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에 TV의 노예되기 보다 귀농을 택했습니다” 금호 구암리에서 복숭아농사를 짓는 민충식 씨(59)는 “2008년 공군중령 퇴역후 취업이 어려워 평생직업을 갖는다는 차원에서 귀농하게 됐다”고 말했다. 31년 동안의 군생활을 마친 후 여기 저기 알아 본 직장들은 나이 어린 직장상사를 모셔야 되는 불편함이 있었다는 그는 자격증을 취득한 덕분으로 서울서 3년여동안 공인중개사 사무실을 열었다가 2014년 9월 귀농한 초보농사꾼이다.
영관급 장교출신 귀농인 영관급 장교출신이라 ‘농사지을 사람이 아닌 것 같다’는 주변의 시선에도 끄떡없이 ‘하면 된다’는 군인정신으로 농사법을 배우는데 전념하고 있다. 원래 나무키우는 것을 좋아해서 현역시절 조경기능사 자격증까지 딴 그는 귀농 직후 농지은행을 통해 5년 임대한 땅에다 들깨와 참깨, 돼지감자를 재배하면서 영천시농업기술센터의 각종 교육에 적극 참여해왔다. 귀농 이듬해인 지난해 4월부터 8월까지 5개월동안에는 고경 이채영 선생의 농가를 매일 출퇴근하며 실습하는 시간을 통해 자신감도 얻었다. 전국복숭아사랑동우회 고문이자 복숭아농사 경력 32년차로 이 분야 국내 최고 권위자인 스승으로부터 다양한 기술을 습득하는 한편 농업인으로서의 마음자세도 배웠다.
부인 격려속에 귀농 단행
“하고 싶은 것을 하라”는 동갑내기 부인의 격려속에 시작한 복숭아농사는 현재 850평의 금호 구암리 밭과 함께 올해 초 정착자금 지원을 받아 마련한 와촌 계당리 1026평의 밭에다 106주의 복숭아나무를 심었다. 서산동 집에서 양쪽 복숭아밭을 오가는데 15분 정도씩 소요되는 불편함이 있지만 새로 시작한 복숭아농사를 제대로 해내겠다는 의욕이 대단하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않는 부지런한 성격탓으로 군복무시절 따낸 자격증만 여러 개인 그는 대구가대 경영대학원(야간)을 졸업한 학구파다.타작목에 비해 일하는 기간이 짧고 농약도 비교적 적게 치는 작목이라서 복숭아를 택했다는 민씨는 2월부터 8월하순까지 자라는 중생종 위주로 재배할 생각이다. 동남아 수출을 위해서는 과실이 작은 조생종을 키워야 하지만 제값을 못받기 때문이다. 복숭아농사 2년차로 지난해 첫수확을 했지만 분무기 등 농기계 구입비와 농약값 등 초기 투자비용을 감안하면 5년이 지나야 손익분기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수확할 때가 가장 뿌듯해가장 힘든 점은 일에 대한 중압감이다. 새벽 5시부터 밭에나와 부인과 함께 일하지만 항상 일손이 부족하다. 초생재배를 하느라 금방금방 자라나는 풀들이 무섭다고 한다. 예초기를 메고 제초작업을 했다는 말에 귀농선배들이 “다음부터는 승용제초기를 이용하라”고 조언해줬다며 초보농사꾼으로 겪는 시행착오도 털어놓았다. 형님과 누님 등 주변 친지들이 몸을 혹사한다며 걱정하지만 그래도 귀농은 잘했다고 생각한다.
“한해라도 빨리 귀농했더라면 더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있지만 100세 시대에 귀농은 잘했다고 생각한다”는 민 씨는 “새순이 날 때부터 자신의 손길을 거쳐간 복숭아가 자라나는 과정을 지켜보는 자체가 보람”이라며 “수확할 때 가장 뿌듯하다”고 밝혔다.
수확철 출하때는 매일매일 시세에 대해 민감하다며 멀리 광주까지 시세를 알아볼 정도라고 한다. 대부분 공판장을 통해 판매하지만 불로그와 카페, 카카오스토리 등을 이용한 통신판매도 하고 있다. 제주도까지 전국의 지인들에게 판매한 복숭아에 대해 “이렇게 맛있는 복숭아는 처음 맛본다”는 말을 들을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 대도시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자녀들이 직원들과 함께 복숭아를 나눠 먹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흐뭇함을 느꼈다고 한다.
“75세까지 농사지을 것”올해 처음 시작한 계당리 과원 관리에 주력할 생각이라는 민씨는 귀농희망자들에게 “철저한 계획을 수립할 것과 함께 반드시 농업기술센터를 직접 찾아가서 상담을 먼저 하라”며 “교육받는 것은 필수”라고 강조했다. 자신의 경우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서 선도농가 실습을 할 수 있었던 것이 귀농정착의 기틀을 마련한 것 같다며 농촌생활을 정말 많이 배웠다고 말했다.75세까지 농사를 짓는 것이 일차 목표라는 민 씨는 스승님께 배웠다는 농사철학인 “버릴줄 알아야 좋은 과일을 얻는”며 적과작업을 직접 시연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