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에게 ‘당신은 앞으로 얼마를 더 살 것 같으냐?’라고 물으면 대답은 각양각색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직도 백수(白壽:99세)를 넘기는 것을 어렵게 생각하는 듯하다.
그러나 과학과 의학의 발전이 궤도를 벗어난 위성처럼 엄청난 속도로 진행되고 있어 현재를 살고 있는 사람들의 수명연장을 예측하기는 쉽지 않다. 아마도 우리가 기대하는 것보다 훨씬 길어질 것 같다.그래서 나는 공공연히 120세까지 살겠다고 이야기한다. 물론 ‘산다’는 의미는 충분히 활동하다가 죽음을 맞는 때를 일컬음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몇 살까지 살아있느냐는 것이 아니다.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해답이 있어야 한다.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이 결코 녹록한 삶이 아니었을진대, 그보다 더 많은 시간을 살아야 한다면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당연히 지금부터라도 제2의 삶을 다시금 설계해야 한다.
사람이 어머니 뱃속부터 아니 그 이전부터 삶의 설계도가 프로그램 되어 있는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는 20대 혹은 30대까지 20년 이상 죽어라 공부해서 사회로 나간다. 그리고 어영부영 살다 보면 60세 정년이란 족쇄가 우리 몸을 휘감기 시작한다. 그래서 노벨 문학상에 빛나는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 조차도 그의 묘비에 “우물쭈물 하다가 내 이렇게 될 줄 알았다(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라고 써주기를 유언하여 그렇게 하였던 가 보다.
6.25를 체험하신 격동기의 부모님 세대는 늘 걱정과 노동으로 점철되는 세월을 살아왔다. 어려운 경제 여건 속에서 어떻게 하면 끼니를 때우고 어떻게 하면 자식 농사를 잘 지어서 이 어려운 현실을 벗어날 수 있을까에 올인(all in) 하다 보니 정작 자신의 삶은 잃어버리고 살았다. 이렇게 헌신적으로 억척같이 살아오신 분들이 지금 7, 8십 대의 고령자가 되었다. 자식 된 자로서 부모님의 휘어진 등을 보면서 가슴 아프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으랴.
그렇지만 ‘부모님께 잘 해야지’하는 생각은 있지만 정작 부모님께 잘 해드릴 수 없음이 안타깝다. 팍팍한 살림살이, 현실이 되어 옥죄어 오는 자식의 문제에 매달리다 보면 본의 아니게 부모님께 소홀해 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내리 사랑은 쉬워도 치사랑은 어렵다고 했던 가 보다. 이런 현실을 잘 인식하고 있는 5, 6십대는 자식에게 기대지도, 재산을 물려주지도 않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사람들은 육신의 살아있음에 대한 걱정은 많은데 어떻게 보람된 나날을 보내다가 최후를 맞을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적은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동안 우리 사회에 행복한 인생에 대한 담론이 부족한 탓일 터이다. 사람의 얼굴이 천인천색 만인만색이듯이 지니고 있는 욕구 또한 천차만별이다.
같은 시간에 같은 자리에서 순간순간 일어나는 욕망은 아마도 근본오욕(食, 性, 財, 名譽, 睡眠)이 큰 비중을 차지할 것이다.
그러나 사색과 자기성찰을 통한 정신건강의 회복, 봉사를 통한 사회기여, 생태보전이나 평화운동 등의 활동, 영혼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수행 등 많은 일들을 우리 욕망의 앞자리에 가져다 놓을 수도 있다.건강이 화두가 되고 있는 요즈음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별난 음식을 찾아다닌다. 몸에 좋다는 산과 들의 약초를 찾으면서 등산을 즐기는 사람들이 무리지어 산천을 헤매는 광경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또한 여러 교육기관에서 내놓은 다양한 건강 프로그램에 참여하기도 한다. 건강백세는 몸과 마음이 온전해야 한다.
육신의 건강은 물론 진정한 자아를 돌아볼 수 있는 건강한 영혼이 깃든 삶을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2갑자 ,120세를 살아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행복한 삶(well being)과 행복한 죽음(well dying)을 생각하여야 한다.
긴긴 2갑자의 세월에 좋은 반려자, 좋은 친구, 좋은 도반을 만난다면 금상첨화(錦上添花)가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