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부자가 살았던 이조마을의 풍수입지 는 북서쪽에 있는 동보산(253m)에서 동 남쪽으로 용맥(龍脈)이 뻗어 내려와 신은 마을 한가운데에서 야트막한 봉우리를 일으키고 다시 동쪽으로 행룡(行龍)하여 이조리 마을에서 약간 볼록하게 돌(突)형 으로 분지를 이루었다. 마을의 형국은 행주형(배가 물위에 떠 있는 모양)이며 충의당은 그 가운데에 위 치하여 주위 땅보다 약간 높은 곳에 입지 하고 있다. 풍수가에선 이러한 행주형과 돌형(突形:솥뚜껑을 엎어놓은 모양)의 형국에 대 해 부(富)를 이룰 수 있는 곳이라 하여 선 호하고 있다. 풍수서 ‘朝鮮의 風水’에서는 행주형을 읍기(邑基)로 정하면 읍의 발달과 번창은 의심할 바가 없으며 특히 부(富)의 발현이 크다고 적고 있다. 또한 이 마을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장풍(藏風)국을 잘 이루 고 있다. 서북쪽에는 성부산(315m), 동남쪽으 로는 치술령(765m), 동쪽에는 고위산 (495m), 남쪽으로는 부엉드미산이 사방 을 호위하면서 감싸고 있어 명당의 지기 가 흩어지지 않으므로 생기 가득한 마을 을 만들어주고 있다. 특히 동쪽에 있는 고위산은 그 모양이 장군대좌형국으로 충의당 대문에서 정면 으로 보이고 있어 최진립 장군이 무사로 이름을 떨친 것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그리고 이조마을의 수세(水勢)는 미역 내(형산강 상류), 별내(노곡천), 이조천(박 달천)의 3갈래 물줄기가 마을 앞에서 합 수하여 북(경주)쪽으로 흘러나간다. 우리나라는 지형의 특성상 북쪽보다는 남쪽이 동쪽보다는 서쪽이 낮기 때문에 북쪽이나 동쪽방향으로 물이 흐르는 지 역을 역수국(逆水局)라 하여 풍수에서는 대 길격으로 친다. 이조천은 서에서 동으로 형산강은 남에 서 북(경주)쪽으로 흘러나가니 얼마나 좋 은 수세(水勢)의 조건인가. 또한 3갈래의 물길이 마을을 감싸며 마을 앞에서 만나 삼합수를 이루니 마을 의 생기를 잘 응기 보전 시켜주고 물이 풍 부한 이조마을은 넓은 들판을 옥토로 만 들기에 충분하다. 그래서 최씨 가문의 재산 축적은 바로 3갈래의 물이 마을 앞에서 합수한 후 역 류하는 풍수입지의 길격에서 비롯되었다 고 본다. 풍수고서 ‘설심부’에서도 “세 곳 에서 흘러나온 물이 합쳐져 명당에 모이 면 그 안쪽은 대귀(大貴)할 곳이다” 하였 고 ‘청낭서’의 양공(楊公)께서도 삼차구 곡수가 마을 앞에 와서 모이면 자손이 금 은을 낳는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한 이조마을은 마을전체가 가운데는 볼록하고 주위가 낮은 전형적인 돌형의 마을이고 행주형이다. 풍수적으로 볼 때 행주형의 특징은 한곳에서 대대로 오랫 동안 부(富)를 누릴 수 없다고 보기 때문 에 최부자가 이 마을에서 부를 이루었지 만 계속 머물지 못하고 다른 지역 즉, 교 동으로 이주하게 된다. 특히 풍수에서의 물은 부와 연관 지어 해석하므로 최부자댁이 이곳에서 부를 이 루는 데는 풍수적 입지조건이 많은 도움 이 됐을 거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