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29일 영천항일운동선양 ,사업회가 화북면 오동공원에 조재복 애국지사의 추모비를 세우고 제막식을 거행했다. 조재복 지사는 화북면 오산리 출신으로 22세 때인 기미년(1919년) 4월 12일, 영천 장날에 홍종현, 조병진, 조주생 등과 함께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운동을 주도하다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모진 고문과 태형 90대를 맞고 석방됐으나 그 후유증으로 평생을 불구의 몸으로 어렵게 사시다가 1952년 56세에 별세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2년 제93주년 3.1절을 맞아서야 그를 독립유공자로 선정하고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 지역 신문의 기사 내용이다. 이 오동공원에는 인근 지역 출신으로 산남의진에서 활약한 황보근(애족장), 영천의 3.1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조병진(대통령표창)·홍종현(애족장), 구화회 및 적우동맹에서 학생 항일운동을 주도한 황보선(애족장), 일본에서 동포들에게 민족의식 고취 활동을 전개한 조병화(애족장), 중국에서 조선의용대와 한국광복군 간부로서 활약한 이진영(독립장) 등 애국지사의 모비가 세워져 있다. 모두 영천항일운동선양사업회가 세운 것으로 알고 있다. 이렇게 항일운동선양사업회가 항일운동의 지사를 발굴하고 추모비를 세우는 뜻은 그 분들의 나라사랑 정신을 선양하려는 것일 게다.     그런데 필자의 좁은 소견으로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역사적 현장에 인근의 자천초등학교나 산동중학교, 영천전자고등학교 학생들조차 동원(?)되지 못하고 기관단체장, 선양사업회 회원, 창녕조씨 대종회 종원, 지역민 등 어른들만 모인 행사로 그쳤다는 점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과거처럼 여느 행사에 학생들을 동원하자라는 발상은 매우 불순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불행히도 우리나라는 여전히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로 미국, 중국, 일본 등 세계 열강들의 각축장이다. 국민은 경제적 풍요로움에 젖어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있고 정부는 이러한 현실을 애써 외면하는 듯하다. 필자를 포함하여 1950년생 이후의 국민들은 나라 잃은 설움, 전쟁의 고통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들이다. 그나마 오십을 넘긴 이들은 어릴 적 가난의 아픔은 겪어본 사람이 많아 거안위사(居安危思)로 나라 걱정을 더러 한다. 그러나 지금의 젊은 세대들은 나라보다는 개인의 행복을 더 소중한 가치로 인식하고 있다. 그러기에 더더욱 역사를 통해 미래를 열어가는 나라사랑의 교육이 필요하다.   애국지사의 추모비 제막식에 참석하여 그 분의 삶을 통해 과거사를 공부하는 것이 훨씬 더 학습효과가 높을 테니 동원이 아니라 수업의 일환으로 참여시킬 수는 없을까 생각하는 것이다. 이 오동공원을 비롯하여, 민족적 신념을 지키기 위해 죽음으로 일제에 저항한 민족적 저항시인 이육사(애국장)를 비롯하여 중국과 국내를 드나들며 항일투쟁을 전개한 조재만(애족장), 조선의용대(군) 중대장으로서의 대일 무장투쟁을 주도한 이원대(독립장), 그리고 이육사와 함께 조선군사정치혁명간부학교(의열단간부학교)를 졸업하고 국내에 잠입하여 대원모집 활동을 전개한 안병철 등을 배출한 화남면 안천리의 백학학원, 을사늑약으로 일제에 의해 국권이 침탈당하자 산남의진(山南義陣)을 결성하여 서울 진공작전을 감행했던 정환직, 용기 부자(父子) 대장과 그 열사들을 모신 자양면 충효리의 충효재와 영천문화원 뜰에 세워진 산남의진비, 자양면 용산리에 세워진 명암 이태일선생 항일척장비 등은 모두 나라사랑의 역사교육 현장이다.  그보다 전인 6월3일, 제5회 산남의진순국선열 추모제가 충효재에서 열렸다. 산남의진기념사업회가 경북남부보훈청과 영천시의 지원을 받아 매년 추모제를 모시는데, 올해는 정환직, 용기 양세(兩世) 대장의 직계 후손인 정대영 선생이 건강이 좋지 않아 참석하지 못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일제에 빌붙어 개인의 영달을 추구했던 친일파 후손들은 부귀영화를 누리는데, 구한말 의병이나 독립군 후손들은 아직도 힘들게 삶을 영위하는 분들이 많다. 사단법인 산남의진기념사업회를 재정비하고 산남의진 선양사업에 3천만원을 쾌척한 바 있는 전 거동사 주지 혜신스님은 평소 “우리가 현재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선열들이 목숨을 바쳐 나라를 지켜주셨기 때문인데, 그 분들을 위해 하는 일에 아까울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나라가 누란의 위기에 처했을 때 가정보다 나라를 앞세워 항일의병으로 목숨을 바친 분들의 후손들은 살기가 팍팍하고, 그 상황에서도 나라보다 일신의 안녕을 추구한 후손들은 유학가고 돈 모아서 지금 보란 듯이 살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산남의진기념사업회의 선양사업으로 할일이 많지만 순국선열들의 후손을 돌보는 것이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일입니다”라고 강조하곤 했다. 정환직 대장의 절명시 두 편을 꺼내보며 다시 생각한다. 우리는 어찌해야 나라를 위해 목숨과 모든 것을바친 선열들에게 진 빚을 갚을 수 있을까? 몸은 죽으나 마음마저 변할소냐 /의로움은 무거우나 죽음은 오히려 가볍다  / 뒷일을 누구에게 맡기리오/ 말없이 새벽까지 앉았노라. 집안이 망하고 몸은 이미 갇혔으니 /   비로소 이런 마음 가진 것이한 맺힌다. / 이제 가면 돌아오지 못할 것을 알지만 / 한 가지 어린 손자 가 있음이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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