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아주 이상한 결혼청첩을 받고 심한 마음고생을 한 적이 있다. 애경사는 분명히 인륜지대사라고 불릴 정도로 중요한 일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친인척은 물론 친구나 지인들에게 이를 알린다. 또 사람들은 이런 연락을 받으면 예외 없이 직접 또는 간접으로 축의나 조의를 전하고 기쁨과 슬픔을 함께 한다. 이것이 바로 사람과 사람들이 빚어내는 따사로운 정일 것이다.그런데 현업을 떠난 은퇴자들에겐 수시로 전해지는 애경사 소식이 적지 않은 경제적 부담을 안겨준다. 그 중 자녀의 결혼을 알리는 청첩장이 더욱 심한 부담을 주곤 한다. 초청을 받으면 그 자리에 가서 축의금도 전하고 축하해 주어야 옳다. 그렇지만 주머니 사정 때문에 머뭇거리거나 엉뚱한 생각을 하는 경우가 생긴다. 예를 들면 결혼식장이 고급 호텔이나 상류층이 주로 사용하는 호화스런 곳일 경우 난감해진다.본인이 먹게 될 식사비에도 못 미칠 정도의 축의금을 들고 가기엔 마음 한 구석이 답답하다. 그렇다고 많은 축의금을 내려니 주머니가 허전하다. 한 달에도 여러 건의 애경사 소식을 받다보면 정말 모두 인사치례하기가 부담스럽다. 그렇다고 그 소식들을 외면할 수는 없다. 그래서 나름대로 논리를 개발하고 자문자답을 하면서 알맞은 방법으로 축의나 조의를 전하곤한다.그런데 내가 최근에 받은 결혼청첩은 정말 나를 당혹스럽게 했다. 그 청첩인은 업무관계로 현업 시절 때부터 자주 만났다. 그래서 서로 아는 사이지만 그렇다고 개인적으로 따로 만나 정을 나눌 정도로 가까운 관계는 아니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자녀의 결혼을 알려왔다. 그런데 그 방법이나 문구가 아주 나를 당혹스럽게 만든 것이다.그는 스마트 폰 문자 메시지로 “저의 큰 딸이 결혼을 하게 됐습니다. 그러나 여러 사정을 감안해 가족 중심으로 최소한의 하객들만 초청하기로 했으니 양해바랍니다.”라고 보냈다. 거기까지는 이해가 갔다. 나를 대접하느라 예의를 갖춰 초청하지 못 하는 데 대해 미리 양해를 구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바로 이어 핸드폰 액정화면에 떠 오른 메시지가 나를 황당하게 만들었다.“그런데 다수 지인들로부터 문의가 잇따라 부득이 저의 계좌번호를 알려드립니다. OO은행 xxxxxx-xx--xxxxx. 아무개. 죄송합니다.” 이 메시지를 보는 순간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그리고 한 순간이지만 분노의 감정이 스쳐지나갔다. ‘이게 뭐야? 오지는 말고 돈만 보내라고?’하는 감정이 치밀어 올랐다. 정말 내 상식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는 청첩이었다. 여러 사람들의 청첩장을 받아보았지만 이런 경우는 없었다.수시로 날아오는 청첩장 중에는 오랜 기간 아무런 소식도 없었던 옛 동창들이나 지인들의 것이 있었다. 마음속으로야 언짢지만 가능하면 가서 축하의 말도 전하고 반가운 듯 악수도 하곤 했다. 그러나 최초의 청첩장을 문자 메시지로 받은 경우는 처음이다. 간혹 뒤늦게 청첩장이 반송돼왔다면서 전화를 걸어 주소를 묻는 사람들은 있었다. 그럴 경우 내가 문자 메시지로 알려달라고 해서 받은 적은 몇 번 있었다.그런데 이 사람은 엉뚱하게 계좌번호까지 보내왔으니 도대체 무슨 뜻인가? 나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을 그에게 내어야 할 채무액 미납자 정도로 취급했단 말인가? 나는 딸아이 결혼시킬 때 그 사람을 초청하지 않았었다. 설사 그가 내게 축의금을 보냈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청첩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는 분명히 오랜 사회생활을 통해 다양한 교양과 경험을 쌓았을 것이다. 나는 그 사람의 사고방식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어느 날 갑자기 동창모임에 나온 후 얼마 있다가 청첩장을 보내는 친구들도 더러 있었다. 헤어진 후 몇 해인지도 모를 선후배나 동료들의 청첩장을 받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격에 안 맞는 예식장이어서 주머니사정을 걱정한 적도 많았다. 그러나 이번처럼 황당한 청첩을 받기는 처음이라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나도 좋은 일을 알리면서 상대방에게 부담을 주지는 않았는지 더듬어 봐야겠다. 한 마디 덧붙이자면 그 청첩인의 혼사는 지나갔고 나는 그에게 아무런 응답을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