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개인 뒤 팔공산은 푸른 거울과 같고 / 깨끗한 가을빛 집 가운데 들어오네 / 온 연못에 비친 그림자 보기만 하여도 좋으니 / 언덕 가득한 티끌 허공에 씻어버리세 / 호연한 기운 아득히 머금은 정자 밖 절벽 / 시정(詩情)이 때때로 일어나고 대숲 바람소리 들리네 / 눈앞의 좋은 경치 모두 거두어 들였는데 / 건곤(乾坤)의 조화가 훌륭함을 누가 알겠는가. 이 시는 조극승선생이 팔공산 신녕 환벽정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것이다.조극승(曺克承1803~1877)의 본관은 창녕. 자는 경휴(景休), 호는 귀애(龜厓)이며, 임란때 충효로 순절한 임계 조경온선생의 후예로 고조부는 숙종때 이 지방의 문사며 교육자였던 현고서당의 창건자인 북계 조용석 이며, 증조는 묵헌공 조명직, 조부는 조학경이다. 아버지는 조경섭이며, 어머니는 달성 서씨로 서덕순의 딸이다. 부인은 숙부인 인동 장씨로 통덕랑 장민섭의 따님이며, 슬하에 1남1녀를 두었는데 통덕랑 조병수와 사위 오천인 정치구이다. 그는 화산면 귀호동에서 4형제(극승:克承,우승:右承,규승:逵承,선승:善承) 중 맏아들로 태어났고, 어릴적부터 순후한 성품에 용모가 빼어났고, 부모에겐 효성을어른에겐 공경해야 하는 사람의 도리를 다 하였고, 1831년(순조 31) 28세에 식년문과에 등제하여 승문원부정자가 되었고, 1840년(헌종 6) 예조좌랑·종부시주부·사헌부감찰을 역임하고, 1845년 성균관전적, 1849년 사간원정언으로 문신선전관을 겸직하였으며, 조정에서 여러 차례 주목의 수령으로 천거하였으나 어버이의 병환을 이유로 임지로 가지 않았다. 철종이 등극한 뒤에도 언관으로서 신임을 받았으나 고향에 내려와 병조참판을 역임한 정재 류치명의 문인으로 힘써 공부하여 학사에서 강론하며 깊은 도리를 깨쳤다. 퇴계 이황-서애류성룡·학봉 김성일-경당 장흥효-갈암 이현일-밀암 이재-대산 이상정-정재 류치명으로 이어지는 영남학파의 계보를 이었다. 정재 류선생의 문하에는 한주 이진상, 류종교, 긍암 이돈우, 서산 김흥락 등 당시대를 이끈 학자들이 귀애선생과 동문들이다.그가 정언 벼슬을 사직하며 올린 소에는 나라의 치란이 임금에게 있으며, 참 인재를 얻어 적소에 임명해야함을 역설하였다. 안으로는 세도정치와 삼정의 문란이 어느 정도 잡혀갔으나 밖으로는 서양세력이 나날이 커져 조선으로 뻗쳐오던 1867년 조정에서 고을마다 강석을 열어 위정척사를 부르짖도록 하자, 사서삼경의 강석을 열어 유풍(儒風)을 진작시키는데 앞장섰다. 위정척사는 서양세력에 대응하는 사상으로 조선의 성리학을 주체로 하고 서양의 사상과 종교를 배척해야 한다는 유학자들의 정신과 사상이었다. 귀애선생은 1875년 을해년에 수차 국가시책의 폐단을 없애는 상소를 올려 국정을 바로잡아 공조참의에 이르렀다. 말년에는 고향에서 지내며 선비들을 가르쳤는데, 임금이 여러 차례 벼슬을 내렸으나 나아가지 않고 집 근처(현재 귀애정 터)에 작은 건물을 짓고 학문 연구에 정열을 쏟아 후학 양성에 매진하였다.시를 읊고 선비들과 교류하며 만년을 보내다 향리지학을 마음에 두고 늘 옛 성현의 궁행실천의 삶을 살다가 7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저서로는 향촌에서 《대학》을 강론할 목적으로 집필한 「대학강록(大學講錄)」과 『귀애집』이 있으며, 긍암 이돈우선생의 행장이 있다.화남면 귀호리에 조극승을 추앙하기 위해 동생 조규승이 건립한 귀애정(龜厓亭 귀애는 ‘거북이가 있던 언덕’이라는 뜻)과 문필봉이 보이는 곳에 터를 잡은 귀애정은 조선 철종 때 형인 조극승과 아우인 규승이 나란히 문과에 급제하여 각각 공조참의와 찰방 벼슬을 역임했고, 5세손인 일산공때는 학문이 천석이요, 재물이 천석이요, 이웃에 적선함이 천석이라 삼천석 집이라 불렸다. 사당과 200여년 전에 건축된 옛 생가와 수많은 유물(옥관자, 옥갓끈, 서간문, 일산, 벼루, 교지,고서적, 목제기)등이 보존되어 있어 창녕 조씨 문중과 지역민이 선생의 학덕과 사상을 흠모하여 전통양반가문의 맥을 잇고자 노력하고 있다.#귀애정, 귀애집: 龜(구·귀·균)는 구애 귀애 등으로 혼용되고 있으나 인명(人名) 지명(地名)일 때는 구로 읽는 것이 원칙이나 문중에서 누대로 사용하는 것이기에 문중에서 사용하는 대로 적시 함(필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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