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는 우리나라 보다 앞서 일찍부터 지방자치를 실시하고 있는 일본의 사례를 토대로 영천시가 발전 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일본 전문가 천호재 교수의 ‘영천 발전을 위한 소고’를 시리즈로 게재한다. 시리즈는 문화콘텐츠와 관련한 일본의 사례를 통해 영천의 문화콘텐츠 운용양상을 점검하고 영천이 문화도시로 거듭나는데 필요한 아이디어를 지속적으로 제시하게 된다.
지난 호에서는 컨셉의 개발 단계로 ‘지역 자산의 검토’, ‘사회문화 문맥에 대한 통찰’, ‘체험을 기반으로 한 지역 브랜드 컨셉의 추출’, ‘자산의 편집과 체험의 디자인’에 대해서 언급하였다. 이번 호에서는 지역 컨셉 개발에 대한 심도 있는 이해를 위해 식문화자산을 브랜드화한 일본 미에켄 이가시 구아야마쵸의 사례를 살펴보기로 한다.
▶식문화자산을 활용하여 브랜드화한 이가시의 사례 지역 브랜드화는 예를 들어 지역 전체가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지역을 구성하는 특정한 행정구역이 그 대상이 되기도 한다. 영천의 어느 한 지역(면이나 리)이 주체가 되어 자신들의 거주지역을 브랜드화하고자 할 경우, 이가시 구아야마쵸의 사례는 큰 참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인구 8000명의 미에켄 이가시 구아야마쵸에 1995년에 개원한 수공농장(手作り農場)이 있는데 연간 약 50만 명의 관광객들이 방문한다. 이하 수공농장이라는 컨셉이 어떻게 해서 탄생하였는지 그 개발 단계를 살펴보기로 하자.
▶지역 자산과 이가 돼지의 개발 영천이 대마, 쌀, 돔배기, 약초 등이 유명한 것처럼 일본의 이가시 구아야마쵸는 양돈과 쌀이 유명한 곳이었다. 구아야마쵸의 농협에 근무하던 직원 기무라 오사무 씨가 돼지의 브랜드화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었다. 흔히 그러하듯 돼지를 사육하는 농가는 어느 지역에도 있기 마련이어서 이가의 돼지를 차별화할 필요가 있었다. 각고의 노력 끝에 돼지에게 식초를 먹이면 먹기 쉽고 냄새가 나지 않는 돼지고기의 생산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후 식초먹인 돼지 생산을 본격적으로 하게 되었으며 그것과 더불어 햄 공방을 열어 돼지고기의 생산, 판매, 햄의 생산에 이르는 고부가가치의 생산구조를 실현할 수 있었다.
▶문제의식의 맹아와 컨셉의 추출 먹기 쉽고 냄새가 나지 않는 돼지고기의 개발에 성공한 기무라 씨는 사표를 내고 식품회사를 설립하여 이가 돼지의 개발에 본격적으로 뛰어 들었다. 현대인들의 식문화와 농업에 대한 지대한 관심이 무엇보다 클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대부분의 나라가 그러하듯 현대의 음식은 대량생산되고 대량소비되기 때문에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심적 물리적 거리는 크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소비자는 햄이 어떠한 방법으로 만들어지는지 잘 모르며, 반대로 생산자에게는 불특정 다수의 소비자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기무라 씨는 21세기의 농업을 단순히 농산물을 생산하는 차원에서 머물지 않고 가공에서 판매에 이르기까지의 전 과정을 농업으로 간주하여 소비자의 얼굴이 보이는 농업을 실천하였다.
