生從何處來(생종하처래) 태어날 때 어디서 왔으며 / 死向何處去(사향하처거) 죽어 어디로 가는가 / 生也一片浮雲起(생야일편부운기) 태어남은 한 조각 뜬구름 일어나는 것 / 死也一片浮雲滅(사야일편부운멸) 죽음이란 그 한 조각 뜬구름 사라지는 것 / 浮雲自體本無實(부운자체본무실) 뜬구름 본래 실체 없듯이 / 生死去來亦如然(생사거래역여연) 나고 죽고 가고 옴이 그와 같아라.몰아쉰 숨 뱉지 못하면 그만인 것이니 애달픈 일도 아니다. 이미 4,000m가 넘은 데다가 하루에 고도를 650m 올리자니 거의 기진맥진 상태다. 그저 발걸음을 옮길 뿐이다. 어쨌든 해 있을 때 도착했으니 다행이다. 숙소에 짐을 풀어놓고 50m 더 오르면 전망도 좋고 고산 적응에 도움이 된다 하여 샌들을 신은 채로 올랐다. 세찬 바람에 아랑곳하지 않고 작은 봉우리에 오른 보람은 바로 눈아래 펼쳐진 자연경관과 유럽 아가씨가 찍어준 사진 한 장이다. 내 평생 가장 높은 설산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은 혹독하다. 오한과 두통 그리고 불면이 기억의 전부다. 일행에게서 약을 한 알 받아먹으니 조금 나은 듯 했지만 기분 나쁜 감각들은 쉬이 없어지지 않는다. 이밤만 지나면 쏘롱나를 패스할 수 있다는 생각보다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황까지 왔으니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라는 자조적 생각으로 밤을 보낸 것 같다. 다행히 새벽 4시에 출발하기 위해 3시에 일어나 준비해야 하니 밤은 훨씬 짧다. 그렇게 버티기의 밤은 쏟아지는 듯한 새벽별을 보면서 끝났다.12.28(수) 하이캠프 - 쏘롱나(Thorongla(5,416m) - 묵티나트(Mu k t i n a t h3,800m)새벽4시, 묵께스가 방문을 두드린다. 그리고 고개를 들이밀고 하는 말, 바람이 너무 부니 30분쯤 기다려보고 출발하자 한다. 영하 30도란다. 30분 후 우리는 별빛 아래 깜깜한 길을 나섰다. 휴대폰 후렛쉬 불빛에 의지해서 걸으니 좁은 길만 보여 오히려 다행이다. 두터운 장갑을 낀 손끝과 발가락 마디마디가 에이고, 목워머로 다 가려지지 못한 안면부위와 코끝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시리다. 묵직한 새벽공기 탓에 기압은 더욱 낮아져 한 걸음씩 걸을때마다 숨이 차 금방 주저앉고 싶다. 억지로 한 걸음씩 옮겨놓는다. 내가 진 작은 배낭마저 받아 앞으로 맨 나의 포터묵께스가 내 곁을 떠나지 않는다. 책임감 있는 사내다 싶은 생각이 든다. 먼동이 트더니 햇살이 눈부시다. 일출과 함께 바람의 강도가 점점 높아진다. 이제 저 멀리 쏘롱나의 수많은 깃발들이 펄럭이고 있는 것이 보인다. 그러나 바로 눈앞에 보이는 그 곳은 나에게 몇 시간을 요구했다. 9시 전에 넘어야 할 언덕을 11시나 돼서야 도착하니 바람이 세차게 불어 손발 끝은 시리고 모자로 가린 귀조차 먹먹하게 만든다. 그렇게 해발 5,416m의 쏘롱나는 힘겨워하는 나를 마중해 주었다. 스틱을 손에 든 채 손을 모은다. 부처님, 히말라야 산신이시여, 제가 이제 5천미터 히말라야 언덕에 서서 발원하옵나니 5천만 우리 국민이 작금의 이 난국을 슬기롭게 잘 극복할 줄 아는 지혜를 갖게 하시고 각자가 ~답게 살아갈 줄 아는 마음 건강한 백성의 나라가 되게 하소서. 하루빨리 남북통일을 이루어 세계의 으뜸으로 설수 있도록 가피를 내리소서. 애초에 비록 작은 모임, 각자의 걸음이지만 이 어지러운 시국을 위해서 기도하러 가자는 마음으로 출발한 터다. 그래서 합장한 손으로 솟구치는 오열을 숨기며 한참을 히말라야에 몸과 마음을 맡긴다. 휴대폰으로 원장님이 남북통일을 기원하며 청색, 적색의 손수건을 달고 기도하는 장면을 찍는데 배터리 표시가 깜박거리다가 꺼져버린다. 예비 배터리를 꺼낼 엄두조차 나지 않아 나의 기념사진을 포기하고 만다. 그리고 이제 하산이다. 언덕을 넘어서니 까마득하니 내리막길이 펼쳐져 있다. 3,800m의 묵티나트까지 내려가는 길은 또 다른 시련이다. 그러나 거대하면서도 어딘가 낯이 익은 무스탕 지역의 풍광을 내려다보며 걷는 길이라 지루하지만은 않다. 앞질러 가던 모든 트래커들이 자취를 감추고 걸음이 더딘 나의 일행 셋만 천천히 걷고 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