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휴....” 표지석 앞에 이르자 헛숨이 절로 나왔다. 실망어린 숨이리라. 허리춤 높이의 보잘 것 없는, 차라리 초라하다고 해야 할 만큼 작은 규모의 목표물이 한 여름의 땡볕을 가르고 이역만리 길을 나서 겨우 찾아낸 나의 수고로움을 허망하게 하면서 순간 피로감이 몰려들었다.나는 지난 여름방학 때, 일본 교토에서 동경으로 이어지는 동해변의 한 조그마한 소읍, 오미하치만시를 찾았다. 그 지역은 17-19세기 초까지 쓰시마를 거쳐 일본 본토에 오른 조선통신사행단이 오사카-교토-오미하치만-에도(도쿄)로 향하던 옛길이다. 나는 그 길의 중심부에 해당하는 오미하치만시를 찾은 것이다.교토에서 이틀을 묵은 나는 지도 한 장을 들고 열차와 버스를 번갈아 타면서 동쪽으로 비와호가 그림처럼 펼쳐지는 오미하치만시에 들어섰다. 관광안내지를 꼼꼼히 살피며 먼저 혼간지 하치만 별원에 들렸다. 혼간지는 전국시대 일본 무사들의 애환을 묻어 놓은 절이다. 1600년, 내전에서 무권을 장악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교토에 있는 천황을 만나러 갈 때 하룻밤 묵었던 곳이기도 하거니와 일본 사행길의 조선통신사가 쉬거나 숙박했던 곳인 만큼 많은 일화를 지닌 전통 깊은 절이기에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절 후문 쪽까지 꼼꼼히 살핀 뒤 밖으로 이어진 좁다란 골목길을 따라가며 나는 여정을 계획할 때부터 목표로 삼았던 조선통신사 표지석을 찾느라 끼니도 거른 채 걷고 또 걸었다. 말복이 가까운 일본의 여름날은 숨이 탁탁 막히게 했다. 정오가 훌쩍 지난 여름햇살이 눌러쓴 모자를 달구다 못해 머리 밑을 뜨겁게 했다. 두어 시간 째 낯선 골목길을 헤매고 다니면서 표지석을 찾는 일에 동분서주하느라 등골에 비지땀이 흥건히 배였다. 체력에 한계를 느끼며 우두커니 서있는데 사람 하나 없던 곳에 때 마침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젊은이가 보였다. 나는 다짜고짜 그를 세우고는 표지석의 위치를 물었다. 어디선가 본 듯하다는 그는 자전거를 한 손으로 끌면서 나를 안내한다. 좁은 길을 몇 차례 가로 지르더니만 머리를 갸우뚱하며 마을도서관인 하치만도서관으로 나를 안내했다. 그가 도서관 직원들과 표지석 위치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나는 조선통신사와 관련되는 지역 지료가 있는지를 확인했다. 몇 권의 향토사 연구 자료 속에 마을의 내력과 함께 조선통신사의 이야기가 매우 자세하게 다뤄져 있었지만 표지석에 대한 내용은 없었다.그 친절한 일본 젊은이는 아쉬운 듯 조선인들을 기리는 거리가 있다며 작은 정자가 서 있는 거리로 나를 안내했다. 아뿔싸! 그곳 정면에 1m 남짓한 높이의 사각돌 기둥에 음각으로 새겨놓은 표지석이 서있지 않는가. 얼마나 반가웠던지...통신사가 일본 내륙을 지나간 길을 두고 ‘조선인가도’라고 하는데 현재까지 남아 있는 길이 바로 이곳 오미하치만에서 히코네에 이르는 길이다. 그러니까 혼간지 하치만 별원을 나와 북쪽의 하치만 공원 쪽으로 조금 걸으면 오미하치만의 중심가인 교카이도 상점가에 이르는 데 여기서 히코네까지의 길이 ‘조선인가도’라는 것이다. 4-5m의 좁은 노폭에다 개발한 흔적이 없는 길가에는 오래된 목조 가옥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교통중심지로서 번화했던 옛 모습이 역력한 고택 촌락이다. 그 길 한 모퉁이에서 한자로 음각하여 세워놓은 표지석, ‘朝鮮人街道(조선인가도)’를 만난 것이다. 마치 보물이라도 찾은 것 같았다. 원래 이 길은 교카이도 또는 하마카이도나 고쇼카이도라 불렀는데 천황이 있는 교토를 오가는 길이란 뜻이다. 그런가 하면 도쿠가와 막부들이 경사스러운 일로 천황을 만나러 갈 때 사용한 길이라고 하였는데 훗날 조선통신사들이 통행하면서부터 일본인들이 ‘조선인가도’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그리고 오이하치만 주민들은 그 길이 옛날 조선인들이 다녔던 길임을 초등학교 시절부터 학습하여 자연스럽게 그 내력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비하여 우리는 어떤가. 20세기 초 신작로가 들어서면서 옛길도 없어지고 역참도 사라졌다. 문경의 유곡역과 안동의 안기역 그리고 의성의 청로역과 영천의 장수도역 또한 영천과 경주의 지경에 있던 아불역(아화역)이 흔적이 없이 사라졌다. 조선통신사행들에게 말마(馬)와 쉼의 자리가 되어주던 그 역참과 길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았던 것이다. 지난 3월, 부산지역 학자들은 조선통신사 문화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토록 신청서를 냈다. 통신사 국내사행로 중에서 경상북도의 노정이 가장 길 뿐만 아니라 그 길마다 수많은 시가는 물론 마상재와 전별연 그리고 문인들 간의 담론을 나눈 기록 등 다양한 유산을 남기고 있다. 이 문화유산은 현대적으로 수용하고 재구성하여 할 문화콘텐츠의 소중한 소재가 되는 것들임을 새겨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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