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릇 임금의 행위는 광명 정대한 데서 나와야 하고 조금이라도 사곡(邪曲)한 데가 있어서는 안됩니다. 이번에 내간(內間)에서 재상가에 밀지를 내려 큰 일을 의정하셨다고 하니 신 등은 놀라움과 두려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대소 신료들에게 실로 죄가 있다면 마땅히 정원에 하교하시어 조정과 더불어 그 죄를 핵실(覈實)한 뒤에 죄를 주는 것입니다. 하물며 지금은 어리신 임금이 새로 정치를 하는 처음인데 선조(先祖)의 옛신하를 죄주면서 정원을 경유하지 않고 애매하게 처리하였으니 비단 성덕에 누가 될 뿐만이 아닙니다.” 명종 즉위년(1545)8월22일 (임자) 위의 내용은 홍문관 부제학 나숙, 응교 김진종(金振宗), 교리 곽순(郭珣)·이추, 부교리 이수경 등이 국왕 명종에게 아뢴 것으로 정당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비선 실세들로 일을 처리한 것에 대해 신하들이 질타하는 말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470여년전 국왕에게 직언을 하고 어진 인재를 골라 써야한다(택현,擇賢)고 주장한 강직한 선비가 경재 곽순(郭珣,1502~1545) 선생으로 그의 본관은 현풍. 자는 백유, 호는 경재(警齋).곽성기(郭成己)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곽효원이고, 부친은 사재감첨정 곽수녕이며, 모친은 충순위 김철단의 따님이다. 부인은 정씨로 사헌부 감찰 휘정언수의 따님이며, 3남 2녀가 있다. 장남은 회근이니 용궁 현감을 지냈고, 차남은 회개, 삼남은 회무이다. “곽순은 벼슬하기를 좋아하지 않고 어진사람을 좋아하며, 착한 일을 하기 좋아하니 만약 좋은 때를 만난다면 틀림없이 나라를 위하여 큰 일을 해낼 것이다.” 그의 친구였던 대쪽선비 남명 조식이 그의 제자들에게 한말이다. 또 탄수 이연경은 충재 권벌(權)선생에게 “곽백유는 그 곧기가 화살과 같다.”고 하였다. 그는 천성이 강직하고 개결하여 선과 의를 즐겨했으며, 부모에게 효성과 친척 간엔 화목하였다. 집안을 다스림에 정숙하여 안팎이 엄하게 법도가 있었다한다. 그는 1526년(중종21)에 식년문과에 급제이후 성균박사 호조좌랑 사성 장령등의 벼슬을 하였으며 기묘사화시 피화를 당했던 조광조의 신원을 청하였다.사헌부와 홍문관에 제수되어서는 임금에게 진언한 말들이 모두 선으로 직언하여 인종(仁宗)으로부터 크게 칭찬 받았다. 어느날 윤임(대윤·인종의 외숙부)이 인종의 병세가 위중할 때에 ‘봉성군(중종의 다섯째아들로 희빈홍씨 소생)이 문안차 궐내로 들어갔을 적에 바로 왕위를 그에게 전하면 누가 그 일을 막을 수 있겠는가. 봉성군은 속이 트이고 총명하니 그를 세우는 것이 마땅하다.”(중략) 윤임이 ‘곽순도 무엇 때문에 꼭 경원대군(훗날 명종)을 세울 필요가 있느냐고 했다.’라고 하자, 이유(李留)가 ‘정욱(鄭郁)도 종사가 중대하니 어진 사람을 골라서 세워야 한다고 했다.’ (명종즉위년(1545)/위 실록의 내용을 볼때 경재 선생이 을사사화때 피화를 당한 결정적인 것도 소윤이었던 명종의 즉위를 반대한 것에 대한 후폭풍이었다고 보여 진다. 명종 즉위 후 대·소윤간의 갈등이 더해지고 외척인 윤원형의 전횡이 극심해져 벼슬을 단념하고 청도에 내려와 운문산에 은둔 하였으나 을사사화시 서울로 압송되어 죽임을 당하였다. 선생이 세상을 떠날 때 44세로 1545년 9월15일 시신이 반구(객지에서 죽은 시체를 고향으로 옮겨옴)될 때 그의 고향의 삼밭의 삼빛이 붉게 변하여 3일간이나 계속되어 마을 사람들이 흉조에 놀라 하던 중에 곽순선생의 반구행렬이 서울에서 도착하자 비로소 그 원인을 알았다고 전한다. 이 후 삼빛이 붉게 변한 마을이란 뜻으로 마단리(麻丹里)로 고쳐 부르게 되어 선생의 단심(丹心)이 녹아있다. 곽순선생을 경모한 사림들이 청도에 우연서원과 영천 청통면 송곡서원에 제향되었으나, 현재 금호 오계 존인사에 향사 지내고 있다. 또한 청도 운문면 공암에 선생의 유허비가 오늘의 우리들에게 말없이 지나간 역사를 생각나게 한다.온 나라가 시끄럽다! 아직 우리나라가 시스템에 의해 움직이지 않고 인치(人治)에 의해 운영되기 때문이다 대통령 한사람에 집중된 권력이 오늘의 이 사태가 일어난 것이다 국가의 녹을 먹는 공무원들이 경재선생의 멸사봉공 정신을 가진 몇 사람이라도 있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경재 선생의 올 곧은 선비정신이 다시금 생각되어지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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