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참석한 모임에서 반가운 사람들을 오랜만에 만났습니다. 세 시간 가까이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무척 즐거웠습니다. 여러 가지 정보도 많이 얻었고 새로운 아이디어도 많이 얻었습니다. 갈까 말까 망설였던 자리였지만 가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임이 파하고 집에 와서 오늘 나누었던 이야기를 정리해 보기 시작했습니다. ‘아뿔싸!’ 무슨 말을 들었는지 제대로 기억나는 것은 전혀 없었습니다. 도대체 왜 그럴까요? 고민에 빠졌습니다. 떠들썩한 분위기 속에서 많은 생각을 했던 것 같은데 그 속에서 나눈 메시지가 왜 이렇게 기억에 남지 않았을까요? 고민을 하다가 유사청취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아마도 제가 그것을 한 모양입니다. 이것저것 재고, 이 사람 저 사람과 저를 비교하다 보니 대화에 완전히 녹아들지 못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진정한 청취가 일어나지 못하는 경우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그 중 첫 번째가 사람들에게 자신이 그 이야기에 흥미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게 하여 자신을 좋아하게 만들고 싶을 때라고 합니다. 오늘 나온 이야기들에 대해 제가 원래는 별로 흥미 없는 이야기였지만 사람들의 호감을 얻기 위해 그 주제에 집중하는 척을 했던 모양입니다. 그러니 주된 내용이나 주변적인 이야기가 전혀 기억나지 않는 것이겠지요. 그러고 보면 어떤 대화에서 진심으로 그 주제를 기다리거나 기대한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각자의 관심사나 생활 환경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변명하면서 말입니다. 주로 문화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모임이니 그것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았을 것입니다. 사실 저는 문화보다는 정치나 경제에 더 많은 관심이 있다 보니 오늘 나온 이야깃거리에 대해 사전에 고민이나 정보를 가졌던 적이 크게 없었을 것입니다. 거기다 흥미 있는 척을 해야 하다 보니 피곤해진 것은 당연하겠지요. 그리고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점검하고 자신이 바람직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것을 확인하고자 할 때도 유사 청취가 일어난다고 합니다. 이야기를 하면서 듣는 사람의 눈치를 보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과정일 것입니다. 오히려 듣는 이의 상황이나 느낌을 고려하지 않고 하는 말하기는 더욱 나쁜 것이겠지요. 그러나 지나치게 청자의 반응을 너무 신경 쓰며 좋은 영향만 주려고 한다면 듣는 사람은 좋을지 몰라도 서로의 관계는 일방적으로 흐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보통 교육 이야기가 나올 때 그런 상황이 됐던 것 같습니다. 제 이야기를 하기보다는 다른 사람이 제 주장에 동조해주기를 바라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또한 자신이 착하고, 친절하고, 좋은 사람인 것처럼 보이고자 할 때도 제대로 듣기 어렵다고 합니다. 사실은 그 주제가 불편하고 참석자가 마음에 들지 않지만 다 괜찮다는 듯이, 이해할 수 있다는 듯이 대화에 참여할 때 그 상황을 인내하기 위해 에너지를 쓰다 보니 진정한 청취를 할 여력이 남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실 그 모임에 참석한 사람 중에 저와 좀 맞지 않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관계를 다른 사람들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에 신경을 쓰는 사람들에게 미안하여 아무렇지 않은 척하느라 좀 예민했던 것 같습니다.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의견이어도 동조하거나 덧붙이는 일을 했던 것 같습니다. 해결방법을 구하는 사람에게 머리를 짜내 가면서 몇 가지 조언을 하는 것도 저를 지치게 했던 것 같습니다. 이런 세 가지 경우 이외에도 ‘거절당한 위험이 있는지 판단하기 위해서 긴장하고 있을 때, 특정한 정보만 듣고 다른 것은 무시할 때, 다음에 할 말을 준비하기 위해 시간을 벌려고 할 때, 내 말을 듣게 하기 위해서 상대방의 말을 대충 들어줄 때, 상대방의 약점을 찾아내려 할 때, 대화의 약점을 찾아서 자신이 항상 옳다는 것을 증명하고자 할 때,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거나 공격하지 않고 거절하는 다른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등이 유사청취를 만든다고 합니다. 간혹 자신이 이런 대화 방식을 쓰는 것은 아닌지 검토해봐야겠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제대로 들을 수 있을까요? 그것은 진심으로 듣는 것입니다. 대화에서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그 상황을 즐기고자 하거나 무언가를 배우고 상대방에게 도움을 주거나 위로하려 한다면 진심으로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즉 자기 중심이 아니라 상대방과 좋은 관계를 만들고자 하는 정성을 기울이면 대화도 관계 맺기도 순조로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으로, 상대방의 말에 반응을 보여주고 그 말을 바꾸어 말하기나 요약하기를 하는, 적극적으로 공감하며 듣기를 실천한다면 모임 자리도 갔다온 후의 마음도 솔직하게 즐거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음 모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달라진 저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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