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여성예술인 연합회장으로서 포항을 대표해서 협조 공연을 했습니다만 영천에서 나고 자랐던 기억 때문에 이번 영천에서의 공연은 다른 지역에서의 공연과는 감회가 남달랐습니다”
지난 12일 영천강변공원 둔치 특설무대에서 열린 제8회 경북여성문화예술인축제에서학춤공연을 선보인 포항여성예술인연합회 최경미 회장(59)은 영천 교촌동 출신으로 영화초등학교(5회), 영천여중고를 나온 출향인이다.
고향에서의 공연 감회 남달라
“이번 경북 여성 문화예술인 축제 때의 학춤 공연은 제 과거를 되돌아 볼 수 있는 기회가 됐습니다. 끊임없이 노력하고 열심히 살아온 성과를 본 듯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라는 최 회장은 “단순 관광으로 찾은 영천이 아니라서 더욱 그랬습니다. 소극적으로 기회가 오길 바라는 것이 아니라 그 기회가 올 수있도록 지금까지 열심히 노력해 온 결과라 생각하니 감개무량하다”며 고향에서의 공연에 대한 남다른감회를 털어놓았다.
“결혼 후 포항에 정착한 다음 가지고 있던 재능을 살릴 수 있도록 남편이 무척 많이 도와주었습니다.
처음에는 단순 출장 강사로 시작했으나 포항문화원 대표 강사가 되고 제 이름을 내건 학원까지 열 수있었다”는 최 회장은
“학원 설립에서 멈춘다 해도 문제가 없었지만 다시 대학교로 진학하고, 자기 발전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다 보니 포항여성예술인 단체장 뿐만 아니라 울산학춤 포항지부장까지 맡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최 회장이 무용가의 길을 걷게 된 것은 어린 시절 집 근처 있었던 박봉래무용학원에서 무용을 배웠던친언니가 서라벌예대 무용과를 거쳐 신녕중학교 무용교사 재직시 펼쳐 보였던 대작 부채춤 공연관람이 계기가 됐다.
집단무용(마스게임)으로 공연된 이날 부채춤이 너무 멋져 자신도 언니와 같이 무용교사가 되기 위해유아교육과에서 국악과로전공을 변경해 늦깍이 공부에 매진한 결과 제자들을 가르치는 최경미무용학원 원장이 됐다.
동국대학교 졸업, 울산학춤 계보자, 울산학춤보존회 포항지부장, 포항시 월월이청청보존회 지도, 포항여성예술인 연합회 회장이 경력이자 현재 직함이다.
어린 시절 고향에서의 추억
독실한 가톨릭집안 출신이라 늘 영천성당에서 놀고, 기도했던 기억이 유년시절 추억의 전부라고 해도과언이 아니다. 성당에 가면 성모상 앞에 꽃잔디가 예쁘게 피어 있었고, 친구들과 함께 잔디밭에 모여 앉아 노래부르곤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성당 학생회 선배들을 따라다니며 신부님 말씀을 듣고,오빠·언니들과 온갖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성장해 온 과정이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인생살이의 밑바탕이 된 것 같다”는 최 회장은
“제 부모님은 자식 복이 많아서 8남매의 교육을 일일이 신경쓰실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까지 갈 수 있었던 것은 성당에서 뛰놀며 들은 이야기와 경험들이 큰 도움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포항지역 동료선후배 예술인들과 함께 봉사활동도 여러차례 다녀왔다는 최 회장은 3년 전 영천성당고등부학생회 동기생인 김병진 신부(글라렛수도회)가 원장으로 있는 강원도 원통수도원 경로잔치 위문공연이 기억에 남는다고 밝혔다.
불러준다면 언제든 달려올 것!
“60대에 접어든 우리 세대가 가지고 있는 영천의 이미지와 요즘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영천의 이미지는 무척이나 다릅니다. 과거의 영천은 자연환경이 무척이나 좋은 도시였습니다. 어린 시절 제가 느낀 영천은 청정 자연환경과 3사관학교의 존재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요즘 제 딸아이나 그 또래들에게 물어보면 영천은 와인이 나오는 도시, 별이 쏟아지는 도시, 미술이 함께 하는 도시 등 다양한 이미지를 떠올리는 것이 특이했다”는 최 회장은 “그런데 그 이미지들이 하나로 합쳐져 명확하게 떠오르는 이미지가 없다는 것이 큰 단점이라 생각합니다. 분명 영천에서는 다양한 문화행사들과 다양한 체험활동, 독특한 행사들이 많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만 행사의 질에 비해 홍보가 안 되어 있다거나 널리알려진(별별 마을등) 곳은 관리가 잘 안 되어 있다는 느낌이든다”며 아쉬워 했다.
“그래서 영천시 당국에 부탁하고 싶은 것은 꾸준한 문화 행사 개최와 함께 그 행사 시설을 지속적으로 관리해 주기를 바란다”며
“영천시가 주최하는 문화 행사에 제가 필요하다면 스케줄을 조정해서라도 고향을 위해서 달려오겠다며 고향발전을 기원했다.
최홍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