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후 1946년 2월 15일 대한광복회에서 국내 최초로 항일의병사에서 최대의 격전지로 기록된 단오 선생의 순국 장소인 경북 포항시 북구 죽장면 입암리에서 위령제를 거행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나 그 후의 기록은 찾을수 없고, 2009년 8월 12일에 이르러서 영천의 지사들이 모여 사단법인 산남의진기념사업회(회장 정연통)를 설립하고 비영리법인으로 인가받아 그 해 10월 19일 산남의진선열합동추모제가 영천청소년수련관에서 열렸다.그리고 2013년 2월 18일에 산남의병 제4차 결집지인 거동사가 국가보훈처로부터 현충시설로 지정되었다. 당시의 주지 혜신 스님의 원력으로 그 해 4월 28일 제1회 산남의진순국선열위령제를 거행하였고, 산남의진 기념사업회(회장 이명식)를 재창립하였다.사업회는 해마다 정환직·용기 부자 묘소 다례제와 추모제를 끊이지 않고 거행하기로 결의하고 지금까지 계속 해오고 있으며, 아울러 ‘역사가 흐르는 길’ 답사를 통하여 충효정신을 선양하고 있다. 그리고 2015년 10월 3일에는 경상북도와 영천시의 지원으로 “제3회 산남의진 역사가 흐르는 길” 순례 행사뿐만 아니라 제1회 백일장·사생대회를 개최하여 일반인은 물론 어린이, 청소년들에게도 산남의진이라는 이름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정환직 선생과 정용기 선생에게 각각 건국훈장 대통령장(1963년)과 독립장(1962년)이 추서되는 등 100여 산남의진 의병에게 건국훈장이나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다.그리고 정환직, 용기 부자는 2016년 11월 이달의 호국인물로 선정되어 전쟁기념관에서 기념행사를 가졌다.필자가 놀란 것은 대한민국 수도인 서울 용산에 위치한 전쟁기념관에서 열린 행사인데도 관계기관과 유가족인 손자 내외분, 영천시 담당과장과 주무관, 기념사업회 임원 2인 등 수십여 명만이 모여 형식적으로 치러질뿐 일반시민은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우리나라 대한민국은 아직 정치적 안정을 갖추지 못한 건국 초기이고 여전히 휴전국가이다.미국, 중국, 일본 등 세계열강의 각 축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사드문제로 국론이 분열되어 있는 상태다.북한은 수시로 미사일을 쏘아대며 위협하고 있는 현실을 국민 모두가 알고 있다. 정말 나라가 누란의 위기에 처하는 상황이 오면 누가 산남의병과 같은 충절의 의기를 보일 것인지.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결과가 그 집안의 몰락으로 이어지고, 국가가 충절로 목숨을 바친 사람들을 형식적으로 대한다면 누가 나라를 위하여 나서겠는가.이런 현실을 바라보니 산남의진추모사업회에 관여하는 한 사람으로서 가슴이 답답하다.6월1일을 의병의 날로 정하여 기념식을 갖는 것도 좋다. 그러나 유족들과 관계기관만의 잔치가 되어서는 안된다.대국민 홍보를 통하여 K팝 공연보다 더 뜨거운 일반인들의 관심을 유도해야 한다.그리고 그보다 선행돼야 할 일은 더 늦기 전에 이름조차 묻혀버린 무명 의병 용사들을 찾아 정비하고 유족들을 보살피는 일이다.충효재와 정환직·용기 부자(父子)대장의 묘소, 그리고 얼마 전에 알려진 중군장 이 석(일명 세기) 선생의 묘소를 정비하여 기념관을 짓고 교육의 장으로 삼는 일은 국가보훈처와 영천시가 꼭 해야 할 일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