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후 남편과 데이트는 시작되었다.
은행 업무에 바빠 후줄근해진 몸과 마음을 힐링하기 위해 내게 전화 했다고 했다.
그날이후, 내 일상 안에도 언뜻 언뜻 떠오르는 한 남자가 있었다.
덜컥 채워진 인연의 고리를 확인하기도 했다.
놀이터에서 진한 키스로 맹렬하게 각인 시켜준 남편의 손은 허리정도에서 멈춰져 있었다는 것이 놀라웠다.
다른 그 어떤 곳에도 터치를 하지 않는 자제력이 매너남으로 기억되게 했다.
휴대폰 번호를 알고 있었지만 기다렸다.
그 기다림 안에는 내가 여섯살 많다는 것도 포함되었다.
쉽게 관심있다고 드러낼 수 없는 나이차이.
남녀가 바뀌었다면 더 적극성으로 다가갈 나이차이.
규범과 틀에서 벗어나라고 누누이 친구들에게 침을 튀겨가며 얘기한 내가 막상 본인문제로 다가왔을때, 걸림돌이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남편을 화장실에서, 마트에서, 부엉이시계소리에, 설거지를 하다가 툭툭 떠올려지는 현실에 위축되었다.
혹시나 혼자만 에프터를 꿈꾸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 또한 혼란스러웠다.
남편은 내 혀를 낚아채가기도 하고, 내 입천장을 공략할 때도 더 이상 진도를 나가지 않겠다는 분명한 선을 그어놓고 있었던 것이 확실했다.
어떻게 그런 상황에서 내 가슴을 찬밥신세로 만든단 말인가.
약간의 조바심도 일주일쯤 들어섰을 때 옅어졌다.
아, 인간에게는 망각이라는 절대적인 능력이 있었구나 생각하려는 즈음에 전화벨이 울렸다.
그 남자다. 보이싱피싱에서 부터, 잘 못 걸린 전화까지 숱한 전화를 받고 끊고 했는데, 단지 그 많은 전화벨 중 하나였는데 놀랍게도 남편이 내게 보내는 수신호인지 감지했다.나는 천천히 다가가 전화를 받았다.
혹시 전화벨이 끊어지면 어떻게 하나하는 갈등도 있었지만. 그러면 전화번호가 입력되어 있지 않다는 표시로 <누구세요>하며 딴청을 부리겠다는 맹세까지 내 자존심에게 속삭였다.다행히 남편의 번호가 떠있었다.
그리고 벨소리도 멈추지 않았다.
하품을 곁들이며 전화를 받았다.
구미호처럼.
누구......세요?
놀이텁니다.
아아니 지금 놀이터가 아니라 놀이터에서 사건이 생긴 이후 줄곧 고민하다가 지금에야 전화했습니다. 이번 주말에 뭐하세요?
꼭 만나야 할 것 같아서, 꼭 나오실 거죠?남편의 목소리는 상당히 망설이다가 전화 한 것처럼 약간 더듬거렸다.
약속 날짜가 잡혀지자 나는 묵은 청소를 했다.
집안 구석구석을 놓치지 않고 열심히 쓸고 닦았다.
켜켜이 쌓여 있던 먼지와 얼룩과 이물질들이 속수무책으로 투항을 했다.
언제 이토록 몰입하며 상당의 시간을 할애한 적이 있을까.
열어젖혀둔 창문에서 부는 바람이 엑설런트 음절의 소리를 내며 불어왔다.
액자 모서리며 장롱 밑까지 흝듯이 방과 거실 청소로 나름 마무리하고 주방으로 달려가 싱크대며 냉장고 안을 훔치기 시작했다.
한 번씩 화장실로 눈길을 가는 것을 제어하기 위해 도리질도 했지만 내 몸은 벌써 변기를 철사 수세미로 박박 문지르고 있었다.
이러다 몸살이 나는 건 아닐까. 몸살이 대수랴. 남편의 약속만으로 열망하던 소원이 이루어진 느낌, 그 날 얼마나 진도가 나갈까하는 기대치의 설렘, 나는 모든 것을 허락할까, 말까하는 갈등까지.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