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정치에서 다수결원칙이 기본적이고 때로는 효율적 일수도 있으나 다른 한편 중우정치로 흐를때 민주주의도 다수의 횡포에 휘말릴 수 있다. 영천에서 서원의 시비논쟁이 한 예로 임고서원에서의 여헌 장현광의 병향이냐 배향이냐 문제인 병배시비가 발생한다. 여기에서 오졸자 박돈은 배향을 주장하여 여헌의 후손인 장학과의 논쟁을 벌였다.박돈(朴暾1577년~1654)선생은 본관은 밀양이며, 자는 명숙, 호는 오졸자(吾卒子)이다. 고조부는 집경전 참봉 박정이며, 증조는 의성교수 박윤청, 조부는 예빈시 참봉 박린이다. 부친은 수직 돈녕부 도정 박사신이며, 모친은 숙부인 월성최씨로 참봉 최종윤의 따님이다. 부인은 서산류씨로 군자감 첨정 류윤하의 딸이며, 슬하에 4남3녀를 두었다. 창호·창경·창민·창생이며, 사위는 김이건과 일직인 손작, 동래인 정천주이다. 선생은 어려서부터 강명하고 준엄하여 아이들과 어울려 놀때도 항상 스스로 높이고 앞장서 나갔고 스승에 나아가서는 스승의 가르침을 가슴에 새겼다. 재주가 빼어나서 행동이 민첩하고 지킴이 확고하여 모든 행실은 권리를 따르고 인간의 도리를 분명하게 하였다. 선생이 15세가 되어 경전으로 부터 사서백가에 이르기 까지 모두 익혔으며, 동생 박현과 함께 지산선생을 찾아 배움을 청하여 기특하게 여긴 지산선생은 오졸이라는 호를 내려『 나의 일을 마칠수 있겠구나.』라고 하시며 천인성명의 근원과 일용사물의 세세한 곳에서까지 모두 간곡하게 주를 쳐주었다.그는 감격하고 분발하여 평생의 의지처로 여기고 조경, 박대덕, 김육, 이의혼 등 지산문인들과 본원 함양과 후진양성에 애썼으며 부지런하고 해박한 학식과 확고한 식견으로 지산 조호익과 한강 정구의 문하에 종유하여 깊은 학문을 닦아 1616년(광해군 8)에 생원시에 합격하였다.1642년(인조 20) 일어난 병배론(竝配論)에 정몽주를 주향하는 임고 서원에 장현광 합향이 결정된 후 병향, 배향, 종향으로 구분되는 합향의 등위 문제가 발생하였고 지산 문인과 여헌문인으로 나뉜 논쟁은 여헌학맥의 확산을 기하고 자신들의 학문적 입지를 보다 공고히 하고자 했던 여헌 문인과 이를 견지한 지산 문인이 충돌하였다. 17세기 초 영천 유림들은 정구·조호익·장현광 등을 통해 퇴계의 학풍을 계승하였다. 하지만 가장 오래 생존했던 장현광은 정구와 조호익이 사망하자 이들의 문인까지 규합했고, 인동과 더불어 여헌학맥의 양대 거점으로 장현광 사후 5년 째 되던 해 문인들이 스승의 추숭 사업으로 임고서원 합향을 추진하자, 지산 문인측은 정몽주의 학통이 사림오현인 김굉필·정여창·조광조·이언적·이황을 거쳐 지산·정구·장현광에게 이어졌다고 보는 포은연원설(圃隱淵源說)과·포은 후학설(圃隱後學說)을 근거로 사림파 학맥의 연장선상에서 배향의 입장을 견지하여 통문을 돌려 한강계열과 안동권 유림에서 호응을 받았으며, 정몽주의 후손 정준(鄭儁)이 상소하여 위차 정정을 촉구하여 태학·숭양서원·충렬서원으로부터 배향론을 지지받고, 인조(仁祖)는 “임고 서원에 장현광을 병향한 것은 잘못되었으므로 배향으로 이정하는 것이 옳다”라고 하명하고, 당시 조정의 승지로 재직하던 지산 문인 잠곡 김육이 건의한 계(啓)가 받아들여져 예조의 관문이 하달됨으로써 병배 논쟁은 결정지어졌다. 영천군지에는 박돈에 대해 임고서원의 병배에 대한 논의에 정론을 홀로 확립하였다 하여, 박돈이 당시에 영천유림이 선산 안동지역을 대표하는 여헌의 후학들의 주관적이고 당시의 위세에 홀로 정론을 지키며 당당히 대응한 것을 높게 평가하였다. 박돈선생의 집안은 유학을 세업으로 삼아왔다. 3형제가 모두 문장이 뛰어나고 행의가 돈독하였지만, 상화가 연이어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시게 되었고, 갑진년 집안에 큰화재와 임고서원에 병배시비(並配是非)로 가산이 기울어지자 오졸자 선생의 제자이자 조카이며, 임고서원의 21대 원장을 역임한 괴천 박창우선생이 세거지인 영천에서 울산 북쪽 송정으로 이거하였다. 지산의 존모지소인 도잠서원의 원장을 지내시고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후학양성에 주력하여 많은 인재를 키우시고 향년 78세로 세상을 떠나셨다. 영천 도천리 영모재에 받들고 있으며 석판본인 2권 1책의 『오졸자실기(吾卒子實記)』가 전해지고 있다. 지산의 도를 이룬 오졸자 박돈선생의 충심과 기강을 세우는 도리의 일생을 기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