최근 영천에서도 6차산업의 중요성을 크게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것은 농업의 범위를 1차산업→2차산업→3차산업으로까지 확대하겠다는 의미이다. 기무라 씨의 노력에 힘입어 구아야마쵸는 농업의 범위를 1차산업으로 한정하면 사람들이 그 지역을 이탈하지만, 2차산업, 3차산업으로 확대해 나갈수록 농업에 종사하려는 사람이 많아지고 그 결과 정주 인구가 늘어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직접적으로 농사를 짓지 않아도 2차산업, 3차산업에 종사하는 것으로도 살아갈 수 있겠다는 의식을 지역민들과 외지인들이 가지게 된 것이다. 그 결과 구아야마쵸에서는 ??생산자와 소비자의 얼굴이 보이는 농업??이라는 컨셉이 자연스럽게 대두되었으며 나아가??로망과 꿈이 있는 21세기형 농업??이라는 슬로건이 탄생하였다.
▶자산의 편집과 체험의 디자인 햄 공방에서 ??로망과 꿈이 있는 21세기형 농업이라는 슬로건 하에 수공과 무첨가에 초점을 두고 햄과 소시지를 만들었는데 잘 팔리지 않았다. 그런 어느 날 어느 유치원의 학부모가 유치원 원장에게 아이들에게 비엔나풍의 소시지를 만들어달라고 요청하였다. 실제로 만들어보니 만드는 방법이 그리 어렵지 않고 매우 즐겁기까지 하여 삽시간에 큰 반향을 일으켜 그 소문이 구아야마쵸 전체에 퍼지게 되었다. 이에 착안하여 기무라 씨는 비엔나풍의 소시지를 생산하기 시작했는데 판매량이 비약적으로 증가하였다. 이와 같이 체험을 통해서 식품을 판매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기무라 씨는 농업공원인 수공농장을 개원하기에 이르렀다.
기무라 씨는 햄이나 소시지 판매 외에도 약 80여 개의 농가와 협력하여 이가 쌀의 개발과 유기채소 생산에도 힘을 기울였다. 유기채소 포장지에는 사용한 농약의 종류와 농약을 친 횟수, 시기 등의 정보를 기록함으로써 소비자로부터 두터운 신망을 얻기도 하였다. 또한 수공농장에서는 식체험프로그램(음식교육프로그램) 개발에도 힘을 쏟았다. 우유도 콜라나 주스처럼 인공적으로 공장에서 만들어지는 것으로 아는 아이들이 많고, 대학생들도 햄이나 소시지의 원료가 돼지고기라는 사실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안 기무라 씨는 이를 계기로 음식학습 농장을 만들게 되었다. 예를 들어 한 마리의 소에서 우유가 몇 팩이 나오는지 칠판에 적으면서 설명을 하고는 아이들에게 소젖을 짜는 체험을 시키기도 하고 식재의 맛을 그대로 느끼도록 하는 미각교실을 열기도 하였다. 그 결과 많은 아이들과 부모들이 방문하여 숙박을 하며 식체험을 하였다. 그 수가 연간 50만 명이라 하니 참으로 놀랍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차세대 농가의 육성과 교류 구아야마쵸로 농사를 짓거나 농업에 종사하겠다는 청장년층들이 모이기 시작하였다. 구아야마쵸뿐만 아니라 도시의 각박한 삶과 인터넷의 보급, 교통발달 등의 다양한 요인에 힘입어 일본에서는 농업에 종사하려는 생각을 가진 청장년층들이 계속해서 늘고 있다. 농대에서 최신 농법을 전공한 청년들이 2차산업과 3차산업으로서의 농업에 매력을 느끼고 실제로 수공 농장에 지망하는 경우가 많으며 다른 지역에서 온 귀농 희망자들이 수공 농장과 교류를 하고 있으며 공부를 위해 체류하는 외지인들도 증가하고 있다. 아래의 수공 농장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실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확인할 수 있다. 적극적인 벤치마킹을 고려해봄직하다.
-참고문헌 和田充夫外(2009) 『地域ブランドマネジメント』 有斐閣(東京)-일본 이가 수공 농장 홈페이지 http://www.moku-moku.com/
프로필계명대학교 인문국제대학 일본어문학과교수 재직. 일본 도호쿠 문학연구과 언어학박사. 저서로는 ‘일본문화의 이해와 일본어교육’(역락출판사), ‘일본의 음식문화와레토릭’(책사랑) 등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