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1년 9월에 고경면 청 경초등학교에 입학했습니다. 당시 입학식이 4월이었지만 6·25 전쟁통에 입학이 늦어졌 지요” 고 경면 상 리리 속 칭 배 골 출신인 대구 동촌신용협동조 합 손병완 이사장(72)은 “초 등학교 2학년 무렵 영천중학 교 인근에 주둔하고 있던 미군 들이 반공포로들을 체포하러 우리 마을에 왔었지만 흰옷 을 입혀 숨겨주기도 했었다. 당 시 영천에는 반공포로 수용소 가 있었다”며 자신을 전형적인 ‘국제시장’(영화)세대라고 소개 한다. 반공포로들과 어울리던 어린 시절 청경초-영천중-대구사범대 학(현 대구교대)를 거쳐 1963 년 3월 모교인 청경초등학교 로 첫 발령을 받아 재직하다가 입대, 맹호부대 소속으로 월 남전에도 참전했던 그는 마을 로 숨어든 반공포로들과 같이 어울려 다니던 어린 시절부터 4.19, 5.16, 월남전, 광주사태, 88올림픽, 월드컵, 세월호사건 등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직접 체험해 온 세대다. 4 4명의 동기생들과 함께 1957년 3월 청경초등학교를 졸업했던 그는 12년 후 “초임 지로 모교인 청경초등학교로 발령받아 왔을 때는 1개반 60 여명의 2개 학급으로 성장해 있었는데 지금은 페교돼 못내 아쉽다”고 말했다. 1957년 4월 영천중학교로 진학한 후에는 12Km 등하교 길을 나룻배나 버스를 이용하 기도 했으나 대부분 도보로 걸 어다녔다. 버스가 강바닥을 건 너가고 나룻배가 사람을 실어 나르던 시절이었다. 경북여객, 동해여객 등 3개 회사 버스가 대구와 포항을 오갔으나 배차 간격이 워낙 길어 버스 한 대 를 놓치면 지각하기 십상이라 걷지 않을 수 없었다. 등교시 간에 쫓길 때는 겨울에도 양말 을 벗고 강을 건너 다녔다. 공 사중이던 자호천 단포교 다리 아래 강을 건너다닌 기억이 아 직도 생생하다고. 친구와 영어단어 외우던 등하굣길 그래도 비포장 시골길을 오 가는 등하교 길에 동기생과 함 께 영어단어를 암기하며 걷던 일은 잊지못할 추억이다. 김재 은이라는 친구와 함께 30리 등하교길에 영어단어의 스펠 링과 발음, 해석을 서로 주고받 으며 걷던 일이 벌써 60년이나 지난 옛 추억이 됐다고. 북안, 화산 등 철로가 놓인 지역학생들은 기차통학을 하 고 자양, 임고, 고경 등지의 학 생들은 모두 걸어서 학교다니 던 그때는 가방에 펜대와 함께 넣고 다니던 잉크가 쏟아져 책 과 공책이 얼룩져 낭패보던 시 절이었다, 박봉 쪼개 장학금 주던 스승 동문통에서 자취를 하던 2 학년 때는 동료학생들이 많이 찾아와 시골에서 가져온 김치 가 맛있다며 함께 보낸 시간이 많다고 전하는 그는 3학년 2학 기 부터는 학교에서 마련해준 학교인근 가정집 기숙사에서 지냈다. 저녁시간에는 숙직선 생님들이 돌봐주기에 공부에 전념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그 는 당시 영천중학교 선생님들 이 교내학력경시대회를 열어 성적 최우수 학생에게 지급하 던 장학금 혜택을 받았던 일을 잊지못한다. “국어교사였던 최 정환선생님을 주축으로 여러 선생님들이 제자들의 고교진 학을 돕기위해 십시일반 성금 을 모아 준 덕분에 대구사범대 학에 진학할 수 있었다”며 수 십년이 지나서도 스승의 은혜 에 고마움을 표했다. 대구사범대학 12기 졸업생 인 그는 모교로 첫발령을 받 아 재직하다 군에 입대, 월남 전에 다녀와서 전역한 후 달성 군 금포초등학교 교사로 복직 했다. 경주 감포 전촌초등학교 (폐교), 대구동촌초등학교를 거쳐 2006년8월31일 용호초등 학교에서 정년퇴직때까지 줄 곧 대구에서 교직생활을 이어 왔다. 퇴직후 대구수목원에서 학생들의 현장체험 학습을 돕 는 숲생태해설사 4년, 동화사 와 불로동 고분공원, 망우당공 원 등지에서 동구문화유산 해 설사 2년을 거쳐 2013년 2월 4 년 임기의 동촌신협이사장에 피선됐다. 내고향 영천은 국난 극복의 고장 동촌성당 총회장을 두 번이 나 역임한 그는 동촌성당 50년 사 발간(2007년)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으며 10년동안 동촌 성당 주일학교 교장을 지내고 16년째 예비자교리교사로 일 하고 있다. “내 고향 영천은 6.25때 국 군의 대반격이 시작돼 전세를 역전시킨 역사적인 고장일 뿐 아니라 임진왜란때 첫 번째 승 리로 영천성을 탈환한 자랑스 런 선조들의 피가 면면이 이어 져 오고 있는 충절의 고장”이 라는 그는 영천의 지도층 인사 들중 많은 분들이 임진왜란 당 시 의병활동을 일으켰던 선조 들의 후손들이라고 소개했다. 밀양 손씨 양산공파 대종회 부회장인 그 자신이 임란때 의 병활동을 적극 도왔던 모헌공 손덕침 할아버지와 의병활동 을 하다 순국하신 형제분의 후 손이다. 고향마을인 배골이 밀 양 손씨 양산공파의 본산이다. 묘사때나 문중행사 때마다 고 향을 찾는다는 그는 “내 고향 영천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한 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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