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의 가장 위대한 군주였던 세종대왕의 업적은 백성을 사랑하는 애민정신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세종대왕은 권위와 강압으로 정치를 한 것이 아니라 법과 사랑으로 백성을 가르치며 다스렸다.훈민정음 서문에 세종대왕은 훈민정음을 창제한 이유에 대해 “국어가 중국과 달라서 한자와 서로 통하지 아니하므로 일반 백성이 말하고자 하나, 제 뜻을 능히 펴지 못할 자가 많은 지라. 내 이를 불쌍히 여겨 새로 28자를 만드나니 사람마다 쉽게 학습하여 일용(日用)에 편케 하고자 할 따름이다.”라고 기록했다.세종대왕은 일반 백성들이 글을 몰라 예절과 법을 어겨 죄를 짓고 고통을 받는 것이 자신의 탓이라고 여기고 매우 안타까워했다.당시만 해도 법률이나 예법뿐만 아니라 왕실의 정책은 모두 한자로만 표기되어 있어 신분이 높은 양반들만 이해할 수 있었고 일반 백성들은 한자를 몰라 알 도리가 없었다.어문학에 대해 당시 누구보다도 깊은 지식을 가지고 있었던 세종대왕은 일반 백성으로부터 왕실까지이어지는 소통을 통해 일반 백성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사투리나 어린아이들의 소리까지 쉽고 정확히 표시할 수 있는 우리만의 문자가 절실함을 직시했다.이를 위해 세종대왕은 명나라와의 관계를 이유로 집현전 학자들이 반대할 것을 우려하여 비밀을 지킬 수 있는 세조, 안평대군, 정의공주와 같은 자신의 자식들로부터 도움을 받아 몰래 10여 년 동안 친히 연구하여 한글을 창제하기에 이르렀다.그 후 집현전 부제학 최만리와 학자들의 거센 반대를 극복하며 신숙주와 성산문과 같은 젊은 학자들로부터 도움을 받아 널리 한글을 알리고 펴서 누구나 쉽게 쓸 수 있도록 하였다.한글은 어문학을 바탕으로 해서 발성기관의 모양을 응용하여 과학적으로 만들어진 문자이며, 그 시대에 이와 같이 과학적인 체계성을 가진 문자를 창조했다는 데에 전 세계 어학자들이 놀랄 정도이다.한글의 우수성은 오늘날 컴퓨터시대에 이어 모바일시대에 와서도 더욱 빛이 난다.타 언어와는 달리 한글의 과학적 구조가 모바일 환경과 잘 맞아 떨어져 자판 사용의 편리성이 높고 짧은 문장으로 더 많은 정보를 전달할 수 있으며, 음성인식 모바일 개발도 쉽다는 것이다.세종대왕은 한글뿐만 아니라 재위 32년 동안 수많은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학문적, 군사적 업적을 일구어 냈다. 세종의 재위기간 동안 농업생 산성은 400% 증가했고, 국민의 평균 수명은 18년 늘어났다.세종은 본인이 부덕하고 능력이 모자란다는 생각을 한시도 잊지 않았고, 곳곳에 인재가 있으므로 그러한 인재를 등용하고 의견을 듣는것이 본인의 당연한 의무라고 생각했다.세종은 새로운 세법 실시에 앞서 위로는 고관부터 아래로는 농민까지 약 17만 명에게 찬성과 반대 의견을 물었다.찬성비율이 높았지만 반대 의견을 또다시 수렴하고 논의해 13년 후에나 세제로 확정했다.세종은 부왕 태종으로부터 일찍이 ‘일의 대체(大體)를 안다’고 평가받을 만큼 통찰력이 뛰어난 임금이었지만, 신하들을 자주 불러 거리낌 없이 직언할 수 있도록 그들의 의견에 힘을 실어주었다.세종은 모든 상황 속에서 구체적인 준거를 가지고 토론을 하고, 모든 의견을 수렴한 후 결단을 내렸으며, 결코 독단적이지 않았고, 언제나 어느 상황에서나 말과 행동이 일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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