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휴대폰에서 ‘독립운동가의 재산을 찾아줍시다’ 라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사)한가람역사연구소 이덕일 소장의 스토리펀딩에 올라 있는 제7화 ‘군사에 쓸 돈이지 자식 살릴 돈 아니다.’ 라는 제하의 글을 보게 되었다.김병기 대한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위원장의 글인데 글가운데 항일의병전쟁 지도가 있다.그런데 그 지도에는 당연히 있을 줄 알았던 영천의 “산남의진”이라는 이름이나 정환직, 정용기, 최세윤 대장의 이름도 모두 거명되지 않았다.“산남의진”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을사늑약 후 의병의 기치를 세우고 준비하는 기간이 1년 남짓, 그리고 출병 후 3년여 동안 항일 투쟁을 계속하였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고 1대 대장 정용기 대장을 비롯한 제장들은 전사하였다. 또한 2대 대장 정환직, 3대 대장 최세윤 선생을 비롯한 많은 의사들이 붙잡혀 참살을 당하였다. 다행히 목숨을 건진 이들은 재기를 꿈꾸었지만 이미 나라는 일본에 의해 그 이름이 사라져버렸다. 그래서 그들은 만주 등의 해외 독립군으로 떠나야 했고, 남은 참전가족들은 친일 세력과 일본의 핍박을 피해 야반도주하여 숨어 살아야했다. 3 6년간 이들의 핍 박이나 고통은 상상조차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니 해방이 되었다 한 들 누가 이들의 공로를 널리 알릴 수 있었겠는가.그러나 1923년 일제 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지역민들이 그들의 희생정신을 기리고자 충효재를 지었고, 마을 이름도 검단동에서 충효동으로 바꾸었을 정도였으니 정환직 선생의 휘하 “산남의진”의 활약상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현재까지 우리 대한민국이 인정하고 훈장을 추서한 의병장만 해도 100여 분이나되고, 이달의 독립운동가와 이달의 호국인물 등으로 선정된 분들도 많다. “산남의진”은 역사적인 의미가 대단히 큰 항일운동이었으나 그 중심지인 영천, 청송, 포항 지역의 시군민조차 ‘산남의진’이라는 이름이 생소하게 들리거나 아예 모르는 사람이 다수이니 산남의진 기념사업회나 선양회의 역할이 무색할 따름이다.역사적인 사건은 일반인들이 자세히 모를 수 있다. 그러나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가전설이 되고, 그 전설은 학자들이 연구하고 평가하고 고증하여 세 미나 등을 통하여 세상에 알려야 함에도 산남의진의 의병활동은 지금도 널리 알려지지 못하고 있다.그간 대한민국 건국 이래 친일세력이 국가운영의 중심이 됨으로서 친일 잔재의 청산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말이 있어 왔다. 그러나 건국 70년이 훌쩍 지난 지금은 세상이 많이 변했다. 전반적으로 개인주의적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지만, 개인의 주권을 지키기 위한 국가나 사회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도 함께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에 발맞춰 항일의병의 활약상을 널리 선양해야 할 것이다. 특히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바친 ‘산남의진’의 희생적인 항일 의병활동을 지역은 물론 나라 전체에 알릴 수 있도록 배전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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