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도덕을 모르는 아이들, 게다가 버릇까지 없는 어린이들이 나를 무덥게 한다.
연일 35도를 오르내리는 무더위가 사람들의 진을 다 빼놓던 8월 하순 어느 날 오후 2시쯤이었다.
점심모임을 마치고 나는 지하철을 탔다.
이런 살인적 무더위도 지하철을 타면 사라지고 만다.최고의 피서처요 시원한 곳이 바로 냉방 잘 된 전동차 안이다.
객실에 들어서면 느껴지는 서늘하고 상쾌한 바람이 무더위를 한방에 날려준다.이 때문에 나는 계단을 오르내리는 불편과 수고를 감수하면서도 웬만하면 지하철을 탄다.지하철 군자역에서 다른 열차 환승을 위해 열차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나를 포함한 어른들 7명이 두 줄로 서있었다.그런데 초등학교 5학년쯤 돼 보이는 남자아이가 줄 가운데로 들어와 문 열림 표시가 된 바로 앞에 버티고 섰다.나는 속으로 ‘요런 맹랑한 녀석을 봤나?’라고 생각하며 보고 있었다.그 때 맨 앞쪽에 서있던 여자 분이 그 어린이에게 “얘, 너 거기 서있으면 내리는 사람이 불편하니 옆으로 서렴.”하며 타일렀다.그런데도 이 꼬마 녀석은 들은 채도 않고 그 자리에서 스마트 폰만 들여다 보며 서 있었다.
그 여자 분을 비롯한 모두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라도 나서서 혼을 좀 내주고 싶었다.
그러는 사이 열차가 들어와 멎고 많은 사람들이 내리고 탔다.꼬마는 내리는 사람들 틈새로 비집고 들어가 먼저 빈자리를 찾아 앉았다.지하철 안은 비교적 한산해 나도 좌석에 앉을 수 있었다.그런데 이번에는 시끄럽게 소리 지르고 떠들어 대는 아이들 때문에 정신이 없을 지경이었다.내가 앉은 오른쪽의 출입문 건너에 있는 긴 좌석을 어린이들 다섯 명과 엄마인 듯 한 여자가 다 차지해 앉았다.그리고 그들 앞에는 또 다른 젊은 여자와 어린이 한 명이 서 있었다.
모두 일행인 이들 6명의 어린이가 소리치며 법석을 떠는데도 엄마인 두 여자는 ‘난몰라’란 듯 지켜보고만 있었다.그 바람에 지하철 소음과 아이들 소음이 어우러져 전동차안은 옆 사람들과의 대화조차 힘들 정도로 소란스러웠다.그런가 하면 내가 앉은 맞은편에서는 조금 전의 그 버릇없는 어린이가 스마트 폰에 열중하고 있었다.어느 정거장에서 탄 할머니 한 분이 그 아이 앞에 와서 섰지만 쳐다보지도 않고 열중하고 있었다.
그 할머니는 그 꼬마 옆에 앉아있던 아가씨가 양보한 자리에 앉았다.어린아이들이라고 예쁘게 봐주려 했지만 이건 아닌 것 같다.
어디서부터 잘못 된 것이며 어떻게 해야 바르게 자랄수가 있을까?이 어린이들과 엄마들을 지켜보면서 나는 많은 생각을 했다.
예로부터 우리나라 젊은 사람들은 어른을 공경했고 어른들은 아랫사람을 아껴주었다.그래서 중국에서는 우리나라를 ‘동방의 예의바른 나라’라고 하지 않았는가.
내가 어렸을 적엔 모든 아이들이 어른들의 말을 공손히 듣고 따랐다. 어른들 역시 내 자식이든 남의 자식이든 가리지 않고 잘 잘못을 따져 칭찬도 하고 벌도 내렸다.그것은 서로에 대한 믿음과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했었다고 본다.시대가 변하면 그에 따른 예의범절의 행태도 조금씩 변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날 내가 탔던 지하철에서 본 어린이들의 행동은 어른들이 가르치고 바로 잡아주어야할 것 같다.어린아이들이 공공장소에서 그토록 소란스레 법석을 떠는데도 지켜만 보는 젊은 엄마들은 도대체 어떤 교육을 받았으며 어떤 사고방식을 갖고 있을까?또 어른의 타이름을 무시하고 내리는 사람들 틈으로 차를 탄 어린이는 집에서 어떤 가르침을 받고 자랐을까?문득 대학교 시절 방학을 맞아 고향에 갔다가 경험했던 일이 생각났다.
내 고향마을은 읍에서도 상당히 떨어진 시골이다.그 때문에 어른들의 의식이 완고하고 예의범절에 엄격했다.
나는 그 때도 시력이 약해 안경을 끼고 있었다.
어느 날 마을 골목길에서 큰 집 아저씨를 만나 안경을 낀 채 인사를 드렸다.반갑게 인사를 받은 아저씨는 조용히 나에게 “다른 어른들 만나 인사할 때는 안경을 벗고 하렴. 절 할 때 모자를 벗는 것처럼 말이야.”라고 일러 주셨다.지금 생각하면 터무니없겠지만 당시 내 고향에서는 안경도 모자처럼 의관(衣冠)의 한 부분으로 간주됐기에 그렇게 가르쳐 주신 것이다.요즘 젊은 부모들에게 그런 식의 예절교육을 강요할 순 없겠지만 잘 잘못을 일러주던 그런 정신만은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