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퇴직은 위기일까 기회일까? 얼마 전 아침 TV를 보다 나는 귀가 번쩍띄는 이야기를 들었다. ‘은퇴’라는 상황을 어떤 사람은 기회로, 다른 사람은 위기로 만든다는 다소 진부하지만 명쾌한 진리를 재확인 시켜주는 내용이었다.50대중반이면 벌써 퇴직을 걱정해야하는 수 많은 직장인들에게 큰 용기를 불어 넣을 수 있는 내용이었다.다섯 사람이 나와 각자의 살아온 이야기나 생활철학을 이야기 하는 프로그램에 출연한 사람이었다. 그는 올해 ‘만60세’로 정년퇴직을 4개월 남겨둔 공무원이었다.경기도에서 첫 공직생활을 시작했다는 그는 현재 서울시 어느 구청에서 근무 중이라고 했다. 훤칠한 키와 깔끔한 용모에다 조용하지만 조리 있는 말솜씨가 돋보였다. 여기까지는 별로 특별할 것도 없다. 그저 기품 있게 생활한 어느 공직자의 이야기일 것이라 짐작했다. 그런데 그가 공무원으로 정식 임용된 게 불과 두 해전이란 말을 듣고서야 생각이 싹 달라졌다. 아니 이런 일도 있단 말인가?그는 외국계회사의 한국지사에서 말단 신입사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 했다고 했다. 그리고 그 회사의 한국지사 대표로 정년퇴직을 했다. 외국계회사여서 넉넉한 연봉을 받았고 퇴직금도 많아 퇴직 후의 생활을 걱정할 정도도 아니었다고 했다. 그렇지만 타고난 부지런함이 그를 가만히 놓아주지 않았다. 그가 몇 살에 그 회사를 퇴직했는지는 모른다. 다만 그의 말을 들으면 영어는 누구보다도 자신이 있었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뭔 가를 해야겠다고 궁리 끝에 영어학원을 차렸다는 것이다.그러나 세상일은 그의 뜻대로만 움직여주지 않았다. 결국 투자금액 중극히 일부만 회수하는 선에서 학원사업을 접었단다. 그는 그 일을 ‘더 욕심 부리지 않고 용단을 내려 접었다.’고 표현했다. 그러고 나니 그 때부터 하루하루의 생활이 답답하고 막막해지더라는 것. 그럴 때 그는 공무원 채용 시험에서 연령제한이 없어졌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했다. 그는 영어엔 자신이 있었기에 공무원 시험에 도전키로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식구들이 모두 ‘그게 말이 되는 일이냐’며 웃었다. 심지어 대입 수험생이던 아들은 “아빠가 그 시험에 붙는다는 건 내가 서울대학에 합격하는 것만큼이나 힘들 것.”이라고까지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아들에게 “내가 공무원 시험에 붙을 테니 너도 꼭 합격해라!”고 한 후 반년동안 혼신의 힘을 기울여 공부했다.그러나 도전 첫 해엔 실패하고 그 다음해 무려 100대 1이 넘는 경쟁을 뚫고 합격했다. 그 때 나이가 58세. 일반회사에서 정년퇴직한 50대 후반의 장년이었지만 그는 신입사원 시절처럼 일했다고 했다. 그는 요즘 제일 먼저 출근해 사무실 환기를 시키고 퇴근때는 제일 나중에 문단속까지 하며 늦깎이 공무원 생활을 하고 있다. 그는 “정년퇴직했다고 기죽지 말고 무언가 자신에게 맞는 일을 찾으려는 자세를항상 유지하라. 그러면 반드시 좋은 일을 찾을 것”이라고 했다. 이야기 마지막에 그는 “2년밖에 안 돼 공무원연금은 못 받지만 그동안 일한 퇴직금은 받는다.”며 그 돈으로 여행이라도 가야겠다며 웃었다.나도 직장에서 은퇴한 후 벌써 만10년이 지났다. 그리고 약8년 간 집사람과 함께 조그만 음식점을 경영했지만 지금은 그 일도 접었다. 요즘은 기회가 생기기만 하면 친구들과 어울려 낮부터 저녁때까지 어울려 밥 먹고 술 마시고 잡담하기가 일쑤다. 다만 나는 등산이나 달리기, 아침운동 등 남들보다는 조금 더 건강관리를 잘 한다며 위안을 삼는다. 그러나 수익활동은 차치하고라도 이렇다 할 문화생활이나 자기계발을 위한 여가선용은 안 하고 있다. 나뿐만 아니라 아직 건강한 60대 장년들이 할 일이 없어 무의미한 시간보내기로 하루하루를 사는 게 너무 안쓰럽다. 내 주위를 살펴보고 마음만 먹는다면 건강한 노인들이 할 일이 많을 것이다. 사회봉사활동부터 각종 취미활동까지 스스로 할 일을 찾아봐야겠다. 잦은 음주나 시간 죽이기 식의 무의미한 생활에서 벗어나야 여생이 윤택해 질 것이다. 임용2년 만에 정년을 맞는다는 그 사람을 생각하니 나는 일종의 부끄러움을 느꼈다.‘무언가를 찾아보자. 책이라도 더 읽자. 쓸 데 없는 시간낭비를 가능한 한줄이자’고 스스로 다짐해본다. 늦가을 햇살이 쏟아지는 창밖에는 겨울을 재촉하는 쌀쌀한 바람이 불고 있어 한결 더 쓸쓸하게 느껴진다. 허긴 가을은 원래 사람을 쓸쓸하게 만드는 계절이긴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