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는 우리나라 보다 앞서 일찍부터 지방자치를 실시하고 있는 일본의 사례를 토대로 영천시가 발전 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일본 전문가 천호재교수의 ‘영천 발전을 위한 소고’를 시리즈로 게재한다. 시리즈는 문화콘텐츠와 관련한 일본의 사례를 통해 영천의 문화콘텐츠 운용양상을 점검하고 영천이 문화도시로 거듭나는데 필요한 아이디어를 지속적으로 제시하게 된다.
영천 발전을 위해서 브랜드 육성이 필요하다는 점은 누구나 다 공감하는 바이다. 그런데 브랜드 육성에 앞서 영천 지역의 예를 들어 농산물의 마케팅과 브랜드 구축을 우선 구별할 필요가 있다. 마케팅이 영천의 농산물이 팔리는 장치를 만드는 것이라면, 브랜드 구축은 영천의 농산물이 외지인들에게 지속적으로 팔리는 장치를 구축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점에서 영천 지역의 브랜드를 창조하기 위해서는 영천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을 외지인들이 지속적으로 구매하는 장치를 구축하는 것이 더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떻게 브랜드를 육성할 것인가 지속적으로 영천의 농산물이 팔리게 하기 위해서 생산량이나 가격을 조정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영천이 앞으로 지역의 브랜드를 진정으로 육성하고자 한다면 단순한 농산물(특산물)을 특화하여 파는 데에만 심혈을 기울이는 것보다 외지인들이 영천의 농산물을 계속해서 구매하고 영천을 계속해서 방문하고, 영천의 지역민들과 교류하고 나아가서는 영천에서 뿌리를 내리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도록 하는 데까지 사정권을 넓혀나갈 필요가 있다. 이것은 영천의 인구 유출 문제와도 관계가 있으므로 시정 관계자들은 외지인들의 영천 농산물 구매→방문→교류→정착의 단계를 개별적인 아닌 융합적인 방식으로 면밀히 설계해 나가야 한다. 지역 브랜드 육성을 위한 경험 가치의 중요성을 인식한다그런데 중요한 것은 외지인들이 영천의 농산물을 구입하고 영천을 방문하고 영천 지역민들과 교류하고 영천에 정착을 결심하기까지 외지인들과 영천 지역민들의 관계를 어떻게 심화시켜 나갈 것이냐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시정 관계자들이 경험 가치에 대해 인식할 필요가 있다. 경험 가치란 단순히 특정 지역에서 생산되는 농산물 그 자체의 가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농산물을 생산한 특정 지역민들, 자연, 역사, 문화, 전통을 자랑하는, 그 지역만의 고유의 특성에 의해서 창출된 가치를 말한다. 지역 브랜드는 바로 이들 경험 가치 위에서 창조되어야 한다. 경험 가치에 입각하지 않으면 영천 지역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은 다른 지역의 농산물과 차별되지 않기 때문이다. 영천 지역의 경험 가치와 농산물이 소비자들에게 전해져야 비로소 지역 브랜드 이미지가 외지인들의 뇌리 속에 자리 잡게 된다. 따라서 영천의 지역민들이 이들 경험 가치를 충분히 인식한 후에 외지인들에게 이들 경험 가치를 지속적으로 퍼뜨려나간다면 지역민들과 외지인들의 교류는 한층 더 심화되어 나갈 것이다. 경험 가치를 들으면 구매할 것이고, 구매하면 입소문을 타고 방문할 것이고, 방문하면 교류할 것이고, 교류하면 정착을 결심할 것이기 때문이다. 지역 브랜드에는 정체성이 있어야 한다경험 가치는 지역 브랜드의 정체성을 의미하기도 한다. 정체성이란 사람의 경우 ‘이러한 사람이 되고 싶다.’를 말한다. 마찬가지로 영천 지역에서 생산되는 농산물도 외지인들에게 ‘이러이러 저러저러하게 인식되고 싶다.’라는 정체성이 내재되어 있어야 한다. 영천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의 정체성이 없거나 혹은 정체성을 인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외지에 판매가 되었다면 외지인들의 눈에는 영천의 농산물이나 타지역의 농산물이나 별반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보현산 천문대의 이미지를 따서 지은 ‘별빛 포도’는 시정 관계자들의 지역 브랜드에 대한 정체성을 강력하게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정체성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그러면 그 정체성이 어떻게 만들어지느냐 하면 영천 지역민들, 자연, 역사, 문화, 전통 등이 어우러져 만들어진다. 일본을 예로 들면 오이타현(大分縣) 유후인쵸(湯布院町)는 온천과 예술을 결합시켜 정서적인 분위기를 표출함으로써 지역 브랜드화에 성공하였다. 또한 나가노현(長野縣) 오부세마치(小布施町)는 역사적 자산을 지역과 결부시켜 지역 브랜드화에 성공을 거두었으며, 홋가이도(北海道) 오타루시(小樽市)는 운하와 항구를 결부시켜 지역 브랜드화에 성공하였다. 이들 각 도시의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지역 브랜드에 대한 자세한 사항들이 공개되어 있다. 영천에서도 최근 조선통신사 행렬과 대마를 결부시켜 지역 브랜드화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데 이는 영천의 브랜드를 지역의 정체성에서 찾고자 하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정체성을 바탕으로 영천 지역에 숨어 있는 정체성을 찾으면 더욱 더 다양한 브랜드가 창출될 것이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지역 브랜드 창출을 위한 정체성의 원천을 찾아야 한다 영천 지역의 구석구석을 찾아보면 지역 브랜드 창출을 위한 다양한 정체성이 산재해 있다. 지난 호에서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우선은 지명을 분석하여 지명 속에 숨어 있는 정체성을 찾고자 노력할 필요가 있다. 필요한 경우, 면사무소나 동사무소를 방문하여 지명에 관련된 기록을 열람할 필요가 있을 것이며, 또는 향토사학자의 견해를 참고해도 될 것이다. 각 지역에 흩어진 각종 비석(예를 들면, 열녀비)에 새겨진 기록이나 문중의 족보, 내력 등을 참고해도 될 것이며 경로당에 모인 노인들의 기억을 참고해도 된다. 영천시에서 스토리텔링 전문가를 중심으로 한 정체성 전담반을 꾸려 일정 기간 영천 지역의 정체성을 시대별(삼국시대-고려시대-조선시대-근현대)로 또는 지역별로 찾고자 하는 태스크 포스(10명 정도, 현장 실무는 대학생들이나 대학원생들이 맡는다.)를 운영할 필요가 있다. 태스크 포스에서 채집된 모든 내용들을 데이터 베이스화하여 그것을 영천 지역의 고유자산으로 삼는다. 이는 곧바로 영천 지역의 브랜드 창출을 위한 정체성의 원천이 되며 열쇠가 될 것이다.
프로필)
계명대학교 인문국제대학 일본어문학과 교수 재직. 일본 도호쿠 문학연구과 언어학박사. 저서로는 ‘일본문화의 이해와 일본어교육’(역락출판사), ‘일본의 음식문화와 레토릭’(책사랑) 등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