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이 정말 흔한 시대입니다. 예전에 옷 한 벌은 요즘으로 치면 명품 옷 한 벌처럼 갖기가 힘들었습니다. 6-70년대는 아이 옷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입는 것이 기본인데, 그래도 말짱하면 ‘아나바다’가 생활이었습니다. 요즘 날씨를 보면 기후변화가 정말 심각하다는걸 절실히 느낍니다. 한 몇일 장대비가 쏟아지다가 또 한 몇일은 숨이 막힐 듯한 폭염이 찾아오고, 밤이면 열대야로 잠 못 드는 날이 반복됩니다. 뉴스에서는 날씨 앞에 ‘극한’이라는 말이 쏟아집니다. 늘 말하지만 기후위기는 먼 미래의 예고가 아닙니다. 이미 우리 삶을 위협하는 현재진행형 재난입니다.그런데 이 기후위기의 이면에는 우리가 쉽게 지나치는 일상 속 선택이 포함돼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옷’입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새 옷을 사고 유행 지나면 몇 번 입지 않은 것도 버립니다. 그 결과 전 세계에서는 매년 약 9200만 톤의 의류가 버려지고 있으며 대부분이 매립되거나 소각돼 엄청난 온실가스를 배출한다는 겁니다. 의류 산업은 전 세계 탄소 배출량의 약 10%를 차지할 정도로 기후위기에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닙니다. 국민 한 사람이 1년에 평균 3㎏의 옷을 버리고 전국적으로는 20만 톤이 넘는 폐의류가 발생한다네요. 요즘 옷은 대부분 폴리에스트로 만들어져 재활용되지 못하고 소각되며 탄소와 유해물질이 배출됩니다.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우리가 헌 옷 수거함에 버리는 옷들도 버리는 사람은 ‘기부’나 ‘재활용’이라고 생각하겠지만 현실은 다릅니다. 국내에서 수거된 헌 옷의 상당량은 동남아시아나 아프리카 등의 저소득 국가로 수출되는데, 이미 과잉 공급된 의류로 인해 현지에서는 처리조차 어렵답니다. 절반 이상은 다시 쓰레기가 돼 현지에서 매립되거나 강가에 방치되며 생태계와 공공 위생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칩니다. 결국 우리가 손쉽게 버린 옷 한 벌이 지구 반대편에서 또 다른 쓰레기 산을 만들고 있는 것이죠.합성섬유로 만들어진 옷은 썩지 않고 미세플라스틱으로 남아 생태계를 오염시키고, 값싼 옷을 만들기 위해 세계 곳곳의 취약 노동자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일합니다. 이 모든 연결고리를 알고 난 뒤 한 가지 다짐을 한게 있습니다. ‘올해는 새 옷을 사지 않겠다’는 단순한 마음이었습니다. 옷장 속의 넘쳐나는 옷을 보며 충동적인 소비를 멈추고 싶다는 생각이었지요. 실천을 이어가면서 이 다짐이 더 큰 의미로 다가옴을 느낍니다. 거창하진 않지만 옷을 사지 않는다는 것은 곧 자원을 아끼는 일이고 탄소 배출을 줄이는 일이며, 누군가의 노동을 쉬 여기지 않겠다는 선택이기도 했습니다.올해 하반기가 제법 흘렀어도 여전히 새 옷 한 벌도 사지 않았습니다. 물론 유혹은 있었지요. 입을 옷이 없다는 생각이 들면 흔들립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왜 이 약속을 했는가’를 다시 떠올립니다. 그러면 선택은 더 단단해집니다. 입던 옷 그냥 입어도 옛날처럼 떨어져 못입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오히려 그 과정에서 옷의 소중함을 더 많이 느끼고 실천에 관심을 갖습니다. 이 현실에 우리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덜 사고 오래 입고 다시 나누는 것뿐입니다. 새 옷이 예쁘다는 건 누구나 다 압니다. 인간은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세상엔 예쁜 물건이 넘쳐납니다. 그 반짝거림이 순간의 만족을 준다는 걸 왜 모를까요. 하지만 옷을 사기 전 한 번 더 고민하고, 입지 않는 옷은 나누고 수선해서 새 옷처럼 입는 것. 이런 작은 실천만으로도 환경에 큰 부담을 덜 수 있습니다. 물론 정부와 기업, 사회 전반의 구조적 변화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개인의 작은 선택에서 시작된 변화는 결코 작지 않습니다. 이 실천이 더 많은 사람에게 전파되기를 바랍니다. 폭염과 폭우가 반복되고 잠못드는 날이 이어지는 속에서 옷 한 벌 덜 사는 일, 그것이 지구를 식히는 작지만 확실한 행동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