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게 모은 돈을 기부한다는 사실에 아깝다는 생각도 들지만 기부한 후 느끼는 기쁨은 말로 표현 할 수없을 정도지요. 이젠 내 고향 영천을 위해서도 봉사 할 생각입니다.” 12일 영천소방서와 자매결연 후 상호방문행사 일환으로 서울 강동소방서 의용소방대원들과 함께 영천을 방문한 박진수 서울호텔 플러스 대표(서울 강동소방서 의용대장)는 고향에 대한 애착이 대단하다. 영천소방서와 서울 강동소방서와 인연을 연결한 것도 박 사장이다. 서울강동 소방서 의용대장을 맡고 있는 그는 지난해 영천소방서와 업무 협약을 체결한 이후 영천지역 특산물 직거래 행사를 비롯 동반 성장을 위한 활발한 교류에 앞장서고 있다.박 대장 일행은 이날 영천소방서 방문에 이어 일손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있는 신녕 마늘밭에서 마늘쫑 뽑기 봉사활동을 벌였다. -실크 머플러와 꽃무늬 바지 차림으로 ‘괴짜 기부천사’박진수 사장임고면 평천이 고향인 박진수 사장은 서울 강동구 명예의 전당에 얼굴을 올린 인물이다. 22년동안 매년 2천여만원 상당의 물품과 금품을 불우이웃들에게 전해 온 기부천사로 3년전 청와대에 초청돼 국가포상(국무총리 표창)도 받은 자랑스런 출향인이다. 그는 호텔업으로 연 수억원대 매출을 올리는 사업가다. 서울 천호동과 경기도 성남시에 건물도 소유하고 있다. 하지만 평생 술·담배·골프·해외여행을 해 본 적이 없다고 한다.하루 4시간씩만 자며 모텔 카운터 뒤 10㎡(약 3평) 남짓한 방을 사무실로 쓰는 ‘일벌레 구두쇠’다. 다만 소년소녀가장과 독거노인을 돕는 일엔 돈을 아끼지 않는다. 별명이 ‘괴짜 기부 천사’다.“남을 돕는다기 보다 내 자신을 위해서 봉사활동에 나서고, 기부 봉사하기 위해서 내 자신이 더 열심히 일하고 있다”는 그는 “가난이 싫어서 서울로 갔다”고 말문을 열렀다. 어릴적 아버님은 남의 집 머슴살이를 했다며 어려웠던 시절을 설명한 그는 평천초등학교를 졸업(22회)한후 빨리 군복무를 마쳐야 사회생활을 할 것 같아 운전면허증을 따고서는 곧바로 자원입대했다. 군 생활중 대형 교통사고로 무릎이 굽혀지지 않고 굳어버린 불구의 몸이 돼 의병제대를 했다. 인생을 포기하고 싶은 유혹을 뿌리치고 스스로 재활운동에 나서면서 대구에 있는 누나 집을 거쳐 단돈 19만원을 들고 상경했다. 라면 한 개로 하루를 버티며 여관 청소부로 취직한 후 하루 4시간만 자면서 365일 쉬는 날 없이 몸이 부서져라 열심히 일했다. 이후 세 번의 사업실패로 피눈물을 흘리는 과정도 거친 그는 “남들과 똑같이 잠을 자고 일한다면 실패한다. 최소한 남들보다 두세배 이상 노력해야 성공한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죽을 각오로 사업에 전념했다. 지금도 새벽에 출근해서 직원들과 함께 뒹굴며 마당도 쓸고, 객실 청소도 같이 한다. 직원들이 사장님과 마음으로부터 멀어지지 않게 늘 조심한다. -1994년 신림동 독거노인 쌀 기부 부터~어린시절부터 숱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은 터라 누구보다 그 고통을 잘알고 있었기에 1994년 서울 신림동 달동네 독거노인들에게 매달 20㎏짜리 쌀을 10포씩 보낸 것을 시작으로 기부 22년차에 접어들었다. “텔레비전에서 어르신들이 겨울에 스티로폼을 깔고 주무시는 게 나왔어요. 쌀독을 열었는데 쌀이 한 톨도 없는 거야. 그때 ‘돈만 벌 게 아니라 누군가를 도와야겠구나’란 생각이 처음 들었다는 그는 그 후 매년 신정·구정·추석 때 어려운 이를 위해 쌀(20㎏·100포)과 생활용품을 들고 구청을 찾았다. 여름이 오기 전엔 꼭 어르신들에게 삼계탕 250~350그릇씩 대접해왔다. 돈이 없어 공부를 못 하게 되는 학생 소식이 들리면 일단 “내가 돕겠다”며 나섰다. 지난 2005년에는 한 여고생에게 3년간 매년 640만원씩 장학금을 줬다. 홀어머니와 어렵게 사는 모습이 어릴 적 자신을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었다. 그 여학생은 2008년 한 대학에 수석으로 입학했고 합격 사실을 제일 먼저 알린다며 박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저도 너무너무 기뻤지만 다시 전화하지 말라고 했어요. 얼마나 부담스럽겠어요. 다만 ‘너도 형편이 될 때 너 같은 사람 도우면 된다. 열심히 사는 게 아저씨한테 보답하는 거야’라고 말했지요.” -200억 자산가, 자식들은 월20만원 아르바이트박 사장은 200억원 자산가이다. 하지만 딸(19)은 카페에서 월 20만원짜리 아르바이트를 하고, 아들(22)도 의류 매장에서 일해 용돈을 번다고 한다. 수십년째 통큰 기부활동에도 자식들은 전혀 몰랐다고 한다. 나중에 기부 사실을 알고 가족들이 더 큰 응원군이 됐다고 한다. “앞으로 고향을 위해서도 봉사할 생각”이라는 그는 “6월에 영천을 다시 찾아와서 장학금을 기부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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