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긋 불긋 당신 만나는 날이 환한 가을이네 / 용산 넘어와 툇마루에 걸터 앉은 바람에게 / 살면서 몇 번이나 물들었느냐 묻지마라 / 옥에도 티가 있다는데/추울 때 더 따뜻한 당신 너무 눈부셔 / 마주선 박태기 나무도 눈시울이 벌겋다....서하 시인이 지은 시 추산정(秋山亭)의 한 부분이다. 추산정은 서자이의 둘째아들 서옥(徐沃)선생을 기려 유림과 후손들이 지은 정자이다.서자이(徐自爾 ?~1629)선생의 본관은 이천이며 자는 원지(遠之), 호는 심계(心溪)이다. 이천서씨 부령공파 시조 서신일의 17세손으로, 고조는 부사 서극인(徐克仁)이며, 증조는 참군 서건손(徐建孫), 조부는 부사맹서승(徐繩)이다. 부친은 영천의 입향조인 서백령(徐百齡)으로, 16세기 후반 조산대부 영천교수 재임시에 유풍을 진작시켜 이로 인해 이 지역에 머물러 살게 되었다. 모친은 영천 이씨부장 이부(李桴)의 따님이다. 부인은 오천 정씨로 사직 정재(鄭宰)의 따님이며, 슬하에 3남 1녀를 두었다. 아들은 판관 서호(徐浩), 예빈시부정 서옥(徐沃), 서양(徐瀁)이며, 사위는 신천인 강경후이다. 또한 이천 서씨로 외교적으로 탁월한 전략가이며 고려의 외교가로 거란(契丹)의 내침 때 서경(西京) 이북을 할양하고 강화하자는 안에 반대하여 자진해서 국서를 가지고 적장인 소손녕과 외교적인 담판을 벌여 거란 군을 철수시키고 , 여진을 몰아내고 국토를 찾아 회복한 서희 장군의 15세손이다.서자이는 문인으로 학문에 정진하던 중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사활을 걸고 창의하여 영천성 복성에 앞장서 큰 성과를 거두었으며, 이어 경주성 전투에서도 그 용맹성으로 병사 박진이 이를 장하게 여겼으며 내자시직장의 벼슬을 역임했다.서자이의 둘째아 들 서옥(徐沃1600-1662)선생의 자는 계내(啓乃뒤에 관부:灌夫로 고침), 호는(號)추암(秋庵), 부인은 정부인(貞夫人) 순흥안씨로 안경남의 따님이며 슬하에 3남 3녀를 두었다. 아들은 서우적(徐友積)과 통덕랑 서후적(徐後積), 훈도 서경적(徐景積)이며, 사위는 홍경·김이화·박수천이다. 영천 아천리(현재의 영천시 화북면 공덕리)에서 태어나 어린나이에 지산 조호익의 문인인 대암 이희백(李喜白)의 문하에서 수학하고 서사원의 문하에 종유하였다. 14살 때 벌써 임고서원에서 여러 선비들과 ‘대학’에 대한 강론을 펼 정도로 학문적 조숙함을 보여주어 당시 주변인들로부터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한다.1621년(광해군 13) 문과에 급제하여 당당히 종6품 선교랑 예빈부정(禮賓副正)을 제수 받았으며, 인조왕때 그의 지조와 인품을 인정받아 통정으로 예빈시정의란 벼슬을 내렸으나 나가지 않았다, 이후 청렴함으로 관직을 잘 수행하여 1654년(효종 5년 갑오)에 그에게 부호군을 주어 뒤에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겸 성균관사에 올라 훌륭한 족적을 남겼다. 영천군의 서쪽 추산(현재의 영천시 청통면 신덕리)으로 이주하여 임천에서 소요하며 만년을 지냈다. 1662년 (현종 3) 6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묘소에 우천재(牛川齋)와 경상북도 영천시 청통면 신덕리에 추산정(秋山亭)이 남아 있다.조선시대 미증유 대란인 임란때 아버지인 서자이는 임진왜란에서 큰 공을 세웠고, 쿠테타에는 성공했지만 국가 보위에는 실패했던 무능한 군주 인조때인 1627(인조5) 정묘호란과 1636년(인조14)병자호란의 연이은 국가 위기 상황에서 국방준비에 소홀했던 호란에서 아들인 서옥은 병자호란시에 창의를 하였으나 삼전도에서 인조가 청에게 굴복하였다는 소식을 접하고 가슴을 치며 분한마음을 삭이며 더 이상 나아가지 못했다. 국가의 위기 상황에 대처하는 현시국을 보면 과연 위정자들이 얼마나 진정으로 국가와 국민을 위해 희생할 것인지 서자이 , 서옥 두 부자의 충정에서 그들의 위국 헌신하는 모습이 어느 때 보다 가슴 가까이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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