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아이는 이제 초등학교 1학년이 되었습니다. 오전을 학교에서 지내다가 집에 오면 학원 가기 전까지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합니다. “엄마, 00이가 이렇게 말해서 애들이 웃었어. 내가 우유통을 가져오는 일을 맡았어. 오늘 선생님 심부름 때문에 4학년 교실에 갔다가 동네 오빠 만났어.” 그러면서 저는 아이가 어떻게 지내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시간은 제가 가장 행복하다고 느끼는 순간이었습니다. 아이가 자신의 생활을 설명할 수 있을 만큼 컸다는 것에 감격을 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과정을 통해 저와 아이가 소통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며칠 전 정기적으로 하는, 아이 초등학교 반모임이 있었습니다. 같은 반의 엄마들이 시간을 맞춰 오전 시간에 차를 마시면서 아이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모임이었습니다. 각자의 아이에게 들은 반생활을 서로 공유하면서 같은 사건에 대한 아이들의 생각과 입장이 그렇게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새삼 느꼈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아이가 한, 다른 아이에 대한 평가를 전해주면서 저의 충격은 시작되었습니다. 제 아이가 교실에 늦게 들어가고, 하고 있던 만들기 작업물을 늦게 마쳐서 선생님께 한 소리를 들었던 모양입니다. 이럴 수가. 당연히 행동을 빠릿빠릿하게 하고 칭찬만 듣는 줄 알았는데. 그날 일을 최대한 빨리 마치고 집에 가서 아이가 학원에서 돌아오기를 기다렸습니다. 아이가 돌아오자 “오늘 어땠어?”라고 물어보았습니다. 아이는 “그냥 괜찮았어.”라고 대답했고요. “만들기 잘했어? 무슨 일 없었어? 선생님한테 꾸중은 안 들었어?” 같은 말을 계속 물어보는 저와 간단하게 답하는 아이 사이에 뭔가 벽이 생기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원하는 답을 듣고 싶었던 저는 멈출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들은 이야기를 물어보았습니다. “너 어제 선생님께 걱정 들었어? 만들기 늦게 해서 선생님이 한 소리 하셨다면서?” 그러자 아이는 갑자기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더니 한 말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엄마는 왜 꼬치꼬치 묻기만 해?” 저는 혼란에 빠졌습니다. 엄마로서 알고 싶은 마음에 자꾸 물어보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관심이 있으니 물어보는데 그렇게 말하니 너무 서운하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안 물어보면 네 생활을 모르잖아.”라고 하자 아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엄마 생활 캐묻지 않는데 엄마는 자기 이야기는 하나도 안 하고 묻기만 해. 내가 뭐 죄 지었어?” 캐묻다니! 사랑하니까 궁금하고 걱정돼서 그냥 물어본 것일 뿐인데 아이는 그걸 캐묻는다고 생각하다니! 아이의 말을 듣고 예전에 들었던 학생 상담 관련 특강이 생각났습니다. ‘취조가 아니라 대화를 하라.’ 부모가 자녀를, 교사가 학생을 상담할 때 유의해야 할 것이 대화의 방식이며, 최소한 상대방에게 듣고 싶은 만큼 자신의 이야기를 한 뒤에 질문을 해야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날의 강의자는 특강 초에 청중인 교수들에게 뭘 듣고 싶은지, 요즘 어떤지, 힘든 일은 뭔지 10분 넘게 계속 물었고 청중 한 사람은 그만 묻고 그냥 강의를 시작하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강의자는 바로 그 점이 학생들이 상담을 당하는 상황이라며 상담하러 오는 학생들이 그런 기분을 느낄 거라고 하였습니다. 그 강의를 들을 때 저를 포함한 청중들은 이제부터는 상담할 때 자신의 이야기를 먼저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런 뒤로 시간이 지나서였을까요? 저는 듣지 않고 묻기만 하고 보여 주지 않고 보여 달라고만 하며 말하지 않고 보여 주지 않는 아이를 다그치는 떼쟁이 엄마가 된 것입니다. 그날 저녁에 제 이야기를 먼저 정리해 보았습니다. 그런 뒤 식사를 마치고 아이의 눈을 보고 저에게 고민이 있다면서 말을 건네기 시작했습니다. “엄마 이야기 좀 들어줄래? 오늘 날씨가 좋아서 산책을 많이 했어. 새로 핀 영산홍이 예쁘더라. 사진도 찍었어. 다음에 같이 가보자. 그런데 오늘 수업이 좀 힘들었어. 학생들에게 설명하는 것이 조금 어려웠는지 문장을 잘 못 만들어서 속상했어. 학생들의 마음을 이해하는 게 점점 어려워지나 봐. 그래서 걱정이야. 어떻게 하면 좋을까?” 가만히 듣고 있던 아이는 저를 위로하기 시작했습니다. 힘든 일은 누구나 있는 거라면서 그럴 때는 예쁜 꽃을 보라고요. 그래서 아이에게 잘 안 되는 일이 있는지 물어보았습니다. 그러자 제가 듣고 싶던 이야기를 드디어 꺼내기 시작했습니다. 속상해서 비밀로 하고 싶었다고 합니다. 상세하게 이야기하고 같이 울고 저도 아이도 노력하기로 했습니다. 아이와 한 약속대로 자세한 이야기는 비밀입니다. 그 날 이후로 며칠 지나지 않았지만 아직은 매일 서로 좋은 일 힘든 일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물론 제가 먼저 제 오늘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면 아이가 조언을 한 뒤 자신의 오늘을 이야기하는 방식이지요. 이 다짐과 실천이 언제 또 흐지부지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때마다 다시 깨달을 계기가 생길 거라 믿습니다. 다음 달에 있을 반모임이 무척 기다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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