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300여 년 동안이나 만석꾼을유지하면서 9代 진사를 배출한 경주 최부자는 영남 일대는 물론이고 전국적으로잘 알려진 거부이자 명문가 집안이다.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부(富)란 얻기도 힘들지만 대대로 지켜나가기는 더 어려운 것이기에 이들은 ‘부불삼대(富不三代)’ 즉 3代 거지 없고 3代 부자 없다는 우리의 고전속담을 무색하게 만들었다.그리고 어렵게 얻은 부를 이웃에 베풀고 사회에 환원할 줄 아는 아름다운 부자가 되기란 더더욱 어렵기에 흔히들 부자가 천국 가기는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과 같다고 비유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주의 최부자는 부와 명예를 300여 년 동안이나 누리면서도 주위사람들로부터 칭송의 대상으로 존재했고 이들 가문의 성쇠에 대한 관심은 이미학계의 주목을 받은 지 오래됐다.이러한 가문이야 말로 가진 사람들의참다운 자세가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고조선시대 최고의 노블리스 오블리제로 평가받으면서 온 국민의 귀감이 되고 있다.최부자댁이 300여 년간 9代의 진사를 배출하고 만석꾼의 부(富)를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에는 그들만의 독특한 생활철학(가훈과 육연 등)이 있어 몸소 실천하여왔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들이 살았던 주거지와 선대들의 묘지에 대한 풍수적 입지조건도 가문의 富와 권력의 유지를 위해 많이 애용해 왔음을 여러 곳에서찾아볼 수가 있다.본지에서는 그들의 성공비결이 가문대대로 실천한 생활철학도 중요하지만 가문의 풍수입지 조건도 부의 형성과 유지에 일정한 작용을 하였다고 전제한다. 그래서 그들이 생활했던 양택지(주택) 2곳과 선대들이 잠든 음택지(묘지) 2곳을 선정하여 이번 주부터 한 곳씩 연속11회 차로 나누어 최씨가문의 풍수적 길흉을 분석해 보고자 한다.그 첫 번째 대상으로는 최부자의 초기생활터전이었으며 300년 동안의 절반을생활한 경주시 내남면 이조리의 마을이다. 이곳은 12대 최부자 중 1대 최진립 장군부터 7대 최언경까지 생활을 하며 거의 만석에 가까운 재산을 이루어낸 곳이기도 하다. 두 번째 대상은 나머지 절반을생활한 경주시 교동의 고택에 대한 분석이고, 세 번째가 경주최씨 사성공파이며최진립의 아버지와 조부모, 증조부모를뫼신 경주시 현곡면 남사리 종산제 뒤편의 음택지(묘소)이고, 마지막 4번째로 울산시 언양읍 반연리 뒷산에 모셔져 있는최부자의 1代 최진립과 2代 최동량의 음택지(묘소)이다.상기 4곳에 대해 풍수적 길흉을 분석해보면 최부자에 대한 발복의 경중을 알 수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음·양택을 막론하고 풍수입지분석은 용(龍), 혈(穴), 사(砂),수(水), 좌향(坐向)으로 나누어 분석하고특히 교동고택(陽宅)의 경우 동서사택(東西四宅)이론에 따른 양택삼요의 가상(家相)배치와 음양오행에 따른 상생상극 이론도 적용한다.분석과정과 그에 따른 길흉은 다음 주부터 연재하기로 하고 첫 번째 대상은 앞에서 열거한 내남면 이조리의 마을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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