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널뛰기를 하는 봄날이지만 운동장엔 학생들의 싱그러운 함성과 짙고옅은 초록의 향연으로 가득 넘칩니다. 운동장을 볼 때마다 옛날 우리 시골집의 마당이 떠오릅니다. 그렇게 넓지는 않지만 늘 정돈된 마당이었지요. 마당은 우리 가족에게는 참 의미가 많은 공간이었습니다. 우리 가족 모든 삶의 시작과 끝이 모두 마당에서 이루어졌지요. 해가 긴 여름날에는 친구들과 실컷 놀다가 땅거미가 어스름히 깔리는 골목을 밟아 집으로 와서는, 가족들의 어깨 위에 달빛이 풍성하게 쌓이도록 마당의 평상에 둘러앉아 밥을 먹었습니다. 마당은 아이들에게 땅따먹기와 팽이치기를 하던 둘도 없는 놀이터였지요. 또 삼촌이 숙모와 미래를 약속하는 결혼식장이었고 할아버지 회갑연이 열리던 잔치의 공간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일상의 삶을 누리던 마당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요? 편리하고 쾌적한 주거환경은 우리에게 마당을 앗아가 버렸습니다.
우리는 문명의 혜택을 많이 누리고 있습니다. 내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어릴 때만 하더라도 200여 가구나 되는 큰 마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마을 전체에 전화 한 대와 TV 몇 대밖에 없었지요. 그 당시 요즘 프로야구만큼 인기가 높았던 김일 선수가 나오는 레슬링 경기를 보려고, TV있는 집의 마루와 평상까지 온 마을 사람이 모여 함께 시청하면서 응원했던 기억이 납니다. 또 전화를 해야 할 때가 있으면 전화 있는 집에 가서 정중하게 부탁을 해서 허락을 받아야 겨우 전화 한 통을 걸 수가 있었지요. 그런데 요즘은 휴대폰으로 게임을 즐기거나 카톡하기에 열중하고, 여유로울 때에도 책읽기보다는 TV시청이나 컴퓨터게임에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참 편리하고 재미있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많은 교육학자들은 깊이 있는 분석력과 통찰력, 사고력과 상상력을 키우기에는 영상매체보다는 활자매체를 통한 독서가 훨씬 유용하다고 주장합니다. 독서는 자신의 경험을 확대해서 미지의 세계를 만나서 알게 되며, 성숙하고 유능한 인간형성에 큰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학생들의 독서량은 외국에 비하면 부끄러울 정도로 매우 낮은 편입니다. 그래서 정부까지 나서서 책읽기를 주도해 대학입시까지 독서 이력을 반영하게 되었습니다. 최근 서울대를 위시한 주요 대학들이“오랜 기간 독서를 많이 한 학생이 유리하도록 창의적인 사고력과 분석력을 측정하겠다.”고 하며 독서능력을 대학입시의 척도로 활용합니다.
독서는 우리 몸에 가장 필수적인 음식섭취와 수면처럼 우리 삶에서 꼭 필요한 요소입니다. 가정에서 컴퓨터나 SNS를 잠시 멈추고 가족 독서 시간을 함께 가지기를 권합니다. 각 지자체에서는 도서관을 정비해서 책도 옛날보다 풍성하게 마련해 놓았고, 학교마다 도서관은 양서로 가득합니다. 이제 가정에서 응답할 때입니다. 습관처럼 막장드라마에 짜증을 내면서 매달리지 말고, 엄마와 아들이 혹은 딸과 아버지가 함께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만들어 봅시다. 무더위가 방문하기 전인 요즘 책읽기 더없이 좋은 계절입니다. 책 읽는 모습은 가장 아름다운 모습 중 하나입니다. 평소에 계획을 세워서 좋은 책을 많이 읽는 학생들은 사려도 깊어지고 집중력도 향상되겠지요. 세계적인 잡지, 리더스 다이제스트가 20세기 최고의 수필 중의 하나로 선정한 헬렌 켈러의 <사흘만 볼 수 있다면 Three Days to See>이라는 글에는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헬렌 켈러는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장애를 이겨낸 미국의 작가입니다. 스승인 가정교사 앤 설리번을 만나, 세상을 이해하게 되었고 나중에는 명문대학교인 하버드 대학을 졸업할 수 있었습니다.
헬렌 켈러는 "내일이면 귀가 안 들릴 사람처럼 새들의 지저귐을 들어보라. 내일이면 냄새를 맡을 수 없는 사람처럼 꽃향기를 맡아보라. 내일이면 더 이상 볼 수 없는 사람처럼 세상을 보라." 그렇지요. 내일이면 더 이상 불가능한 일인 것을 알게 되면,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사소한 일들이 얼마나 소중하고 놀라운 기적 같은 것인지 깨달을 수 있습니다. 헬렌 켈러는“봄이면 저는 자연이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신호인 꽃봉오리를 찾기 위해 희망을 가득 안고 나뭇가지를 쓰다듬어 봅니다. 저는 꽃의 부드러운 살갗을 느끼고 기뻐하며, 그것의 놀라운 둥근 무늬들을 발견합니다.
자연의 경이로움은 제게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만약에 아주 운이 좋다면, 작은 나무 위에 부드럽게 손을 올려놓고, 목청껏 노래하는 새의 행복한 떨림을 나누게 됩니다. 저는 펼친 손가락 사이로 흐르는 시냇물을 만지며 기뻐합니다. 저에게는 쌓인 솔잎과 푹신한 잔디가 화려한 페르시아의 양탄자보다 반갑습니다. 손끝을 타고 흐르는 계절의 변화가 저에게는 곧 끝없이 이어지는 가슴 벅찬 드라마인 것입니다.”라고 우리의 의식을 흔들어 깨웁니다.
점점 깊어 가는 봄에, 우리 모두 가을의 아름다운 열매를 준비하는 마음으로 집집마다 책을 읽는 시간을 만듭시다. 그래서 가족이 다함께 다양한 독서를 통해 풍성하고 의미 있는 시간의 꽃을 활짝 피워봄이 어떨까요? 그러면 각 가정마다 잃어버렸던 소담한 마당이 다시 살아날 겁니다. 그 마당에서 바쁘게 사느라고 잠시 잃어버렸던 희로애락의 삶이 다시 건강하게 봄꽃처럼 부활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