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구와 매실은 공판장에 내다팔고 있지만 올해 처음 수확한 아로니아는 판로개척이 가장 힘이 듭니다”신녕면 신단1리 950평 밭에서 살구와 매실, 아로니아를 재배하고 있는 3년차 귀농인 전영현(64)씨는 그동안 살구와 매실 가격이 너무 낮아서 올해 처음으로 아로니아 200주를 재배했지만 판매가 가장 어렵다며 찾아간 기자에게 가장먼저 “판로개척에 힘써 달라”고 주문했다.올해 첫수확으로는 꽤 많은 양인 2000Kg이나 생산해 낸 아로니아는 공판장에 내다팔기에는 너무 낮은 가격이라 전체 생산량의 60~70%를 직거래로 판매하고, 나머지는 친인척과 주변 지인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는 그는 아로니아의 판로 문제를 걱정했다.자신은 Kg당 8천원에 판매했었지만 다른 농가에서는 10000원이나 15000원에 판매하는 등 능력껏 판매하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는 그는 “가능하면 전량 직거래판매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군무원출신 귀농인동촌 K2군무원 출신인 그가 현재 농사짓는 밭은 원래 부모님이 농사짓던 바로 그 밭이다. 정년퇴직후 다른 직장을 얻어 구속되기보다 주말농장이라도 운영해보자는 생각에 일찌감치 고향땅 부모님이 농사짓던 땅을 미리 구입해 둔 것이 귀농의 직접 동기다. 원래 2009년이었던 정년퇴직을 1년 연장해 2010년 6월30일자로 군무원 생활 33년을 마감하고 곧바로 귀농했다. 현직에 있을때인 1993년에 퇴직후를 미리 내다보고 고향인 신덕1리 밭을 구입해 주말마다 내려와 농사를 지어왔다.그의 귀농은 신고가 늦어 3년차지만 주말농장 경력까지 보태면 훨씬 오래 됐다. 4남3녀 7남매중 차남인 그는 신녕초등학교 52회 졸업생으로 1952년생이다. 부모님이 이 마을에서 인심을 잃지 않으셨기에 덕을 많이 봤다.고향마을로 귀농하면서 주민들로부터 냉대를 받지 않은 것은 모두 부모님 덕분이라는 것.밭을 구입한 후 제초제와 화학비료는 한번도 사용하지 않았다는 그는 “깻묵이나 퇴비를 사용하는 친환경농법 덕분에 과일의 맛도 더 좋다”고 자랑한다. 친환경농사를 지은 밭에서는 일급수에만 자란다는 비단개구리나 도룡농까지 서식하고 있다. 연일 풀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는 그의 밭에는 고랑 사이로 부직포 대신 까만 차광막을 덮어놓았지만 금방 자라나는 수풀이 무성해지기 일쑤다. 일상화된밭매기를 하다가 도룡농을 만나면 안전한 곳으로 옮겨주고 있다.이같은 친환경농산물이 소비자들로부터 외면받아 제값을 못받는 것이 아쉽다는 그는 “일반 농산물은 겉모습이 깨끗하다는 이유로 주부들의 사랑을 받는 것 같다”며 “착색제를 사용하지 않아 겉모습이 흉하거나 벌레먹은 자국이 있는 농산물이 바로 건강한 먹거리다. 친환경농산물을 애용해 달라”고 당부했다.
일손이 덜가는 작목 선택살구와 매실 가격이 너무 낮았기에 올초부터 아로니아 재배에 나서게 됐다는 그는 “무엇보다 부인과 둘이서만 농사짓는 현실을 감안해 일손이 덜가는 작목을 선택했다”며 6월부터 한달 간격으로 매실, 살구, 아로니아순으로 8월까지 수확하고 있다.당초 눈에 좋고 피로회복에 탁월하다는 아로니아를 집에서 먹기 위해서 10주만 재배하려다가 이왕 재배할 바에는 본격적으로 시작해보라는 모종 판매상의 권유로 복숭아 70주를 뽑아 내고 그 자리에 아로니아 200주를 심게됐다는 설명이다.
소득의 10%는 불우이웃돕기에특히 올해 매실 값이 크게 하락한데다 작은 매실은 반품조치까지 당했지만 다행스럽게도 자신의 매실나무는 굵은 매실을 생산해낸 덕분에 공판장을 통해 판매할 수 있었다는 그는 “기존 매실과 살구에다 아로니아 판매대금까지 보태진 올해 소득이 귀농이후 가장 많았다”며 웃음짓는다.“막상 귀농해서 농사를 지어보니까 월 1백만원 벌기가 이렇게 어려운 줄몰랐다”는 그는 “노력한 만큼의 댓가가 너무 적은 것이 농사”라며 “월급쟁이 시절같이 매월 돈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농사꾼은 수확물을 내다팔때 생기는 연중 단 한차례 수입으로 일년을 버텨내려면 쉽지 않다”고 밝힌다.그래도 가장 보람있을 때는 한해 농사를 끝내고 매년 소득의 10%를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 기탁할 때다.부부가 합심해 땀흘린 결실이라 아까운 마음에 한마디를 하더라도 경제권을 쥐고 있는 부인(57)의 성금 기탁은 매년 어김이 없다. 올해는 150만원을 기탁했다.군무원 재직시 군악대장으로부터 미리 배워둔 섹스폰을 마음껏 연주하며 퇴직후 제2의 인생을 즐기고 있다는 그는 금호가 고향인 부인에게는 드럼을 치도록 배려했다. 매주말 대구 소재 학원에서 배워오는 드럼을 연주하는 부인과 함께 섹스폰을 연주할때 힘든 농삿일을 잊어버리고 여유로운 농촌 생활을 보내고 있다.귀농희망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첫째 귀농생활에 대한 너무 큰 기대를 하지말 것과 함께 욕심을 버려라고 조언했다. “가능하면 남에게 베푸는 삶을 살수 있도록 노력하라”고 강조하는 그는 “베푸는 만큼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데 일조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