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태어나서 자란 곳은 보현산 바로 밑 첫 번째 동네입니다. 지금은 보현산에 차를 타고 올라가지만, 저는 어려서부터 걸어서도 수도 없이 올라가곤 했습니다. 친구들과 놀러 가기도 했고, 엄마 따라 나물 캐러가거나 그냥 혼자서 무턱대고 올라가기도 했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보현산을 오르내리면서 호연지기가 생긴 것 같습니다”
지난달 20일 열린 총회에서 재경영천향우회 새 회장으로 추대된 김선근 변호사(47)는
“늦가을 고추 딸 때 쯤, 보현산 단풍은 황홀합니다. 지금도 밤에는 별이 쏟아지는 곳”이라고 고향을 추억한다.
화북면 정각 출신 출향인으로 서울에서 변호사로 활동중인 김 회장은 자양중학교-영천고등학교-경북대 법대를 졸업하고 경북대에서 석,박사를 수료했다.
2002년 사법고시에 최종합격을 하고, 연수원 수료 후 곧바로 변호사로 개업한 김 회장은 처갓집이 청도라 더욱 이채롭다.
고향 후배에게 도움주는 청년회
5월20일 변호사 사무실이 있는 서초동의 한 식당에서 청년회 집행부 30여명이 모인 총회에서 전임 김장주 회장(행정자치부 근무) 후임으로 신임회장이 된 김 회장은
“재경영천향우회의 역사가 30년이 넘었고, 현재까지 확인된 청년회원들만도 300명이 넘습니다만, 젊은 회원들의 참여가 저조하다 보니 청년회 활동이 위축된 것도 사실입니다.
이 시기에 제가 청년회장직을 맡게 돼 부담스럽다”고 운을 뗀 뒤
“30~40대 젊은 청년회원들을 발굴해서 그들의 참여를 이끌어 내는 것이 제 소임이라 생각합니다.
고향에서 막 상경하여 치열하게 살고 있는 후배들에게 조금이라도 힘이 되고, 위로가 되고,
그래서 언제든지 연락할 수 있는 그런 청년회를 만들어 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서울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향우회와 고등학교 동문회는 열심히 참여했다는 김 회장은
“제가 의지할 곳이 이곳 밖에 없었고, 선배님들이 따뜻하게 잘 챙겨 주셨습니다.
그래서 고향에 대한 애착이 강하고, 그러다 보니 과분하게도 이번에 중책을 맡게 됐다”며
“영천학사에서 배출한 많은 향우 후배들도 있습니다.
영천학사와 연계하여 그런 후배들과 친교를 맺고,
그 후배들이 대학을 마치고 사회생활을 할 때 자연스럽게 청년회에 편입되고,
그래서 또 그 후배들이 그 다음 후배들을 보살피고 힘이 되는
그런 끈끈하고, 내실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볼 계획”이라고 밝혔다.
특히 매년 고향의 후배 고등학생들이 서울 명문대학교 탐방을 할 때
이들을 환영하고 안내하는 일에 청년회가 앞장서겠다는 김 회장은
“아무쪼록 우리 청년회가 타향 객지 서울에서
청년 향우들이 가장 믿고 의지하고, 도움 받을 수 있는 그런 단체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피력했다.
변호사 활동과 사회활동대학 졸업후 4년 정도 고시공부를 했고,
2002년 월드컵 경기가 한창일 때, 사법고시 2차 시험에 합격한 김 회장은
“그당시 월드컵 경기는 한 게임도 보지 않고 공부를 했는데, 그래서 합격한 것 같습니다.
공부를 썩 잘한 것은 아니었지만, 안된다는 생각은 한번도 해 본 적이 없었다”고 말한다.
변호사 개업후 10년 이상 부동산 분야에 전문성을 키워온 결과
최근에는 한국자산관리공사, 한국농어촌공사와 자문계약을 맺고, 국유지 소송을 전담하고 있다.
국가를 대리한다는 자부심과, 국유재산을 관리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있다.
대법원 파기환송 판결도 여러 건 맡아 보면서 국유재산을 수호하는데 공헌을 하고 있고, 보람을 느낀다”는 김 회장은
“변호사로서 사회참여라는 공적 책무도 충실히 수행할 생각입니다만,
아직도 여전히 치열하게 법리를 따지고, 공부를 하고, 실력을 쌓는 단계”라고 밝혔다.
가장 보람있었던 일
개업하던 그해 추석 명절 즈음, 동대문 노점에서 옷가지를 팔던 아주머니 한 분이
파산을 할 수 있겠냐면서 찾아 온 적이 있다.
초라해 보였지만 그 분의 인상과 말투에서 열심히 산 흔적이 역력했고, 마침 고향사람이었다.
꼬깃꼬깃 구겨진 지폐 몇 장을 내 놓고 나가길래 뒤따라가
우선 명절은 쇠야 되지 않겠냐며 10만원을 돌려 드렸다.
어쩔 줄을 몰라 하는데, 던지다시피 손에 쥐어 주었다.
엘리베이터가 닫히면서 보이던 그 분의 눈물을 잊을 수가 없다.
한 번씩 그 때 일을 생각하면 초심으로 돌아 오곤 한다.
좌우명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일찍 퇴근하면 뭔가 불안했는데
요즘은 가급적 일찍 퇴근해서 애들과 같이 저녁을 먹는다는 김 회장은
직원들도 일찍 퇴근토록 하고 있다.
제 아이들 세대의 인생목표는 ‘행복’이라고 생각된다는 김 회장은
출세나 성공은, 아이들 세대에는 이미 한물 간 모토라며
“출세나 성공보다는 행복하게 사는 것이 중요한 세대이고,
무슨 일을 하느냐 보다는 어떻게 사느냐는 것이 중요한 시대가 왔다며
”그래서 저도 좀 덜 벌고 덜 성공하더라도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게 요즘 제 생각“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꼭 하고 싶은 일이나 계획
변호사 생활 10년 이상 했는데,
그 동안 가족들과 해외여행을 가 본 게 딱 두 번입니다.
그래서 계획한 게, 10년 열심히 일하고 나서 1년은 해외에서 살아 보자는 겁니다.
그렇게 해도 고작 평생 3번 밖에 그럴 기회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실행에 옮겨 볼까 싶습니다만 될지 모르겠고,
앞으로 10년 후에는 틀림없이 그렇게 될 것이라 생각됩니다.
최홍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