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 장공의 마음은 물과 같이 맑아서 만 번 꺽여도 반드시 동쪽으로 흐르며 公의 성품은 쇠와 같아서천번을 녹여도 녹지 않으리라.” 명고 정간선생이 지은 충장공에 대한 글이다.충장공(忠莊公) 이보흠(李甫欽1397∼1457)선생의 자는 경부 호는 대전이다. 관향은 영천이며 남곡 이석지의 손자로 이현보의 아들이다. 청통면에 유배온 태재 류방선의 문하에서 사가 서거정과 강공 효문 등과 공부했다. 용모가 준수하고 학문을 좋아했는데 문장에 능하고 공무처리에 있어서는 공정하고 생활이 검소하고 백성을 사랑하였으므로 늘 주위의 존경을 받았다. 1429년(세종11)에 문과에 급제하고 집현전 박사가 되어 후일에 사육신이 된 제현들과 역대 통감을 수찬하여 세종의 총애를 받았다. 동부훈도관을 거쳐 사헌부 감사로 봉직할때 서장관으로 명나라를 다녀 오는 등 국제외교 일선에서도 크게 활약했다.우효강·김 순 등의 문사와 함께 ≪자치통감훈의 ≫ 찬수에 참여하였으며, 집현전박사를 역임하고, 축성법에 대한 건의나 공법 논의 등에 참여하였다. 1445년에는 사창제도를 도입, 지대구군사에서 공렴품관 등 영남 지방의 재향사류와 연결해 성리학적 향촌 질서의 이론으로 주자(朱子)가 고안한 사창법을 최초로 실시하여 영남 성리학 학통의 계승과정에서 일정한 위치를 차지했다. 선생은 효과적인 사창법의 시행으로 ‘순량’이라는 칭송을 얻었으며, 직예문관으로서 ≪세종실록≫ 편수의 기주관이 되었다. 성균주부, 함양군수, 직예문관 등 역임하고 단종이 세조에게 선위하고 폐위되어 영월로 유배되자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여 대전동에 은거하면서 생질들을 훈육하였다. 세조가 순흥부사로 제수하자 처음에는 거절하였으나 그곳에 유배된 금성 대군과 뜻을 함께할 절호의 기회라 생각하고 흔쾌히 부임했다.영월과 순흥은 소백산을 사이에 둔 인접한 지역이라, 금성대군과 비밀리에 성삼문 등 사육신과 내통하여 단종을 복위할 계획과 준비를 갖추고 전국민의 호응을 청하는 격문까지 만들어 두고 사위 손서륜 등과 군사를 모집하며 거사의 날을 기다리던 중에 관노에 의하여 격문을 잃어버리고, 역적으로 잡혀 평안도 박천으로 유배된 후, 세조가 금성대군과 선생을 살려주기 위해 노력을 하나 당시 정인지, 정창손, 한명회, 신숙주를 비롯해 모두 죽여야 한다는 주청에 못이겨 그해 10월 27일에 교살되었다. 역신으로 멸문지화를 당해 대전촌에 있는 선생의 생가는 불태워지고 그 자리에 못을 파 물을 채웠다. 명당이라 또 역신이 난다고 해서이다. 그로인해 3대 멸족의 피화로 생질들도 모두 벼슬을 버리고 낙향 하였다 선생은 거사를 앞두고 외아들 이간인에게 망명도생(亡命圖生)을 당부했다. 선생도 자신도 모르는 곳으로 피신을 하되, 꼭 대를 이어 후세를 기약하기 바란다는 다짐이었다.후손들은 거창 웅곡에 잠적하였으며 후에 주손은 군위에 피난 정착하여 충장공파를 형성하였다.이보흠이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청통면 대전마을 안에 충장공의 유허비각이 있는데, 비각 앞에는 그가 젊었을 때 거닐었다는 순흥연못이 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제법 큰 못이었지만 농지정리 때 논으로 편입되고 순흥연이라는 표석이 남아있다. 표석에는 선생이 순흥에서 화를 당하고 순흥부 향리 700여명과 영남의 선비300여명이 피살되자 그 흐르는 피는 냇물이 핏물로 변했고 순흥부사가 격살되는 날 부터 3일 동안 대전동 순흥연못에 혈류가 3일 동안 물이 붉은 피로 솟았다고 하여 그 연못을 순흥연이라 하였다는 내용이 전해진다.선생의 묘소에는 비가 3기가 있다.허름한 이보흠지묘 이름만 있는 묘지석부터 처참하고 기구했던 선생의 역정을 보는 것 같다. 역신의 후예들이라하여 후손들은 삼백여년이란 긴 세월동안 고향 관향지를 버리고 흩어져 숨어 살아야 하는 수모를 겪게 되었고, 삼백여년 뒤 영조 14년(1738)에 복권되어 자헌대부 이조판서로 증직되었으며 또 50년후 정조 15년(1791)에 충장공의 시호를 받고 장릉충신단과 공주 숙모전등 많은 서원과 사우에 배향되었다. 선생이 야은 길재선생의 묘소에 제사할 때 그 충절을 흠모하여 지은 제문에서 알 수 있듯이 고결한 선생의 정의와 충절이 우리의 사표가 되어 충절로 다져져 오늘날 영천 문중은 많은 후손들로 번성하여 선생의 뜻을 받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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