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도 기술입니다. 재래식 농법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고품질, 차별화된 농산물을 가공판매하는 단계까지 나아가야 합니다.”화산면 덕암2리에서 마늘 농사 9,900㎡(3천평), 논농사 6,600㎡(2천평)에다 10마리의 소를 키우고 있는 김일두 씨(66)는 “이제 농업은 단순히 농산물을 생산해 판매하는 1차산업에만 머물러 있어서는 안됩니다. 농산물을 수요자가 찾는 상품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대구광역시 공무원으로 정년 퇴직 1년이 지난 2011년 고향마을로 돌아와 마을 이장까지 맡고 있다.귀농 5년차에 공무원 연금 정도의 연소득을 올리고 있다는 김씨는 성공적으로 고향에 정착할 수 있었던 것은 영천시의 훌륭한 귀농정책과 함께 부인 최분자 씨(60) 내조 덕분이라고 밝혔다.
마을이장으로 주민화합에도 앞장홀로 귀농한 초기에는 갖은 고생을 겪었으나 대구에서 미혼자녀들을 돌보던 부인이 지난해 합류하면서 제때 제초작업을 하는 등 농사시기를 놓치지 않게 됐다. 이 전에는 잡초가 무성했던 밭이 깨끗이 정리되는 것은 물론 부인의 권유로 귀농교육을 신청하고 농사기술 습득에 적극 나서면서 마늘농사와 소사육을 보다 확장해나갈 큰 계획을 품게됐다.
고향마을로 귀농해 마을이장까지 맡은 김씨는 “귀농 초기에 부닥친다는 마을주민들과의 마찰은 있을 수 없다”며 92세 최고령 어르신부터 56세 막내까지 75명 주민들의 평균연령보다 조금 젊은 편이라 먼저 인사하는 등 주민화합에 적극 나서고 있다. 자신의 농사일에도 바쁘지만 주민들의 농사일을 먼저 챙기는 등 서로 돕는 분위기 조성에 앞장서고 있다.
대구에 살면서도 매년 농번기 때는 고향을 찾아 부친의 농사일을 거들었다는 김씨는 퇴직하기 3년여 전부터 주말마다 덕암리로 내려와 본격적인 귀농을 준비해왔다. 이때 트랙터 3대, 콤바인 1대, 베일러 등 농기계까지 구입했다. 그후 영천시농업기술센터 한우반 심화 과정에 등록해 2년동안 교육 받는 등 농사기술 습득에 전력을 기울여 왔다.
“스스로 연구하고 공부하며 농사짓는 귀농인들은 기존 농민들보다 지식수준이 높아서 귀농초기의 어려움만 극복한다면 농사를 더 잘 지을 것”이라는 김 씨는 “도시 생활의 경험과 넓은 인맥을 활용한 인터넷 판매로 소득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논농사 6,600㎡(2천평)에서 나오는 소출은 대부분 친지들과 나눠 먹는다. 소는 귀농 전부터 사육해왔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주말마다 내려와 사료자동급식기도 만드는 등 귀농을 준비했다. 귀농직후 990㎡(3백평)로 시작한 마늘농사는 2,640㎡(8백평)으로 늘렸다가 9,900㎡(3천평)까지 짓고 있다. 앞으로 1만3,200~1만6,500㎡(4~5천평)까지 늘일 계획이다.
마늘 가공산업에도 주력마늘농사는 인력수급만 잘되면 6만6,000㎡(2만평) 이상 경작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요령만 피우는 내국인 보다 성실하게 일하는 외국인 근로자들을 마늘농사에 적극 투입할 생각이다. 특히 신녕과 함께 마늘주산지로 손꼽히는 고향 화산면에 가장 적합한 마늘품종이 어떤 것인지 여러 품종을 시험재배 중에 있다. 마늘콜라까지 시판되고 있는 일본의 사례를 거울삼아 단순 생산판매단계를 넘어 마늘가공 산업으로 발전시켜 나갈 생각이다. 인삼절편식의 마늘 절편이나 양파즙과 같은 마늘즙도 흑마늘과 섞어보기도 하는 등 노력중이다.
마늘농사를 더 늘여나갈 계획과 함께 올해 착수한 우사가 완공되면 앞으로 한우 50~60두를 사육해 볼 계획이다. 소 사육도 기술력이 중요하다. 사료배합과 사양관리의 중요성을 소사육선진지 견학을 통해 배웠다. 전국 각지를 찾아다니며 만난 한우전문사육사들로부터 우시장에서 우량한우 고르는 법 등 노하우를 전수받았다. 소는 타고난 육질도 중요하지만 후천적으로 사료급식과 관리가 관건이다. “농업의 6차 산업화를 부르짖고 있는 마당에 최소한 3차산업 까지는 추구해 볼 생각”이라는 김 씨는 화남마늘작목반원들과 함께 경상도에서 가장 큰 창녕마늘경매장을 찾아볼 생각이다. 마늘가격 동향도 알아보고 앞으로 시도해 볼 씨마늘 생산에 도움되는 정보도 알아보기 위해서다. 작목반의 법인체 구성으로 1차산업을 넘어선 가공산업과 판로개척까지 농업의 선진화를 통해 농한기를 없애고 공동출하, 공동판매로 고소득을 올리는 농촌만들기에 주력할 생각이다.
돈 버는 즐거움이 가장 크다는 김씨. 연구 노력한 결과 품질을 높여서 9천원에서 1만원을 채울 때 기쁨은 참으로 크다는 것. 그렇지만 돈 버는 데만 너무 얽매여서도 안된다고 한다. 돈 버는 것과는 별개로 동네에서 가장 헤프다는 평을 듣는다. 아무리 농사 일로 바쁘더라도 동료농업인들과 어울리는 데도 적극적이다. 기계와 전기관련 업무를 봐왔던 경험을 살려 기존 수확기계에다 날을 달고 흙이 덜 들어가도록 하는 등 농기계를 개조해서 농사일을 쉽게하는데도 앞장서고 있다.
74세까지 팔팔하게 농사지을 터가장 보람있는 일은 매년 수확량을 늘리기 위한 여러 가지 시도 끝에 생각대로 소출을 얻었을 때다. 도시생활은 늘 하던 일을 되풀이 반복하지만 농촌생활은 매년 같은 마늘을 심어도 이런 저런 노력 끝에 수확량을 늘려나갈 때 보람을 느낄 수 있어 좋다는 것. 이같이 연구 노력한 결과 매년 농산물의 품질도 나아지고 있고, 수확량도 늘어났다.
“내가 생산한 농산물의 상품가치를 높여 소비자들이 내 것만 찾도록해야 한다”는 김씨는 “이를 위해서는 놀라운 기술력이 필수”라고 강조한다. “뛰어난 두뇌를 가진 젊은 귀농인들과 함께 최고의 기술력으로 농업을 발전시켜 나가고 싶다”는 김씨는 지식과 지혜 부지런함을 갖춘 젊은 이들이 보다 많이 귀농해 줄 것을 당부했다.
매일 새벽 5시40분 기상, 저녁 10시 취침때까지 일하는 김씨는 수년 전 초기 전립선암 판정을 받았으면서도 낙천적이다. 아무리 바빠도 주변 사람들과 어울린다. 연초 예정된 조직검사를 농번기를 피해 9월로 미뤘다는 김 씨의 휴대폰 번호는 7488이다. 74세까지 팔팔하게 농사짓고 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올 가을에는 회갑을 맞은 부인의 건강을 위해 일본 온천관광을 다녀올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