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젊은 시절에 고향 영천을 떠났지만 하루도 고향을 잊은 적이 없다. 그때 부터 고향사람들과 매일 만나고 어울려 왔다. 한마디로 내 인생은 영천사람들과 어울려 온 한평생이었다” 永川과 살아온 한평생초대 사무국장을 역임하며 재경영천향우회 창립의 산파역을 맡은 한영수 원로회장(81)의 말이다. “초창기 재경영천향우회는 너무 어렵고 암담했다. 그러나 뜻있는 분들의 헌신적인 협조와 최석암 초대 회장님의 탁월한 지도력과 정성으로 향우회 반석을 굳건히 다지게 됐다”는 한 회장은 “원래 영천향우회를 설립하자는 제안은 자유당시절부터 있었다. 최연소 영천읍장 출신이자 이씨 종친회 간부였던 이정제씨 등 여러 인사들이 제안했으나 정치적으로 이용될 우려 때문에 계속 미뤄오다가 1981년 초 최석암 선생의 상경을 계기로 권중돈 장관의 제안으로 향우회가 태동됐다”고 밝혔다. 1981년 법을 전공한 이상철씨가 만든 정관으로 발기준비위원회를 구성하고 1982년 1월30일 창립발기회 발족에 이어 1982년 5월23일 우이동 ‘돌집’식당에서 최석암 선생을 초대회장(만장일치 추대)으로 제1회 재경영천향우회 창립총회가 성대히 개최됐다. 지난 10월31일 영천중학교 동창회 자리에서 만난 한 회장은 “당시 보다 많은 회원들이 참석할 수 있도록 향우회 창립광고를 일간지에 내면서 길 永자와 내 川자만 크게 부각해서 영천사람들의 관심을 끈 결과 창립총회에 5백명이나 모였다”고 소개했다. 특히 신녕출신 연정 임윤수 국악명인을 초청한 국악공연도 눈길을 끌었으며 여성들의 사회활동이 드물었던 세태였지만 1년 선배인 박옥희 현 원로회원을 초대 여성총무로 모셨던 일도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중국양식 향교 보수에 앞장 외자청(현 조달청)을 시작으로 공직에 발을 들여놓은 한 회장은 국립극장 서무계장, KBS전주방송국 과장, 문화공보부 창경원 사무소장, 국립공보관장, 종무담당관을 거쳐 독립기념관 사무처장을 역임하였고, 재경영천중학교 동창회장, 한일과거사 청산범국민운동추진본부 사무총장 등 사회 각 분야에서 왕성한 활동을 해 왔다. 현재도 (사)대한민국 건국운동 중앙협의회 부회장직을 맡고 있다. 문화공보부 종무담당관 재직시 1980년 10·27 법난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난 후 한보건설 상무로 일하다 문화공보부 산하 독립기념관 사무처장직을 거친후 고향사람들의 출마권유로 고향에 잠시 내려왔을 때를 회상하는 한 회장은 “공천을 받았느냐, 돈은 얼마나 있느냐는 고향 사람들의 질문에 돈을 추구했다면 많이 모았을 것이다. 고향사람들이 상경하면 차비주고, 먹여주고, 재워주고, 취직시켜주느라 돈을 다 써 버렸다며 서울로 다시 올라와 버렸다”는 일화도 소개했다. 창경원 소장 재직시 전국 유일의 중국양식 건축물이라는 구실로 보조금을 타내 영천향교를 보수해 준 일이며, 자양댐 수몰 위기에 처했던 문화재를 이전, 보존했던 사실도 아울러 밝혔다. “지금 영천에는 어른이 없다”“지금 영천은 너무 선거에 치중하고 있다. 지역민의 화합과 단결을 주도해야 할 영천시 노인회장이나 문화원장은 존경받을 자리인데 선거로 뽑아서 적이 생기고 반목이 생기면 안된다. 이런 자리는 선거보다 존경할만한 분을 옹립하고 추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문화원은 정말 중요하다. 누구든지 찾아와서 문제를 털어놓고 그것을 풀어주고 화합하는 공간이 돼야 한다. 이런 것을 누군가 조정해서 사심을 버리고 존경받을 만한 분을 추대하는 풍토를 만들어야 한다. 선거란 금품과 물질이 따르게 돼있다. 신성한 곳에 금품 물질이 개입돼서야 존경받을 여지가 없어진다”는 한 회장은 “고향발전을 위한 건설적인 제안이나 구체적인 실천방안들을 도출해 내는 문화원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고향이란 것이 푸근하고 인정 넘치는 곳이 돼야 한다. 살벌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왕평 선생 재평가”에 나서라KTX 동대구역사의 지상화와 지하화 논란이 일 때 영천에 역사를 만들자고 제안했던 일 이랑, 황성옛터 작사가 왕평 이응호 선생의 훈장 추서를 영천문화원에 몇 번이나 제안했으나 묵묵부답이었던 사실을 상기시키는 한 회장은 “만약 KTX역사가 영천으로 왔다면 도청도 영천으로 왔을 것”이라며 “지금도 영천시민 누군가가 이응호 선생의 훈장 추서를 요청하면 문화부가 수락하게 돼있다”고 강조했다. “지금 영천에는 어른이 없다. 지역여론을 하나로 모아 건설적인 방향으로 추진해가는 구심점이 없다”는 지적도 덧붙인다. 과거 조헌수 의원을 중심으로 결성된 영천발전위원회가 땀고개로 현재의 경찰서를 이전시킨 업적이 있듯이 지역 여론을 하나로 모을 수 있는 영천을 대표하는 인물이나 조직체가 결성되면 좋겠다는 의견도 내놓는다. “천문대를 유치했으면 기상대도 당연히 영천으로 왔어야 했다”는 한 회장은 “미국 헐리우드가 강우량이 적어 영화촬영소로서는 최적지이듯이 문경의 KBS 왕건세트장같이 영천에도 드라마 세트장을 건립해주겠다는 MBC측의 제안을 거부했다는 소식을 들었다”면서 안타까워했다. 왕평의 재평가나 영천의 천연세트장 건립과 같은 지역 발전현안들을 수렴, 추진할 수 있는 중심센터의 필요성을 거듭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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