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의 길 그것을 어찌 달인 향해 말을 하리요/ 곤궁함이 있더라도 형통해야덕이 비로소 높아지나니/ 이 십년 귀양살이 자신의 잘못 아니었고/ 칠 년 동안 전쟁에 싸운 것 임금 은혜 위해서네/ 천석으로 되돌아와 잔나비 학과 함께 놀고/ 깊이 경전 연구하여 호헌과 짝하였네 하루 저녁에 지원 올 구름이 영원히 감추고 마니/ 늙은 생도는 깊은 의론을다시 들을 곳이 없구나" 위의 輓詞는 芝山 曺好益(1545~1609)선생이 죽은 뒤 여헌 張顯光 先生이 지은 輓詞이다. 장현광의 표현처럼 17년 동안 무고로 평안도에서 유배를 살면서 곤궁함 속에서도 학자로서 한 점 부끄러움 없고 흔들림 없는 도덕군자의 길을 묵묵히 실천하였고, 7년 임진왜란을 당하여 의병장으로서 큰 전공을 세우고 난 후, 論功行賞에 바쁜 당시에 戰亂이 끝나고 先代의 고향 永川 지역의 儒風을 先導하여嶺南의 鄒魯之鄕으로 만들었다. 지산 선생은 일생을 학자 교육자 의병장 등 주어진 일에 책임과 의무를 자신의 운명인 양 실천하며 살다간 위인이었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지도층이 제 역할을 못하고 국민으로부터 존경받지 못하는 것은 그들이 권력자로 군림만 할 줄 알았지 그들에게 주어진 의무와 책임은 등한시 했기 때문이다. 조호익은 본관이 창녕, 자는 사우, 호는 지산으로 그의 가계를 보면 고조부 말손, 증조부 치우, 조부 효연에 이르기까지 3대에 걸쳐 한림을 역임한 명문가이다. 조호익은 8세때 아버지로부터 학문을 배운 뒤 주세붕 선생의 아들인 주 박 선생에게 배우고 이후 嶺南儒學의 巨峯인 退溪 이 황 선생의 문하에 들어갔다. 이 때가 그의 나이 17세로 생원 진사시와 문과의 초시에도 합격한 후였다. 조호익은 주 박·이황 두 선생 못지않게 영향을 받은 것은 그의 둘째 형인 광익이다. 두 형제는 책상을 마주하여 서로 강론하고 서로를 일깨우며 학문의 일가를 이루었다. 두 형제의 학문적 수준은 선조 임금이 고봉 기대승에게 조선의 인재가 누구냐고 묻자 율곡 이이, 한강 정구, 취원당 조광익, 지산 조호익이라고 말한데서도 잘 알 수 있다. 그는 31세때 인생의 가장 큰 시련을 겪는데 당시 경상도 도사로 왔던 최 황이 창원에 와서 그에게 군적을 감독하는 일을 맡겼는데 아직 부모상이 끝나지 않았고 자신도 病中이라 맡을 수 없다고 거절하자 최 황이 私感情으로 조정에 보고하여 전가사변으로 평안도 강동에 유배를 떠나게 되었다. 이후 둘째 형 광익이 동생이 있는 平安道 道使를 自願하여 찾아와 兄弟間의 우애를 나눴으나둘째형 광익이 불과 몇 달 만에 죽었다. 형 광익의 묘소는 밀양에 있는데 광익이 죽자 지산 선생 대신 평안도 강동 지역 사람들이 2천리 먼 길을 흙을 지고 문상을왔으나 시간이 많이 지난 터라 장례를 지낸 무덤 위에 흙을 덥고 남은 흙은 근처에 무덤처럼 만들어 사람들이 江東邱(강동 사람들이 만든 언덕)라 부른다. 강동구는 아직도 두 형제의 우애를 말 없이 보여주고 강동 사람들이 2천리 길을 마다않고 달려와 존경심을 표현할 만큼 조호익의 강동에서의 영향력은 대단했던 것으로 보여진다. 이는 세계의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것으로 그가 학문의 불모지로 천대받는 평안도 사람들에게 유학을 가르치고 학규를 만들고 개인의 능력에 따라 교육을 시켰으며 예를 몸소 실천하여 그들의 생활에 끼친 영향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이 지역에서 잠곡 김육, 이시직, 박대덕 등과 서울 지역에서 온 백사 이항복의 아들인 이정남 등 수 백명이 교육을 받아 훗날 임란이 일어 났을때 제자들과 500여명 의병에 참여하는 기반이 되었다. 지산 선생이 유배는 개인으로서는 불운이었지만 平安道民으로서는 엄청난 행운이었으리라 생각된다. 그런 연유로인지 몰라도 선조는 지산의 무고한 유배령을 풀어줄 것을 신하들이 간언해도 그 곳에서 더 많은 학문적 성취를 이루길 바랬고, 관서지역의 공자임을 말하는 관서부자란 칭호가 특사되었다. 지산이 마지막 돌아가실 때 까지 은거하시던 망회정과 도화담 맑은 물은 그 분의 고결한 숨결을 간직한 채로 지금도 말없이 흐르고 있다. 다음 편에는 지산 선생의 義兵活動과 後進養成을 살펴 볼 것이다.
즐겨찾기+ 최종편집: 2025-05-03 07:35:13 회원가입 전체기사보기 원격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톡네이버블로그URL복사
동정
이 사람
데스크 칼럼
가장 많이 본 뉴스
상호: 경북동부신문 / 주소: 경상북도 영천시 최무선로 280 /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경북, 다-01264 / 등록일 : 2003-06-10
발행인: 김형산 / 편집인: 양보운 / 청소년보호책임자 : 양보운 / 편집국장: 최병식 / 논설주간 조충래
mail: d3388100@hanmail.net / Tel: 054-338-8100 / Fax : 054-338-8130
본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요강을 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