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의 한쪽 끝까지 피난길에 올랐던 것이 부끄럽고 욕됨을 그 누가 씻어주랴? 남들은 모두 무기를 버리고 도망치는데, 그대 홀로 칼을 뽑아 적을 막았도다. 자기 한 몸을 돌볼 겨를 없이 하늘을 우러러 맹세하고 죽음으로써 나라에 충성을 다하려 했도다.…”
동계 이운룡 선생의 충절을 높이 평가하여, 그에게 선조임금이 내린 녹훈교서(錄勳敎書)의 내용이다. 임진왜란 당시 충무공 이순신장군의 최측근으로 조선 수군의 위세를 떨쳤던 이운룡(李雲龍,1562~1610)장군의 자는 경현(景見), 호는 동계(東溪), 관향은 재령(載寧)으로, 증조부는 제용감정 이영원이며, 조부는 삼척부사진병마사겸수군첨절제사 이우이며, 부친은 남해현령을 지낸 중직대부 이몽상으로 모친은 정부인 밀양 변씨로 청도 매전면 온막리에서 태어났다. 부인은 증 정부인 광주이씨이며 아들은 현감 이암이다. 천성이 침착하고 재주가 뛰어났던 그는 어린 나이에 부친을 잃고 편모슬하에서 자라며 한강 정구선생의 문하에 들어가 학업과 무예에 열중하여, 무과에 급제하였다.그 당시 병조판서였던 서애 유성룡선생의 천거로 무반 청요직인 선전관에 임용되었다, 1589년에 옥포만호에 임명되었다가,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 왜의 수군이 옥포(玉浦)로 쳐들어 오자 경상도 수군절도사 원균은 배를 버리고 도망하려 했고 만호였던 그는 원균에게 전라 수군과 힘을 합쳐 왜적을 쳐부수어야지 도망은 직분과 국가에 대한 배신행위라고 강력히 항언하였고, 그로인해 이순신장군에 구원요청을 하여 경상·전라 양군이 연합하여 옥포에서 대승을 거두게 되는데, 옥포해전은 경상·전라 수군이 연합하여 왜적함대를 무찌른 해전이며 임진왜란이 일어난 후 해상에서 첫 승리를 거둔 해전으로 당시 옥포만호로 있던 이운룡선생의 간언과 지략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일로서 적군의 내양(內洋) 진출을 막아 조선 수군이 남해의 제해권을 장악하는 데에 큰 공을 세울 수 있었다. 그로인해 웅진현감을 거쳐, 통정대부로 승진하였으며, 1596년 이순신의 천거로 경상좌수사에 승진되고 전쟁이 끝날 때까지 경상도의 수군을 주도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1597년 정유재란이 일어나 이 충무공은 옥중(獄中)에 있고 당시 삼도수군통제사 원 균이 칠천. 고성에서 패하고 죽자, 우리수군은 전멸되었고 이운룡장군은 육지로 편입되어 권응수장군과 더불어 영천 창암(倉巖)에서 왜군과 싸워 창암대첩의 승리를 거두었고, 청도 의병과도 연합하여 대승하였다. 충무공이 삼도수군통제사로 재임되자 장군은 경상좌수사에 복직하여 수군 재건에 진력하여 수군을 지켰으나, 1602년 어머니의 병환이 위급함을 듣고 단기(單騎)로 달려가 병석의 어머니를 간호하였다. 당시의 삼도수군통제사 이던 유형이 장군이 무단으로 진(鎭)을 비웠다고 탄핵하여 서생포에 장유(杖流)되고 그 후 어머니는 끝내 회복치 못하고 돌아 가셨다. 그후 복직되어 1604년 혁혁한 전공을 세워 선무공신 3등훈 에 책록 되고 식성군에 봉해졌으며 교지. 영정. 전답. 노비. 말 등을 하사받았다. 충무공 이순신으로 부터 가장 우수한 부장으로 칭찬 받던 그는 왜군을 판옥선의 거대한 선체로 격파 했으며 그 밖에도 화전(火箭). 화시(火矢)도 효과가 컸다고 왕에게 진언하였다. 그로 인해 벼슬은 도총부부총관 포도대장 겸 화기제조 비변사당상이 더해졌으며, 임금이 그의 충심과 노고를 치하하여 1605년에는 “사람됨이 본래부터 무예에 뛰어나고 변방의 일을 상세히 알고 있으며, 통제사로서의 자질이 있다 하여 삼도수군통제사의 벼슬에 임용하였다. 삼도수군통제사로 부임한 1605년 7월 30일 부터 영내에서 일어났던 일들과 임진왜란 때 활약한 장군들이 수 없이 등장하여 갖가지 일들을 기록한 거영일기(居營日記)를 남겨 임란의 역사적 기록물로 연구되고 있다, 이후 함경남병사로 체직(遞職)되었다가, 1610년 고향으로 돌아와, 그 해 세상을 하직하였다.충무공 이순신은 “나를 대신할 사람은 오직 이운룡이 있을 뿐이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전하듯” 이순신의 사람으로 그의 신임은 대단했다. 동계 이운룡 선생은 봉 식성군 증 자헌대부. 병조판서 겸 지의금부사를 받았으며, 48년 짧은 인생이었지만 수군을 통제하는 장군으로 의기로운 충정으로 파란만장한생을 살다 가셨다. 저서로는〈 식성군실기〉(2권)가 있다. 청도의 금호서원과 의령 기강서원에 제향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