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으로 백암공께서 포위를 뚫고 들어갈 적에, 그의 종 억수를 돌아 보고 일러 말씀하시기를, “군사가 패하고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 내 장차 도적들의 손에 죽기를 결단할 것이니 너는 곧 가거라.”하시니, 억수가 울면서 말하기를, “주인과 종의 구분이 군신과 부자와도 같은데 종이 주인을 두고서 어디로 가겠습니까?”하고서 말을 채찍질하여 전진하여 싸우다가 함께 전사를 하였습니다. 다시 진영을 수습한 우리 군이 경주성으로 맹렬하게 진격함에 적은 능히 막지 못하고, 얼마 아니 되어 울산 서생포로 달아나게 되니, 이에 영천성과 경주성이 모두 회복이 되고, 군위, 의성, 안동에 주둔해 있던 적들이 풍세에 따라 도망치게 되니, 이로써 경상좌도는 온전하게 보전 될 수 있었습니다. 이는 호수공을 비롯한 영천의병들의 용맹과 희생으로 이루어진 일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호수공께서는 도적이 물러간 뒤에 시신을 찾았으나 찾지 못하여 화살로 초혼하고 돌아와서 영연을 집에다가 설치하였으나, 공께서는 시신을 거두지 못함을 슬퍼하시고, 또 원혼이 의지할 곳이 없음을 애석하게 여기시어, 원근의 친우에게 만사와 제문을 얻어 입던 의관과 함께 관 안에 넣어 장사를 지내게 되자, 뭇사람들이 이를 시총이라 이르니 자양면 성곡리 하절에 자리하고 있습니다.또한 시총 아래에는 작은 무덤이 있는데 ‘충노억수지묘’란 묘비가 있어 찾는 이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고 있습니다. 호수공께서는 이에 군사를 생원 조희익에게 예속시키고, 고향으로 돌아오시어 임천에 낙을 붙여 홀연히 스스로 세월을 보내셨습니다.서기 1596년 9월 28일에는 왜구가 다시 들어올까 염려하여, 멀고 가까운 동지와 더불어 팔공산에 모여 회맹을 하시니, 회맹록과 창수시가 남아 있으며, 이듬해 7월 21일에는 화왕산 회맹에도 참여하셨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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