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많은 세상이다. 어른, 아이할 것 없이 말이 너무 많다. T V, 신문, 잡지 등에는 온통 말의 성찬이가득하다. 홈-페이지, 이-메일 등에도 말이 넘쳐난다. 이 러한 각종 매체들을 통해 쏟아내는 말의 홍수는 사람들의 정신을 혼미하게 한다.요즈음 사람들은 말을 너무 잘한다. 어른들이 청소년들과 말다툼해서 이긴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지난날에는 어른이라는 권위로 그나마 그들의 모순된 생각이나 잘못을 시인 받았지만 지금은 희망사항 일뿐이다.어른들끼리도 그렇다. 자기대로의 논리와 현란한 수사, 유사한 사례를 들어 자신의 주장을 빈틈없이 펼친다. 나는 이렇게 말 잘하는 사람을 볼 때 감탄하기도 하지만, 그가 한 말 중에 과연 쓸 만한 말이 얼마나 될까 생각해 본다.마음속에 옳지 않은 생각이 있는 사람일수록 논리는 더욱 견고하고 수사는 화려하다. 그래야만 상대방을 설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말로 얘기하더라도 마음이 옳지 못하면 그가 하는 말에는 더러운 냄새가 묻어난다. 그런 사람은 차라리 침묵하는 편이 낫다.나 는 하 루에도 공 ·사간에 많은 사람을 만난다. 그러나 참으로 정신적 청량감을 주는 대화를 나누는사람은 드물다. 그들 대부분이 겉으로 드러나는 화려한 말 뒤에는 이익을 위한 복안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침묵이 그리운 시대이다. 내가 산을 자주 찾는 까닭은 철따라 변하는 산색의 아름다움도 있지만 산의침묵이 좋기 때문이다.고려 말 나옹 선사는 시(詩)를 통해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하네.’ -후략- 라고 읊었다.인도의 간디도 월요일 하루는 어떤 일이 있어도 침묵을 했다 한다. 그는 문밖에서 아무리 급한 일로 야단을 쳐도 절대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우리가 말을 시작할 때는 평화롭게 생각하고 있지 않을 때이다. 가슴속의 아픔과 고독, 그리고 기쁨 등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때 떠들기 시작한다. 그럴 경우에 말이란 기분전환도 되고 소일거리도 된다. 그러나 우리가 그렇게 떠들고 있을 때 깊은 생각은 거의 사라져 버린다. 왜냐하면 깊은 생각은 떠들고 소리치는 곳에서는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또한 사람들은 스스로 깨닫지 못한 진리를 깊은 인식 없이 드러내 떠들기도 하며, 반면에 그들 속에 진리를 지녔으면서도 침묵하는 사람도 있다. 참된 말이란 이와 같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침묵으로 머무는 것이다.나는 침묵을 예찬한다. 우리가 말하는 것은 인간으로부터 배웠지만 침묵은 신으로부터 배웠기 때문이다. 또한 침묵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존재양식이며 최고의 언어이다. 분명히 침묵은 자신의 내면을 찾아가는 길이며, 깊은 명상에 이르게 하여 지혜로운 삶을 살게 한다.어느 사회학자의 말에 대한 조사도 흥미롭다. 우 리가 업무를 위한 말을 제외한 일상적인 말 중에서 하지 않아도 될 말, 남을 비방하는 말, 감정이 과잉노출 된 말 이 반 이상이나 된다고 한 다. 이 것은 우 리가 쓰는 말 중에서 반을 버려도 좋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나는 버리고 남은 빈자리에 침묵이나 서로의 마음을 따뜻하게 감싸주는 말로 채워 넣었으면 한다.우리가 집을 지어 공간을 만드는 것은 추위와 비바람과 안전을 위한 것도 있지만, 외부의 소리를 차단하는 구실도 한다. 텅 빈방에 침묵하며 잠시라도 앉아 있어보자. 존재하는 온갖 것들은 다른 모습으로 내게 다가올 것이다.창 너머로 봄꽃들이 곱다. 그 꽃들은 아무 것도 말하지 않아도 색깔과 모양, 사랑스런 향기로 벌, 나비들을 부르고 새봄의 기쁨과 생명의 신비로움을 전해 준다.참으로 말이 많은 세상이다. 말은 대상을 향해 하지만 침묵은 자기 자신과의 대화이다. 진정으로 침묵하는 사람이 그리운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