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公)은 입은 말하지 않을 것 같고 몸은 옷의 무게를 이기지 못할 것 같았으며, 종일토록 무릎을 모으고 꿇어앉아 경전과 역사를 토론하면서 수기치인을 목표로 공부를 했으며, 족적이 한번도 권귀(權貴)의 문(門)에 이르지 않았으니 정말 군자다”. 군자의 도는 임금을 바르게 하는 것일 뿐이다. 자기를 굽히는 사람으로서 남을 바르게 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임금의 스승이 되신 안증선생의 단정한 학문자세와 엄정한 행동방식을 지켜본 광계군 안여경은 그를 ‘참 군자’라 말했다.안증(安, 1494~1533)선생의 자는 사겸이며, 호는 완구(玩龜), 본관은 광주(廣州)로 영천의 입향조다. 안방걸(安邦傑)을 시조로 하고 당시 사림의 종장인 김종직(金宗直)의 문인이며 강직하고 청렴한 성품을 지닌 예조정랑 남원부사 등을 역임하고 청백리로 선정된 안구 의 둘째 아들로 밀양군 초동면에서 태어났다. 선천적인 자질이 빼어나고 어릴 때부터 글을 깨우칠 정도로 영리하여 당시 김종직의 제자로 대선비였던 박한주(朴漢柱, ?-1504)로부터 ‘가문을 빛낼 아이’라는 극찬을 들었다.점필재의 학통을 계승한 가문의 전통을 이어 성리학 연구에 전념했으나 어지러운 정치현실과 박한주 선생의 참형으로 안증선생은 벼슬에는 관심이 없이 학문에만 심취하게 하였다. 이미 학문은 완숙의 경지에 이르러 회재 이언적(李彦迪), 남명 조식(曺植) 등과 친교를 맺으며 왕도정치에 의한 민본주의(民本主義)를 주창하였다.성리학의 이론이 실제 생활과는 맞지 않는 점이 많음을 지적하고 실학사상에 심취하였다. 절친한 친구였던 이언적 선생과 주세붕선생의 적극적인 권유로 관직에 나섰지만 선비가 과거도 보지 않고 벼슬을 취하는 것은 무편부 당하지 못한 처사라 정사의 기강을 흐리는 것이라 하여 후일 과거를 본 후에 시강관(侍講官)과 교리의 뜻을 받았다 한다. 선생은 이듬해에 별시문과(別試文科)에 급제하였고 1540년 형조좌랑(刑曹佐郞)을 봉직 받게되었다. 그리고 그해 다시 세자시강원 사서설서(司書設書)로 승진하여 후일 인종이 되는 세자에게 학문을 가르치게 되었다.선생이 경상도에 은거하면서 전념한 역학과 정사의 민본사상이 인종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선생은 조정의 조신들이 목민과 정사는 외면하고 세력 형성에 급급하여 마치 관료들만의 세상처럼 부패한 것을 통탄하여 인종이 즉위하면 반드시 이상정치를 펼 것이라 믿고 이를 실현할 수 있는 정치사상 강론에 몰두하였다.하지만 외척이 개입된 정치는 왕위계승을 둘러싼 갈등이 고조되었다. 널리 알듯이 윤임(尹任, 1487~1545)과 윤원형(尹元衡, ?~1565)은 각각 중종의 비인 장경왕후와 문정왕후의 동생으로 인종과 명종의 외숙들로 을사사화의피폐를 가져왔다. 또한 병약한 인종이 즉위한지 9개월 만에 승하해 민본사상을 주창한 선생의 이상이 무산되었다. 이러한 일이 있은 후에 관직을 버리고 경상도로 이거하였다. 대의를 저버리고 아첨에 급급한 사류들과 더 이상 어울리지 않으려는 뜻도 있었다. 마침 선생의 장인인 최숙강(崔叔强)이 경상도 도사로 재직하고 있었기 때문에 주로 처가인 영천에 머물면서 역학과 풍수설에도 조예가 깊었던 선생은 영천의 도남동에 완구정(玩龜亭)이라는 정자를 짓고 학문과 후학 양성에 전념하였다.선생의 저서에서 현재의 도남동에 정착한 이유를 팔공산에 인종의 태실이 있었던 연유도 있겠지만 ‘남쪽에 학문을 상징하는 붓끝봉(筆鋒)이 있고 동쪽에는 부(富)를 상징하는 뒤주봉이 감싸고 있는 지세이므로 이곳에서는 벼슬길로 크게 출세는 못해도 먹는 것은걱정 없이 글을 익힐 수 있는 곳이라’하여 500년이나 지난 지금까지 이곳 영천의 후손들이 가난하지 않았으며 학문과 전통의 맥을 이어 오고 있다.그의 『완구실기玩龜實記』가 전하고 있으며 실천유학의 대가 남명 조식선생이 존경했던 안증선생! 남명의 시문이 아직도 완구정에 현판을 장식하고 명분있는 선비들이 남긴 문향의 흔적들이 뭇선비들의 귀감으로 조선전기를 대표하는 선비로 지금도 완구정에 그윽한 유향으로 호계천을 둘러 흐르는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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