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필자는 두 사람의 갑작스런 죽음을 보았다.
한 사람은 50대 초반의 후배의사로 스킨 스쿠버 다이빙을 하려고 배를 타고 동해바다로 나가다가 심장마비를 일으켜 뱃전에서 떨어져서 바로 사망하였고, 또 한 사람은 정년을 앞둔 고위 공무원으로 외국에 나가서 심장마비를 일으켜 현장에서 사망하였다. 둘 다 한 마디 유언도 남기지 못한 체 순식간에 이승을 떠나는 것을 보면서 참으로 안타까웠다.
반면에 췌장암에 걸려 1년여 시한부 생명을 살면서 가족은 물론 친구들과 만나서 이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가고 싶은 곳에 가고 먹고 싶은 음식 먹고, 심지어 국밥이 맛있고 주차하기 좋은 장례식장까지 본인이 선택해 줄 정도로 자연스럽고 품위 있게 죽음을 맞이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사람은 반드시 죽는다. 그런데도 죽음은 나와는 상관없는 일처럼 생각하기 쉽다. 심장마비나 사고로 갑자기 죽을 수도 있고, 병마와 싸우며 천천히 죽을 수도 있다.
2012년의 우리나라 사망자 통계를 보면 2분에 1명, 1시간에 30명, 1일 732명, 연간 267,221명이 죽었다. 이렇게 많은 연간 사망자 중에 품위 있는 죽음, 즉 웰다잉(well dying)을 준비하고 돌아가신 분은 몇이나 될까?
웰빙(well being)하다가 죽으면 그 뿐이지 무슨 웰다잉까지 준비해야 한단 말인가? 내가 죽으면 그 뿐이지 나의 사후까지 걱정할 필요가 있을까 하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요절(夭折)하는 경우는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나이가 든 사람들은 웰빙 뿐만 아니라 웰다잉도 생각하고 준비해야 한다. 외국에서는 유언장 작성이나 사전의료의향서 작성 같은 것이 흔하고 자연스럽다.
웰다잉은 본인 사후에 살아 있는 가족, 친지들은 물론 사회를 위하여 무엇인가를 해줌으로서 사자(死者)의 마음이 편안해 질 수 있고, 사자 자신도 추한 모습을 보이지 않고 품위를 지키며 생을 마감하고자 하는 행위이다.
웰다잉의 실제적인 방법은 가족과 친지에게 편지 남기기, 유언장 작성하기(재산 분할 등 포함), 사전의료의향서 작성, 사전장례의향서 작성, 본인 사후의 유품 정리 등이다. 웰다잉을 준비를 하지 않으면 추한 모습으로 최후를 맞이할 수 있고 또한 본인 사후에 가족들 사이에 갈등과 싸움이 생기고 심지어 가족 간에 법정 소송까지 가는 추태가 발생할 수 있다.
가족이나 친지에게 편지쓰기는 쉽지 않다. 보통 사람은 글을 쓴다는 사실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인데 죽음을 전제로 글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겠는가?
그러나 편지라는 것이 꼭 명문의 글을 남겨야 되는 것이 아니다. 그냥 자신이 평소에 하고 싶었던 일을 대충 적으면 된다. 이런 유지의 글을 쓰려고 생각을 정리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자신의 삶과 생활철학을 돌아보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유언장 작성 또한 쉽지 않다. 특히 재산이 많은 사람은 더욱 그렇다. 행여 법적인 문제가 생길 경우 일정한 형식과 절차를 거친 유언장만이 증거로 인정받을 수 있다.
유언장 작성에는 자필증서에 의한 유언, 녹음에 의한 유언, 공정증서에 의한 유언, 구수증서에 의한 유언, 비밀증서에 의한 유언 등 다섯 가지 방법이 있으며, 각각의 방법에 장단점이 있다. 그러므로 재산에 관한 사항이 있을 때는 형식에 맞추어 정확하게 작성해야 하므로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다.
유언장 다음으로 준비해야 할 것이 사전의료의향서(事前醫療意向書, Advanced Medical Directives)이며 외국에서는 보편화되어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낯선 용어이다. 사전의료의향서란 온전한 정신을 가지고 있을 때 본인의 죽음을 대비하여 생명의 연장이나 특정진료에 대한 의견을 미리 작성해두는 것이다.
필요 없는 연명치료를 하지 말고 존엄성을 유지하며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자신의 의사를 분명히 밝혀두는 것이다. 여기에는 무의미한 연명치료에 대한 의견과 자신이 의식이 없을 경우 대리인을 지정하는 것 등 죽음을 대비한 사항을 적는 항목이 잘 정리되어 있다.
사전의료의향서 다음에는 장례절차에 대한 의견을 미리 적어두는 사전장례의향서(事前葬禮意向書)이다. 여기에는 부고, 장례식 규모, 장례형식, 부의금 및 조화, 조문객에 대한 음식대접, 염습에 관한 사항, 수의, 관, 시신처리(화장 또는 매장), 삼우제, 기타 영정사진과 배경음악 등에 관하여 본인의 의향을 밝혀두는 항목들이 있다.
장례식에 가보면 장례절차에 대하여 여러 가지 의견들이 있어서 상주나 친척들 간에 의견 충돌이 있을 수 있으나 이 장례의향서가 있으면 자식들이 부모의 의향에 따라 절차를 진행하면 된다.
웰다잉의 한 부분으로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던 물건을 나누어 주는 것이다. 자신이 살아 있을 때 나누어주면 선물이 되지만 죽은 후에 물려받게 되면 유품이 된다. 선물을 받는 것과 유품을 받는 것은 기분이 다르다. 예쁜 옷이나 장식품을 살아 있을 때 받으면 오래도록 간직하는 기념품이 되지만 유품이 되면 불태워 없애버리기 십상이다.
노인들을 상대로 영정사진 찍어주기 봉사활동에 관한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영정사진만 찍어줄 것이 아니라 가족에게 편지쓰기, 유언장 작성, 사전의료의향서 작성, 사전장례의향서 작성 등 웰다잉에 대한 준비를 종합적으로 도와주는 봉사활동이나 캠페인을 전개하면 좋을 것 같다.
만물이 소생하는 좋은 계절 푸른 5월에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죄스럽지만 환갑을 지난 어른들은 웰다잉 준비가 필요하다. 어느 날 조용히 자신에 대하여 성찰하고 웰다잉 서류를 작성하여 1호 봉투에 넣고 단단히 봉함한 후 봉투 겉봉에 “허락 없이 함부로 열지 말 것”이라 쓰고 안전한 곳에 보관해 둬 보시라. 그러면 해외여행을 가거나 갑자기 가슴이나 머리가 아프고 어지럼증이 와도 마음이 편안함을 느낄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수의와 자신의 가묘를 준비하면 오래 산다는 속설이 있다. 그렇다면 웰다잉 준비는 장수(長壽)의 비결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