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끌만큼도 옛 임금에 보답한 것 없으니 / 단지 그때 죽지 못한 것이 한이로다/피맺힌 소쩍새 울음소리 차마 못 듣겠네 /밤새도록 슬픈 원 한 누구와 더불어 읊는단 말인가. 단종이 영월에서 승하 함에 영천 효 지리의 양곡선생이 비통한 심경을 읊 은 시이다. 양효지(楊孝智1414~1505)선생의 자는 이행이며 호는 양곡, 헌종12년 (1846)에 충신임을 인정받아 받은 시호 는 정간이다. 부모에 효도하고 형제간 우애 하였고, 본성이 어질었다. 천품(天品)이 영리하여 12세때 이미 문장에 능 하여 이름이 서울에까지 알려졌다. 중국 조정의 관원으로 중국 청주인 으로 고려 조정을 보좌한, 수시중 양기 의 현손으로, 숙부 양천진(天震:?~1436) 이 서장관(書狀官)이 되어 중국 조정에 갈 때, 17세의 나이로 수행하여 선조의 묘소에 성묘하고, 곡부공자묘를 참배 하여 돌아올 때 황제가 양곡선생을 위 해 시(詩)를 하사하였는데 “양씨 집 자 제 열일곱에 /재주와 용모가 남보다 뛰 어난데 /재모(才貌)만 아름답다 말하지 말라 /장차 세상에 쓰일 인물이 되리로 다.” 하였다. 황제의 예시대로 양곡선생 은 세종15년(1433)에 20세의 나이로 급 제하여 주서에 제수되고, 세종19년 24 세에 이미 예조참판(禮曹參判)에 오른 전도양양한 젊은 관원이었다. 후에 관서 안렴사가 되어 정사를 다스림에 조리가 있고 학규를 만들어 가르치고 향음주 례를 쓰게 하여 문풍을 크게 일으켰다. 한결같은 마음으로 세분 임금(세종, 문 종, 단종)을 섬겼지만, 높은 벼슬을 버리 고 도성을 떠나 은거하기로 결심하게 된 계기는 세종·문종대왕이 연이어 승하하 고 단종대왕이 왕위에 오른 후 종실의 영걸(英傑)들이 포진하고 있어 국세가 위 태로웠을 때 혜빈이 옥체를 편안하게 호 위하여 극진히 봉양했다. 하지만 수양대 군의 권력은 계유정란을 일으켜 양곡선 생을 정계에서 물러나게 만들었다. 단종 이 손위(遜位)할 때 세종의 유언을 들어 세종의 빈이었던 혜빈(惠嬪) 양씨(楊氏) 가 옥새(玉璽)를 내놓지 않고 버티다 세 조가 즉위하자 혜빈양씨는 청풍으로 유 배되고 가산도 몰수되었고, 대신들의 빗 발치는 상소로 교수형에 처해졌으며, 혜 빈의 아들 셋도 함께 죽었다. 그로인해 혜빈과 사촌간이며 더구나 지조 있고 절 개가 굳은 양곡선생이 택할 수 있는 길 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을 것이다. 금성대군과 더불어 단종복위를 도 모하다가 일이 누설되어 정통성을 잃 은 왕조를 떠나기로 결심하고 의(義) 를 같이 하더라도 일을 같이 할 수 없 어 벼슬을 버리고 자취를 감추어 고향 인 서원에 돌아갔다가 망미대를 짓고 배곡하면서 단종의제사를 지냈다. 후 에 64세에 신녕으로 이거하여 영천의 청주양씨의 입향조로 은거하면서 단종 을 위해 망미대(望美臺)를 쌓고 매월 초하루와 15일에 제사를 올리며 충성 심을 다하였고, 성리학을 실천하고 아 울러 지역의 후학 양성을 위해 학문을 가르쳤다. 사돈인 권렬, 점필재 김종직 의 아버지 김숙자, 정재 조상치선생 등 당대 이름난 대학자들과 교유했다. 매산거사(홍직필)의 말에, “생·사육 신들이 그 행한 바는 다르나, 다 지극한 정성과 가엽게 여기는 슬픔에서 나왔 으니, 선생 같은 분은 생육신과 같다.”고 하였다하니 양곡선생의 마음이 육신과 더불어 같이 살고 같이 죽을 수 있는 절 개 있는 분임을 지적 하는 것 같다. 자연과 더불어 삶을 붙이고 문을 닫 은 채 글을 지은 서적이 상자에 가득할 정도였지만 병화로 소실되었다. 지금은 『양곡선생실기』가 전해져 오고 있다. 92세의 나이로 돌아가심에 자손들 에게 본인이 죽은 뒤에 관직을 쓰지 말 고 표석도 하지말라하였다. 그로인해 묘소는 소실되어 찾지 못하고 있다. 후 인들이 선생의 덕망을 사모하여 선생 의 휘자를 잊지 않기 위해 살던 동네 를 효지리, 산을 효지산이라 하여 효 지리 덕강서원에 배향되었으며, 5 00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도 우리에 입에 오르내림은 그 분의 절개와 충절이 바 람처럼 흘려 자연속에 우리 가슴속에 살아 숨 쉬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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