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연못둑에 빽빽하게 둘러선 나무가 森森環立小塘堤 /찬 하늘을 품어 물가에 학이 깃들이네容得寒天水鶴棲. / 좋은 정원 잘 생긴 돌을 구하지 않았는데不向名園求匠石/ 마침내 곧은 가지가 구름과 가지런하게 된것을 보네終看直幹與雲齊. 이 시는 청도에서 태어나 민족교육의 선구자이며 나라의 운명은 오직 교육사활에 달려 있다고 말하는 박시묵선생이 쓴 노송(老松)이라는 한시다.자신을 투영하는 소나무와, 은둔 생활 속에서 학문을 닦으며 바른삶을 살아가려는 학처럼 고고하며, 권세나 명리를 바라지 않으며 자신의 학문과 후진 양성이 발전적이길 기원하는 시이다.박시묵(朴時默1814~1879)선생의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휘도(輝道), 호는 운강(雲岡) 조부는 박장덕이다. 부친은 박정주, 모친은 김종악의 딸 월성 김씨이며, 사헌부 지평 이병형의 딸 인 경산이씨와의 사이에 4남 2녀를 두었다. 26세에 퇴계학통의 정맥을 이은 정재 류치명(柳致明)선생의 문인으로, 응와 이원조· 유후조·최효술·유주목·이돈우·이진상·허전 등과 교유하며 학문강학에 힘을 쏟았다「. 소학」을 중시하여 만년까지 수시로 읽고 음미하며 스스로 “나는 소학 중의 사람이다.”라고 자처했던 운강선생은 1856년(철종7) 청도 금천면 신지리에 있는 조상의 옛터에 ‘화(和)는 천하에 통용되는 도(道)’라는 의미의 만화정(萬和亭)을 짓고 운문산 아래에 버려진절 대비정사를 학당으로 개조하여 학문과 강학에 힘썼으며, 자주적인 근대화 교육의 가치를 내걸고 사재를 털어 전액 장학제도에 의해 재단을 만들어 후진 양성에 근간이 되는 강학소와 장학제도의 운영매뉴얼이 있는 ‘강학소절목’을 만들어 학생들에게학비와 숙식료를 받지 않고 오직 공부에만 몰두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수업 전담 방식 또한 획기적으로 각 분야의 전문가를 강사로 초빙해 수업을 실시했으며, 자계서원, 남계서원, 명계서원, 선암서원 등에서 우수한 학생들을 추천 받아 선발하였다.만회정이 있는 운강고택은 임진왜란에 밀양박씨의 소요당 손자와 증손자들로 조직된 형제, 숙질, 종반간의 14의사(義士)가 구국의 결사대로 창의(倡義)하는 맹서를 만화정 앞뜰에서 했다고 한다. 조상의 의열이 깃든 곳으로 6·25전쟁 때는 이승만 대통령이 잠시 머물렀던 곳이기도 하다. 1866년(고종3) 병인양요 때 임금의 부름을 받아 청도군의 소모관(召募官)으로 맹활약했으며, 남겨진 저서로는 <운창일록(雲牕日錄)> <운강만록>과, 아들이 펴낸 문집인 <운강집>3책이 있다. <운창일록>은 조선말 격변하는 사회변동과 병인양요 당시 사회 사정의 전반을 상술한 일기로 현재도 역사적, 교육적으로 중요한 사료로 인용된다.운강선생은 아들에게 모든 일에는 책임이 따르니 법도에 따라 공부하고 처신하라는 당부를 남기며 62세로 세상을 떠난다. 통훈대부와 좌승지에 증직되었다. 운강선생의 아들 진계 박재형(1838~1900) 또한 부친의 가학을 전승하여 류치명, 허전선생의 제자로 학문이란 ‘경(敬)’자에 달렸다고 말하고 한 단계 더 발전된 자주적 민족근대화교육을 과감히 시행하여, 고종 9년(1872)에 강학소를 설치하고 전통서원교육을 개혁하는데 일생을 바쳤다. 만화정에서 시작된 전통을 계승한 근대화교육을 밑거름으로 선암서원의 전답을 재원으로 하여 신명학교 (현재 신지리 금천초등학교의 전신)를 설립, 현대화교육으로 이어졌다. 주요저서에 <해동속소학>, <해동속고경중마방>, <진계문집> 등 많은 38권의 저서를 남겼으며 ‘해동속소학’ 6권은 남송 때 주자가 편찬한 아동교육교재인 <소학>을 이어 순수한 우리나라선현들의 언행을 발췌하여 모은책으로 인성교육의 표상이 될 수 있는 대표적인 내용으로 구성되어 아동교육지침서로 전국에 배표된 필독서였다. 하지만 아쉽게도 지금은 대구향교에서만 교육하고 있다. 나라의 운명은 오직 교육에 있다. 교육만이 나라를 지킬 수 있는 힘이 되는 길임을 몸소 실천한 박시묵선생 부자의 일생은 부귀영화도 벼슬도 사양하고 의기를 고집하면서 나라의 백년대계를 위해 헌신하였던 이들의 향기와 풍모만큼은 자못 당당하다 하겠다. 시간을 초월해 우리 곁에 운강선생의 겸손과 미덕을 갖춘 인품과 아들 진계선생의 우뚝한 선비정신이 살아 숨쉼을 느끼니 고개가 숙연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