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만으로 나무와 바람을 만난 적이 있다두 귀와 온몸의 촉각을 곤두세워헤아릴 수 없을 만큼바람이 지나는 길을 따라갔다 돌아오면어둠이 지친 몸을 오래도록 쓰다듬어주었다어둠에 기대어 죽은 듯 쓰러졌다오래 어지러운 잠을 잤다겨울이 지나고 내가 들은 풍경들이천천히 내 몸을 일으켜 세웠다눈을 떴다그때, 꽃들이 소리 없이 피어났다※ 시 감상시인은 내가 본 풍경이 아니라 ‘내가 들은 풍경’이라 쓴다. 눈으로 본 풍경은 의식이 이해 한 경치이지만 귀로들은 풍경은 몸이 감지한 서사이다. 바람이 지나는 길은 끝간 데 없으므로 쓰러질 듯 고단하고, 바람이 지나는 길의 서사는 무수하므로 오래 어지럽다. 어둠, 그 자애로운 모성의 손길은 시간을 곰삭여 풍경을 일깨우고 사물을 다독여 이야기를 만든다. 그때, 소리 없이 피어난 꽃들은 풍경들이 일으켜 세운 삶의 서사가 아니겠는가. 이제 당신은 안다. 꽃이 피고 질 때 우리는 왜 먼 곳으로부터 먼 곳으로 온몸이 아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