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내어준 팔베개를 하고, 남편의 체취를 담았다. 마치 도미노게임에서 한 개를 쓰러뜨리면 와르르 쓰러지듯, 한 번의 섹스로 경계가 허물어져 망설임 없이 남편에게 몸을 맡기고 있었다. 내가 베고 있는 팔과 잠든 남편의 숨소리, 뒤척일 때마다 내 엉덩이에 닿는 무릎과 허벅지. 그러다가 무게를 느낄 남편의 다리 하나가 내 몸 위에 걸쳐지고. 은근히 지금의 상황을 즐기면서 받아들였다. 실내온도기 아래 어둠속에서 시계가 보였다. 세시 이 십 구분. 모텔의 낮은 밤보다 깊다. 옆방에서 문소리가 들렸다. 도란도란 말소리, 티비소리, 물소리.
귀를 열어놓자 반경 이백 미터 안에 소리는 걸러지지 않고 채집되었다. 방음장치가 되어 지지 않았을까. 아니면 내 귀가 성능이 좋은 걸까. 갑자기 옆방의 움직임이 포착되면서 동영상을 보듯 장면이 그려졌다. 샤워를 끝낸 남자가 젖은 머리를 닦으면서 여자의 엉덩이를 슬쩍 친다. 당신 차례야.여자 는 남자의 볼에 가볍게 입술을 대고 욕실로 들어간다. 그사이 남자는 로션과 스킨을 발랐고, 면도기로 턱수염을 정리했다. 티비를 지나가는 시선으로 쳐다보며 <개판이야>하고 단물 빠진 껌을 버리듯 한소리를 했다. 남자는 침대에 앉아 스마트폰으로 여기저기 검색을 했고 여자가 나왔다. 두 사람의 관계가 처음이 아닌지 남자는 여자의 알몸 앞에서도 몇 번 더 검색을 하고 있었다. 여자가 리모컨을 찾아 티비를 껐다. 여자는 의자에 앉아 밑 화장을 했고 마무리로 미스트를 뿌렸다. 촉촉한 느낌에 만족한 여자는 남자를 덮치듯 침대에 몸을 던졌다. 남자는 이미 모든 준비를 끝내고 있었다. 남자의 화살이 날아가기 전에 여자의 과녁이 먼저 와서 10점의 중앙을 허락해주었다. 남자는 약간 움찔했지만 자세를 고쳐 잡으며 명궁수다운 포즈로 전세를 역전시키기에 급급했다. 옆방의 신음 소리는 내 몸에 힘이들어가도록 유도했다. 열기가 느껴졌고, 온 몸의 촉수가 가동되기 시작했다. 흔곤한 잠속에서 남편은 내게 내어준 팔이 저렸는지 뒤척이며 빼내었다. 나는 투정하며 품속으로 파고 들었다. 남편이 눈을 떴다.내 의도를 파악한 남편의 기세는 놀라웠다. 처음보다 더 강렬하게 더진취적으로 덤벼들었다. 종족번식을 위해 본능적으로 씨앗을 주입해야 한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당연히 이렇게 해야만 했다. 남편의 포효는 방안 가득 울려 퍼졌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지축이 흔들린다는 표현을 두고. 모텔 주차장에 빈자리 없는 번호판 가린 차들을 보며 구석구석, 방방마다 커플로 채워져 있을게다.그들이 분연히 일어서서 한 몸으로 얽힐 때, 진동은 가히 지축을 흔들리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남편은 고삐 풀린 망아지로 내 몸에서 헤집고 다녔다. 어느 곳은 잔뜩 호기심 어린 모습으로 시간을 할애하였다. 어느 곳은 건너 뛸 것처럼 지나치다가 다시 급선회하여 돌아와 서 머물다가 갔다. 남편이 다녀간 내몸은 오래 머물러 달라고 애걸하지 않았다. 고르게 배려해주는 남편의 마음을 알기에. 한 곳에 치중한다는 것은 마치 편식으로 고르지 못한 영양공급을 받는 것과 같은 이치이리라. 남편의 야수성을 인정해줬다. 그래야만 초원을 누비는 사자의 갈퀴와 이빨과 발톱과 힘과 스피드를 겸비하니까.-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