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천교회 손산문담임목사 인터뷰> 영천의 자랑스러운 역사.문화유산 자천교회는 의병활동을 하다가 서당훈장을 하던 권헌중선생에 의해 1904년 건립된 전통 한옥예배당으로 유명하다.
현재의 16칸 목조와가 예배당을 건축하기 수년 전에 설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영천시 자쳔교회의 남녀 석을 구분한 전통 한옥 예배당은 교회사뿐만 아니라 건축사, 문화사적으로도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어 현재 총회사적지(한국기독교 사적) 제2호, 한국교회 100주년 기념교회,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52호로 각각 지정돼 있다.
경주에서 시무하다가 미국 필라델피아 이민목회를 준비하던중 8년전 역사와 전통이 숨쉬는 자천교회로 부임해온 영천시 자천교회 손산문 담임목사(영남신대 외래교수)는 교회사 박사로서 흩어진 역사의 현장이나 유물을 발굴, 보존해 오는 활동을 벌여왔다.
역사를 통해 이어져온 전통을 다음 세대에게 올바로 건네질 수 있도록 청소년 교육에 힘쓰고 있다는 손목사를 만났다.“자천교회는 역사상 너무 중요한 교회입니다. 한국개신교중 신도수로나, 대형교회와 같은 외형적인 모습에서 세계적인 교회가 많지만 자천교회는 한국근대사와 함께한 역사나 가장 오래된 한옥예배당으로서의 건축사, 문화사적 가치는 세계적입니다”
영천시 자천교회 손산문 담임목사는 “외국에서는 그 나라 그 민족만의 고유하고 독특한 전통과 역사, 문화적인 가치가 배어있는 교회를 세계적인 교회로 평가한다”고 소개하고 “자천교회는 설립이래 오늘까지의 족적은 물론 성공회 강화성당 다음으로 오래된 개신교 한옥예배당으로서 문화재적 가치가 높다”고 말한다.
“초기 한국교회 예배당 가운데서도 아주 독특한 형태를 갖춘 자천교회 예배당은 똑같은 집 두 채를 나란히 한 일(一)자 형태로 배치한 ‘겹집’구조의 일(一)자형 예배당”이라고 소개한 손목사는 “그러다 보니 지붕이 넓고 높아질 수 밖에 없었고 이 지붕을 받치기 위해 두었던 네 기둥 가운데 중앙의 두 기둥을 중심으로 좌우 공간을 양분했다.
그리고 초기 한국 교회가 남녀를 구분하기 위해 칸막이를 보통 천으로 했던 것과 달리 나무로 되어 있다는 점과 예배당 뒤쪽에 과거 선교사들을 도왔던 조사(助師, Helper)들이 묵을 수 있는 방을 만들었다는 특징이 있다”고 설명한다.
“등잔밑이 어둡다고 영천사람들이 오히려 자천교회를 잘 모르고 있다. 가끔 금호나 영천시내에서 왔다는 분들로부터 영천에 이런 곳이 있는 줄 몰랐다는 얘기를 종종 듣는다”며 아쉬워 하는 손목사는 “영국 스위스 독일 중국 러시아를 비롯한 세계 각국의 외국인들과 해외교포 등 연중 1만 2~3천여명의 국내외 순례객들이 찾고있는 자천교회는 일제때 일반 대중 상대의 근대적 공교육을 실시한 교회내 신성학당(새별 배움터)을 활용한 숙식 제공의 처치스테이를 운용하고 있다”고 소개한다.
손목사는 “내일의 한국교회를 짊어질 새로운 세대와 교인을 위한 교육공간인 신성학당은 현재 처치 스테이를 비롯 한국기독교역사교실, 독서교실, 문화체험교실(염색, 제빵, 목공예, 농촌체험), 작은 음악회 등의 자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영남신학대학교 영성훈련장과 전국 교회의 각종 수련회 및 소그룹 교육과 모임 장소로 이용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다양한 동기로 자천교회를 찾는 순례객들과 방문객들에게 교회의 역사나 시설물들을 소개하는 것은 물론 임고서원, 시안미술관등 지역내 가볼만한 곳을 안내하는데 천문대가 있는 보현산은 필수코스로 모신다”는 손목사는 “자천교회는 단순히 개신교 예배당만이 아니라 영천의 자랑스러운 역사문화 유산으로서, 지역 문화 컨텐츠(문화의 내용물)로도 적극 활용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국 개신교의 중요사적지로서 전국에서 수련회나 기도회를 위해 찾아오는 신도들은 물론 자천교회를 찾는 모든 내외국인들에게 “가급적 이곳 영천 현지에서 필요물품을 구매하고 현지식당을 이용하도록 안내함으로써 지역관광 활성화에도 한몫하고 있다”고 밝혔다.
교회사 박사로서 대한예수교 장로회 총회 역사위원이자 전문위원인 손목사는 “3.1운동 당시 제일교회 여집사가 영천장날에 단독으로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독립을 외쳤던 일이나 1946년 미군정하에서 해방후 최초의 동족상잔의 아픔으로 기록된 10.1사건의 직접적인 현장중 하나가 바로 자천교회라는 사실을 아는 이가 별로 없다”며 “자천교회는 개신교회사뿐만 아니라 한국 근대사의 변천 과정과 지역의 향토사 연구에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역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