만큼 조선선비의 자세란 알고 보면 편협하고, 졸렬하고, 자기보신에 급급했던 것이다.(하긴 거개 인간 본성이 이렇다!) 그러니 나라 꼴이 그 모양 그 꼴로 굴러가다 일본에 잡혀 먹은 것이다.
오늘 내가 이 구태의연한 옛 얘기를 들먹이는 이유는 125년 전 위정자들의 행태나 오늘날의 그들 행태가 오십보백보라는 생각이 퍽 들어서다. 아니, 어쩌면 옛날보다 훨씬 못하기도 해서다. 
조선시대 언론기관인 삼사(사간원, 사헌부, 홍문관)는 임금도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그 시절 민중은 사간원 등이 무슨 일을 하는지 알지 못해, 토를 달지 못했을 것이다. 
오늘날 미국 식 선진 민주주의를 걸친 대한민국, 이 땅의 기자들은 대통령과 대담에서 물어볼 질문을 사전에 (어느 쪽 국민인지 모를) 국민들에게 허락을 구해야 할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상당수 국민들은 착각 속에 산다. 대한민국 민주사회가 시나브로 아무 말 대잔치의 향연에 빠지자, 멀쩡한 기자들의 패턴, 일상사를 너무도 잘 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옛 민중은 삼사의 존재와 일 자체를 몰라 토를 달지 못했지만, 오늘날 민중은 무지를 무기로 성난 벌처럼 쏘아대고 있는 것이다.
하나마나한 취임 2주년 특별대담 ‘대통령에게 묻는다’는 안 하니만 못한 꼴이 됐다. 대통령의 말은 하나마나했기에 묻혔다 쳐도, 물어볼 걸 물어본 기자가 표적이 된 이 나라는 대체 어느 산으로 가고 있는 건가.
요즘 ‘녹두꽃’이란 드라마가 인기리에 방영 중이다. 과격행동파였던 녹두장군 전봉준이 아니었다면, 동학이 이 나라 ‘근대 민주화의 시발’이란 영광을 날름 삼키지는 못했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 녹두가 뿌린 씨앗이 싹을 틔워 봉오리를 터뜨리고 개화한 게 겨우 이 정도 모습이라면, 녹두의 행동은 오만했던 것이 틀림없다.
하나 “그런 건 또 아니”라고 하는 쪽이 더 많다면, 그건 오로지 대통령과 그 참모들의 문제다. 역대정부 중 최다 인사 참사를 내고도 국민에게 사과는커녕 양 미간에 꽉 힘주어 ‘해볼테면 해보라’는 대통령의 모습에서 나는 조병갑의 환영(幻影)을 봤다. 
녹두가 뿌린 씨앗, 그 씨앗이 그에겐 그리고 어떤 국민에겐 아무 것도 아니었나 보다. 숨이 막힐 지경이다.
/심보통 2019.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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