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가 방학 중이라 도서관에 자주 같이 가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바빠 늘 빌려서 나오던 저와 달리 아이는 그곳에서 책 읽는 것을 반깁니다. 그래서 한 번 가면 보통 두세시간은 지나야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니 저 또한 그곳에서 책을 읽게 됩니다. 집이라면 이런 저런 일거리들이 있지만 도서관에서는 서재도 주방도 세탁실도 없으니까요. 아이 덕분에 저도 전공 책에서 벗어나 교양을 쌓을 기회를 제대로 얻은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는 아이에게 고마워해야 할 것 같습니다. 요즘은 작은 도서관이 생겨 마을마다 최소 한 군데는 책 읽을 곳이 있어 아이들에게도 시민들에게도 좋은 것 습니다. 저 역시 여러 도서관을 다니며 다른 가정의 책 읽기 모습, 책 읽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방법도 배우고 직원들의 태도나 도서의 종류 면에서 감동을 많이 받습니다. 그곳에 가지 않았다면 영원히 몰랐을 것들을 말입니다. 최근에 읽은 책은 그레이스 케터만의 『말 때문에 받은 상처를 치유하라』입니다. 제가 오랫동안 관심을 가져온 주제가 언어폭력이기 때문에 관련 사례를 더 접해보고 싶었습니다. 그 책은 한 차례의 신체적 폭력은 일시적이나 한 차례의 언어폭력은 영원하다는 제 생각을 더욱 확고하게 해 주었습니다. 그 책에서는 아주 작은 비난이나 한탄도 언어폭력에 해당하며 그 말을 듣는 사람에게 상처를 오래 주게 된다고 합니다. 제 경험에 의하면 아무리 돌려서 말하더라도 대상자가 받는 그 스트레스를 짐작도 할 수 없습니다. 특히 여러 사람 앞에서 놀림이나 지적을 당했을 때는 그 수치심이 더욱 크고 기억이 오래갑니다. 어린 나이에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실제로 저는 일곱 살 때의 기억도 아직 갖고 있으며 그 말을 한 사람에게 나쁜 감정을 느낍니다. 그 말을 한 사람은 전혀 생각도 나지 않는다고 하고요. 제가 중학교 때 가정문제와 성적문제로 고민하는 사춘기를 겪으며 방황을 할 때 제 아버지는 일시적인 감정으로 제 성향을 낮게 평가하셨습니다. “너는 나약해서 내가 없으면 쓰러질 거야.”라는 말을 듣고 얼마나 가슴이 아팠는지 모릅니다. 제가 정신차리기를 바라는 마음에 하신 말씀이라는 것을 알지만 늘 저를 격려해주고 희망적인 메시지를 보내주던 아버지의 낮은 목소리에 등골이 서늘해졌습니다. ‘아, 이제 내가 기댈 곳이 없어졌구나.’ 단 한 문장의 말에 저는 제 의지처가 없어진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땐 심리적으로 어리다 보니 사람의 말이란 경우에 따라 다양한 내용으로 나올 수 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리고 어른들은 마음의 변화가 없는 줄 알았습니다. 어른이니까요. 몇 주 동안 자지도 먹지도 못하고 심하게 앓았습니다. 그때 제 마음을 달래준 사람이 바로 제 고모였습니다. 멘토가 필요한 제게 기꺼이 자신의 시간과 지혜를 할애한 것이죠. 무척 바빴을 텐데도 제 도움 요청에 응답하여 오랜 시간 동안 제 상처를 어루만져 주고 제 꿈에 대해 함께 고민해 주었습니다. 그렇게 고모와 이야기하면서 아버지의 고민과 혼란도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그때 제 고모가 아니었다면 지금의 저는 없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의 마음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이 되고자 하는 삶을 살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 저는 그때의 고모만큼 나이가 들었습니다. 제 조카들에게 저는 제 고모처럼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들이 저를 불러준다면 저는 기꺼이 25년 전의 제 고모가 될 것입니다. 자녀와 친척 조 카가 조금 큰 꿈 을 말한다면 “네가 할 수 있겠어?”라거나 “일단 이번 시험이나 잘 쳐.”라고 말하지 않으십니까? 그 말을 듣는 아이는 바로 날개를 접을 것입니다. 자신감이 없어져서나 꿈이 없어져서가 아니라 비웃음이나 부정을 당하는 꿈을 꾸는 자신의 현실을 비관하고 자신의 가치가 낮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럴 의도가 없었다는 것은 말하는 사람의 입장이며 듣는 사람들은 말하는 사람들의 의도까지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특히 자신의 깎아내리는 말 앞에서는 마음의 여유가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자녀와 친척 조카의 꿈과 현실에 관심을 가지되 응원과 동감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먼저 요청하지 않는다면 방법이나 주의 사항, 자신의 경험 등을 굳이 알려주지 않아도 됩니다. 그들은 이미 그 방법을 알고 있으며 그 나이에는 누군가에게 지시를 받는 일이 많기 때문에 그 순간만은 지시보다는 감정적 동조를 원할 것입니다. 그리고 자녀나 친척 조카가 아무리 나쁜 성적이나 위치에 처한다고 하더라도 어른들은 늘 기다려주겠다는 태도를 취해야 합니다. 그들의 기대와 격려를 먹고 자라나는 나무니까 말입니다. 칼에 맞은 상처보다 말에 맞은 상처가 크다고 합니다. 한 순간의 실수로 수많 은 질책을 받게 되는 것이 아이들의 현실입니다. 그럴 때 부모나 친척은 비판이 아니라 포용으로 감싸주는 것이 그 아이들에게 진짜 도움이 됩니다. 이미 많은 비판을 스스로에게, 선생님께 받았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