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늘과 수도작 이모작을 합니다. 5,940㎡(1천8백평) 논에 6월20일경 벼를 심고 9월30일경 수확하고, 9월말 또는 10월초에 마늘을 심고, 6월중순에 수확합니다. 수도작은 말그대로 물을 대어서 농사를 짓는 것을 말합니다. 벼농사를 의미합니다.”
인생이모작 위해 대입원서 제출귀농 9년차인 화산면 가보농장 대표 이찬봉씨(63)의 말이다. “100세 시대 인생이모작을 위해 대학입학원서를 냈습니다. 남성보양사가 되어 장차 집사람을 간호해 줄겁니다. 인생이모작 성공을 위해서지요”라고 밝게 웃는 이씨는 “귀농생활은 틀림없는 제2의 인생이다. 지금 생각하면 나의 귀농은 좀 늦은 것 같다. 한 살이라도 더 젊었을 때 귀농을 한다면 많은 꿈을 이룰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화산면 가상리 지금의 별별미술마을에서 6남매중 맏이로 태어난 이씨는 산동농고 축산과 졸업후 농부의 길을 걷기로 마음먹 었으나 입대해 위생병으로 근무하면서 인생의 진로가 바뀌었다고 한다. 어릴때부터 손재주가 남달랐던 이씨는 의무수리병으로 근무하면서 기술경진대회에서 군복무 3년 생활중 2년동안 연속 1위를 차지해 군사령관 표창을 받기도 했다. 전역후 1978년 구미 금성사에 입사하면서 빼어난 손재주 덕분으로 흑백브라운관 생산현장에서 작업반장이 됐다.
고향인 화산면 가상리로 귀농탁월한 친화력으로 노동조합 대의원으로 활동하면서 2006년 퇴직하기 전까지 28년동안 LG전자 한 곳에서 일했던 이씨는 퇴직후 1년동안 소일하다 이듬해 고향인 화산면 가상리로 귀농했다. 아내설득에 실패하고 혼자 감행한 귀농이었다. 귀농 후 논농사 3천여평, 밭농사 2천여평을 짓기 시작했다.
밭농사는 지역의 특화작물인 마늘을 심었다. 그렇게 3년째 농사를 지어도 매년 적자를 면치 못했다.그러나 6남매의 맏이로서 대도시에 사는 다섯 동생들에게 농사지은 쌀, 양파, 마늘, 참깨 등 수확물을 나눠줄 수 있어서 행복했다는 이씨는 “귀농의 최고 선물은 땅에서 얻은 수확물을 형제들과 나눠 먹으며 형제애를 돈독히 할 수 있었다는 점”이라고 한다. 평소 형제는 하늘이 내려준 벗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는 이씨는 “맏형이 시골에 자리잡으니 형제들이 자연스레 자주 모일 수 있어서 너무 좋다”고 말했다.
‘귀농일지’가 농사에 큰 도움돼“귀농직후부터 적어온 귀농일지가 해를 거듭할수록 농사를 짓는데 큰 도움이 됐다”는 이씨는 “귀농한지 얼마되지 않아 3년동안 이장직을 맡아 마을사람들과 교류했던 일이 또하나의 큰 보람”이라고 밝혔다. ‘주민으로 돌아가서 한알의 밀알이 되겠다’는 각오로 귀농했던 이씨는 주민투표로 뽑힌 이장으로서 고향마을을 아름다운 마을로 만드는데 열성을 다했다고 한다.
3년동안 마을이장 맡기도자신의 농장이름을 ‘가보농장’이라 이름지은 이유도 가상리 마을에서 보람있게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자는 뜻이라고 설명하는 이씨는 구미에서 얻어온 복분자 나무 10여 그루를 보살피는데 정성을 다하는 것도 고향마을을 아름답게 가꾸겠다는 생각에서다.
“2009년 귀농후 2년동안 구미에서 한달에 두세번씩 왕래하던 아내가 귀농에 합류했을때가 가장 기뻤다”는 이씨는 “마늘과 벼를 재배하기 위해서 2년 전까지 트랙터 등 농기계를 구입하느라 귀농후 소득 전액을 재투자만 해 온 셈”이라며 “지난해 6~7천만원 연소득이 있었다”고 말했다. 앞으로 발생하는 소득으로는 농지를 추가로 매입할 계획이다.
성공귀농을 위해서는 청장년 시절부터 귀농계획을 세울 것과 구체적인 준비는 최소한 2~3년동안 꼼꼼하게 하라는 것이 이씨의 권고다. “귀농후에는 주민들과의 화합이 중요하다”는 이씨는 잘난 척하지 말 것과 있어도 없는 척, 주민들의 풍습이나 권유를 잘 따르라며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준다. 귀농직후 비료치는 법에 관한 질문에 “너 스스로 알아서 하라”는 친구의 답변이 무척 섭섭했었지만 바로 붙어있는 논이라도 토질이나 기후 조건 등이 모두 다르기에 스스로 터득해야한다는 사실을 나중에 깨닫게 됐다는 것.
또 이씨는 “돈을 더 주더라도 좋은 품질의 농산물을 찾는 도시 소비자들의 취향을 쫓아 친환경 무농약 재배로 상품가치를 올릴 것과 함께 도·농직거래로 유통마진을 챙겨야 한다”고 조언한다. ‘귀농초기 때의 배려’ 더 필요
“귀농을 위한 기술지원과 정보제공도 중요하지만 주택과 농기계 마련이 급선무인 귀농 초창기 때의 배려가 좀 더 잘 이뤄졌으면 좋겠다”는 이씨는 영천시귀농연합회 수석부회장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직장생활때도 인사노무담당자로 워낙 사람들을 사귀고 만나는 것을 좋아했었다”는 이씨는 귀농이후 농사 반, 인간관계 반인 생활을 하고 있다. 계모임이나 동창회 등 17개의 각종 모임 월회비만 어지간한 직장인의 월급여 수준이라고 한다.
구미 집에는 2남1녀중 출가한 막내 아들을 제외한 두 자녀가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